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에 대하여

(중2 아들과 함께: feat. 조지 오웰 <동물농장>)

by 지음

느슨하다 못해 해이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아들과의 북클럽을 다시 시작했다. 그 유명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아들과 함께 읽었는데 짧아서 좋았고, 메시지가 분명해서 더 좋았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 발표된 이 작품은 그 당시 러시아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을 우화의 방법으로 풍자한 소설이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자처한 조지 오웰은 소비에트 체제에 왜 이다지도 신랄한 비판을 가했을까. 아마 찐 사회주의자여서 그랬던 건 아닌지 짐작해 볼 뿐이다.


조지 오웰 <동물농장>/민음사


지킬 수 없는 약속 & 예고된 혁명의 배반


아들은 꽤나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돼지들이 인간 주인을 내쫓는 혁명에 성공하면서 그들 스스로 합의한 7계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주목했다. 헛간 벽에 혁명의 초심을 담아 동물들의 발로 써 내려간 7계명은 다음과 같다.

일곱 계명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조지 오웰 <동물농장> p.28


딱 봐도 지킬 수 없는 계명들뿐이다. 순진한 동물들은 전적으로 이 계명에 동의하고 합의한다. 하지만 이 계명들은 돼지라는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인 동물들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한다. 돼지들이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기 위한 거룩한 노동에 들어가는 수고를 위로하기 위해, 다른 동물은 손댈 수 없는 사과와 우유를 먹기 시작한 장면은 혁명을 배반한 전환점이 되었다(출처: 조지 오웰 <동물농장> 작품 해설 p.165). 더 이상 돼지들과 나머지 동물들은 평등하지 않았다. 또한 손으로 쫓아낸 인간 주인의 집은 동물들에게는 평등하게 금기시된 공간이었지만 어느덧 돼지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우리 계명은 '시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이라며 계명에 대한 곡해를 곁들여서. 아들은 술맛을 알기 시작한 돼지들이 제5계명을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안 된다"로 은근슬쩍 고치는 모습을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최후에는 돼지들은 인간처럼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옷을 걸치며, 주변 농장 주인 인간들과 거래한다. 일곱 계명은 이제 오간 데 없었다. 벽에는 단 하나의 계명만이 적혀 있을 뿐.


모든 동물이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조지 오웰 <동물농장> p.128



아들은 이 책을 읽고 곧바로 북한의 이념과 실상을 떠올렸다. 돼지 메이저와 초기 혁명을 일으켰던 동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이념 자체가 그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런데 왜 그 선한 의도가 점차 변질이 되어 모든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게 되었단다. 돼지나 인간의 "탐욕"이 그 과정을 견인했다. 권력을 잡은 지배 계층은 감시와 통제를 받지 않으면 자신들이 공언한 가치와 이념을 그들 스스로 배신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삼권분립이라는 국가 통치 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동물농장>은 그 당시의 사회나 국가에만 한정되는 시사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의 갈등, 지배계층의 모순을 드러내기도 하며, 탐욕에 쉽게 지배 당하는 인간 개개인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나라고 무엇이 다를까. 올해 초를 되돌아본다. 올해 초에 7계명처럼 나 스스로에게 선언한 약속들은 어느새 합리화와 탐욕으로 얼룩져 변명 같은 계명만 남아있는 건 아닌지.


<동물농장>의 마지막 장면은 인간과 두 발로 선 돼지들이 자신들의 탐욕스러운 모습을 숨기지 않으며 함께 어울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아들도 나도, 착취당한 동물들의 고통은 그대로인 채 돼지나 인간 중 누구 하나 심판받지 않고 마무리된 결말에 놀랐다. 소설의 결말뿐 아니라 현실의 결말도 비슷한 모습은 아닌지... 씁쓸하고 씁쓸하다.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조지 오웰 <동물농장> p.134~135




p.s. : 문학 작품 완역본을 볼 때 아이들이 다 읽고 난 후, 유튜브의 '문학줍줍'이라는 해설 영상을 보면 꽤 도움이 되더라구요. 정보 공유합니다~


https://youtu.be/lVodCuGNO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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