Part 6: 나의 때, 나의 인생의 꽃
사람마다 인생의 꽃이 피어나는 시기는 다른 듯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시기가 학창 시절과 잘 맞아 10대부터 치고 나갑니다. 정말 암울한 성장과정을 거쳐야 했던 어떤 사람은 20대가 되어 자신의 꽃을 피워냅니다. “세상에서 내 인생이 제일 불쌍하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말이여.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구먼. 일흔한 살에 이런 행복이 나한테 올 줄 알았는감?”라 말하는 유투버 박막례 할머니처럼 70대에 이르러서야 만개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친정엄마는 35살 나이에 중풍으로 반신을 못쓰게 되신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고, 삼시 세 끼를 차려드려야 하기에 식간 사이의 잠깐 외출 외에는 늘 집에 있어야 했습니다. 감정 표현력이 격하게 부족한 남편과 사는 덕에 엄마는 남편에게 ‘고맙다. 수고한다’라는 말 한마디도 들어보지 못하고 그렇게 16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여즘 지난 어느 날 아침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딸, 내가 요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 난 아무것도 바란 거 없이 그냥 시어머니 모신 건데. 어차피 난 외며느리니까 내 몫이고, 너희 아빠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 저녁 한 끼 먹고 잠깐 쉬었다 잠만 자고 나가는데 그런 불쌍한 남자 집안 일로 신경 안 쓰게 해주고 싶었고, 어머님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할 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냥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만큼 한 건데. 요즘 너희 아빠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 사람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이 사람은 이제 남은 여생 하고 싶은 대로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러고 다닌다. 내가 구름 위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
감정표현이 어색한 아빠라서 “사랑해”라는 말 한번 못하는 분인데, 지난 16년 동안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사무쳤었나 봅니다. 엄마의 30대 중후반, 40대, 50대 초반의 삶은 참 힘겨웠습니다. 손만 갖다 대도 바스러지는 마른 이파리가 딱 우리 엄마였습니다. 하지만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이든, 남이 뭐라 말하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낸 엄마는 50을 넘기고서야 활짝 꽃을 피워냈습니다. 엄마의 때는 50대가 지나서였습니다.
딸아이와 친한 친구의 엄마는 대학 3학년 때 결혼해 예쁜 두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너무 앳되어 보여 아이들의 사촌언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애들이 유치원을 마치고 나오면 이 분은 늘 생글생글 웃으며 아이들과 함께 놀며 시간을 보냅니다.
“너무 일찍 결혼해서 사회생활도 못해보고 애만 키워서 힘들겠다고들 하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애들이 너무 예뻐요. 애들이 대학가도 저는 40대 초반인데 그때 가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 자신이 선택한 삶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는 그 엄마가 참 멋져 보였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2-30대를 집에서 살림하고 애만 키우면서 아까운 시간을 보내는 불쌍한 삶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귀한 자녀들에게 100% 집중하고 자녀들과 함께 성장하는 신명 나는 2-30대를 만들어가고 있었고, 그 후의 시간에 피어날 자신의 두 번째 꽃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멋진 엄마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time line에 맞추어 나의 삶을 바라보면 내 삶이 너무 초라하고 뒤쳐지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의 삶이 언제 꽃을 피울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나의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다독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 내 주변에 나의 삶에 피어날 꽃을 함께 기대하며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다면 더 감사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