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브리타 테켄트럽 <빨간 벽>)
오늘은 딸이 저에게 열렬히 추천한 책, 브리타 테켄트럽의 <빨간 벽>에 대한 독서대화를 포스팅해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빨간 벽은 원래 있었다. 고양이, 곰, 여우, 사자 그리고 생쥐는 이 빨간 벽 안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생쥐는 궁금하다.
이 벽은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어떻게 시작된 걸까.
벽 너머엔 뭐가 있을까.
호기심이 가득한 생쥐는 고양이, 곰, 여우, 사자에게 빨간 벽이 있는 이유를 아는지 묻는다. 벽 너머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고양이는 벽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믿는다. 곰과 여우는 빨간 벽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벽 너머를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어쩐 일인지 으르렁 소리를 잃어버린 사자는 벽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그저 커다랗고 시커먼 없음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곤 우두커니 허공만 바라볼 뿐이다.
나: 우와, 진짜 멋진 책이다. 강추했던 이유를 알 것 같은데, 엄마 꼭 읽어보라고 한 이유를 너한테 직접 들어 보고 싶네?
딸: 저번에 읽은 그림책 <위대한 이야기>랑 연결되더라고. 나는 이 빨간 벽이 '코로나'처럼 느껴졌어.
나: 아... 코로나...!!
딸: 응.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도 하고, 여러 활동도 제한되고 있다고 생각하잖아. 근데 <위대한 그림책>에서처럼 미래에서 다시 현재를 돌아볼 때 코로나로 인해 좋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사실은 우리가 지금 벽처럼 느끼고 있는 것들 너머엔 좋은 것들이 이미 있을 것 같아. 우리가 고양이나 곰처럼 못 느끼고 있을 뿐이지 않을까?
자신보다 덩치가 큰 친구들의 생각을 듣고도 벽의 존재 이유와 벽 너머가 여전히 궁금한 생쥐에게, 어느 날 벽 너머에서 파랑새가 날아온다. 벽 너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동물들. 생쥐는 벽 너머로 자신을 데려다줄 것을 요청한다.
빨간 벽 너머 세상은 실재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알록달록한 색의 향연이 펼쳐진 아름다운 세상. 빨간 벽 안의 단조롭고 어두운 세상과 벽 하나를 두고 화려하게 펼쳐진 빛의 세상은 뚜렷이 대비를 이룬다.
진실을 스스로 찾아 나선 생쥐에게만 보인 세상. 파랑새는 생쥐의 용기를 칭찬하며, 이 빨간 벽 말고도 생쥐의 인생에 수많은 벽들이 있음을 알려준다.
"꼬마 생쥐야, 네 인생에는 수많은 벽이 있을 거야. 어떤 벽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지만 대부분은 너 스스로 만들게 돼. 하지만 네가 마음과 생각을 활짝 열어 놓는다면 그 벽들은 하나씩 사라질 거야. 그리고 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할 수 있을 테고."
출처: <빨간 벽>
딸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나: 벽 너머 좋은 것들이라... 예를 들면?
딸: 코로나로 인해 자연도 숨 쉴 수 있게 되고, 가족들끼리도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고(물론 안 그럴 수도 있다), 엄마도 요리를 시작했잖아..
나: ㅋㅋ 그렇지. 그러니까 너는 코로나가 빨간 벽처럼 느껴졌구나. 그럼 코로나가 끝나면 빨간 벽은 없어지는 걸까?
딸: 아니, 안 그럴 거 같아. 치료제가 나와도 코로나에 걸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을 거 같아. 그럼 또 벽이 생기는 거지.
나: 두려움... 두려움의 벽이 계속 있을 수 있구나. 엄마는 두려움의 벽이 있어. 엄마가 지금 글을 읽고 써도, 상담을 열심히 공부해도 열매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잘 못 나가는 거 같아. 이 사자처럼 우울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벽 너머 세상은 궁금해하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 되기도 하더라고. 넌 어때?
딸: 나도 있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전학 가고 보니까 이미 1,2학년 때 친한 애들끼리 그룹이 있는데 다가가도 나를 거절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어...
나: 너한텐 그런 두려움의 벽이 있구나. 너랑 나 모두 빨간 벽이 있네.
함께 책을 읽으며 우리 모두에게 빨간 벽이 있음을 느낀다. 눈에 띄지 않는 회색이나 하얀 벽도 아니고, 못 본 척할 수 없는 "빨간" 벽. 분명하게 존재하는 그 빨간 벽은,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지켜주는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일부이며, 어떤 이에게는 좌절 그 자체이다. 딸과의 대화를 돌아보며 "빨간" 벽의 존재를 알아차림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빨갛게 존재하는 벽이 자신 안에 있음에도 사람들은 모른 척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이지 생각하지 않고, 벽 너머의 세상은 상상해 볼 필요도 못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우울이 있는 사람들은 사자처럼 벽 너머는 커다랗고 시커먼 없음이 있다고 말하며, 벽이 아닌 "자신"이라는 감옥 안으로 하염없이 들어간다.
나에게 지난 2달은 우울의 시간이었다. 글을 쓰고 싶지도 않았고, 글이 써지 지도 않았다. 잠이 많아졌고, 움직임이 둔해졌다. 우울의 시기가 다가왔음을 알아차린 후에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책보다는 에너지를 덜 쓰는 영화나 뉴스를 봤다. 그러다가 내 안의 빨간 벽을 천천히 마주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2주간 떠오른 빨간 벽의 실체는 교육분석과 수퍼비전에서 연속적으로 받은 낮은 평가로 인한 우울이었다. 내담자도 나도 만족한 상담으로 종결했는데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아직도 깊은 공감을 전하지 못하는 더딘 나의 성장 상태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제2의 인생은 '잘해야 한다'라는 강박에서 비껴 나 있는 줄 알았건만, 잘해야 한다는 내 삶의 핵심 주제는 여전히 재연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전 고인이 된 남편 친구가 오히려 상담사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일기 내용을 듣고 나서부터는 내가 과연 이 길을 잘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의 벽은 더 높아졌다. 으르렁 소리를 잃어버린 사자처럼 나는 벽 앞에 잔뜩 웅크리고만 있었다. 딸도 작년 코로나 시기에 멀리 있는 사립학교로 전학을 바람에 좋은 교육을 받고 있지만 친구 관계가 깊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딸과 나는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며 우리 안의 빨간 벽을 선명하게 알아차렸다. 각자의 빨간 벽을 고백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음씨까지 착한 생쥐는 자신이 목격한 벽 너머의 세상을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는 파랑새의 염려에도, 생쥐답게 친구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간다. 부푼 마음을 안고 빨간 벽에 도착했지만 이상하게도 더 이상 벽은 보이지 않는다.
"벽이 어디 있지?" 꼬마 생쥐가 물었어요.
"무슨 벽?" 파랑새가 물었어요.
"벽은 처음부터 없었어."
그게 무슨 말인지 생쥐는 알 것 같았어요.
출처: <빨간 벽>
나: 흐흐. 좋은 책이다 정말. 넌 젤 마음에 드는 장면이 어디야?
딸: 벽 너머 세상을 처음 본 순간. 알록달록 너무 예쁘잖아. 반전~ 엄마는?
나: 나는 그것도 좋았고, 가장 마지막 장면이 젤 좋네.
딸: 아.. 나도 나도! 생쥐가 어디론가 또 떠나잖아.
나: ㅎㅎ 글치. 넌 이 동물들 중 누구랑 젤 닮은 거 같아?
딸: 알면서...
나: 엥? 난 모르는데?(모르는 척)
딸: 당연히 생쥐지..!!
나: 그렇지. 넌 늑대로 살고 싶은 아인데, 당연히 생쥐지..^^
존 오트버그는 <선택 훈련>에서 현대인의 "FOMO(Fear Of Missing Out)" 증상을 지적한다. FOMO는 소셜 미디어 열풍을 통해 더욱 부추김을 당하는데, 우리는 남들이 우리보다 더 재미있는 것을 하고,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더 좋은 몸매 관리법을 발견하고, 더 많은 돈을 모으고, 감정을 더 잘 다스리게 될까 봐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FOMO는 우리에 관한 근본적인 진실 하나를 말해 준다.
"그것은 우리가 새로운 뭔가를 끝없이 갈망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삶 너머에 있는 삶을 갈망한다. 따라서 FOMO를 다루기만 하면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열린 문으로 안내해 줄 수 있다."
존 오트버그 <선택 훈련> p.78~79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 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상상력은 막힌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진부해진다. 생기를 잃는다. 삶의 역동성은 중지된다. 하지만 '더'를 향한 추구는 그 방향성이 중요하다. '나 자신'을 위한 '더'는 탐욕이 될 수 있지만, '세상'과 '다른 사람'을 향한 '더'는 벽이 사라지고 내 삶에 열린 문들을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생쥐는 그 비밀을 알았던 걸까. 벽 너머의 세상을 보고, 벽 안에 있는 친구들을 그 너머의 세상으로 안내한 후 그는 훌훌 또 길을 떠난다. '더' 너머의 세상을 향해. 나는 눈 앞에 펼쳐진 바다와 그 바다를 바라보는 생쥐의 미소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을 갈망하는 걸까. 갈망하기에 우울이 있었다. 딸은 무엇을 갈망하는 걸까. 갈망하기에 불안이 있었다. 우리 삶 앞에 놓인 빨간 벽들을 또 만나더라도 이전보다는 덜 당황하길. 그리고 다시 갈망하길 바란다. 딸과 내가 각자의 벽을 넘어선 세상에서 다시 만날 때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생쥐처럼 나도 훌훌 떠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