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라는 말은 부끄럽게도 나와는 거리가 있는 단어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어렵게 사는 장애인들을 보며 눈물 흘리기도 했고, 장애인들을 돕는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할 수 있었던 건지 모른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삶은 나에게 '장애'라는 말을 걸어왔다. 아이들에게서도, 나 스스로도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거나 노력 자체가 되지 않는 장애의 영역이 있음을 선명하게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산책을 듣는 시간>은 한 청각장애인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단순히 장애를 극복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독자로 하여금 장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말을 걸어오는 책이라고 할까. 중학생 아들 때문에 작년에 읽은 책이지만 너무 좋아서 초4 딸과도 함께 다시 읽어봤다. 글밥이 워낙 많고 내용이 진지하다 보니 딸은 조금 지루해했다. 그럼에도 작가의 섬세하고 창의적인 감정 표현, 독창적인 결말 부분에는 딸도 눈을 반짝이며 읽었다.
"내 모어는 수화다. 아기 때부터 엄마와 수화로 대화를 나눴고 수화로 세상을 배웠다. 입술의 모양과 손짓과 눈빛으로 대화하는 것은 아름답다. 뜨개질하듯이 손으로 말을 엮는 게 좋고, 서로의 눈과 입술을 보며 집중하는 게 좋다. 그 순간엔 세상에 단둘만 있는 느낌이다... 실제로 나는 손안에 투명한 새 한 마리를 기르는 느낌으로 수화를 하며 걸어 다닌다. 새를 쓰다듬듯이."
<산책을 듣는 시간> p.7~8
"나는 구름이 흘러나며 내는 소리, 물결이 번져 나가는 소리를 알고 있다. 상상 속에서 그 소리를 만들어 냈다.
마찬가지로 나는 내 아빠도 만들어 냈다."
<산책을 듣는 시간> p.9
작가는 장애를 미화하지도 않지만 동정하지도 않는다. 차가운 현실은 그 현실대로, 장애를 비하하지도 않은 채 글을 이어간다. 나는 작가의 이런 시선이 좋았다. 주인공 소녀(수지)는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 겉으로는 냉정해도, 속으로는 아빠를 가장 이상적인 존재로 만들어낼 정도로 그리워한다.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게 된다. 소리를 무게로 느끼는 수지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지만 무슨 일인지 엄마는 피아노를 배울 수 없다고 한다.
"그날 밤이 되어서야 나는 피아노를 언제부터 배울 수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수화로 음악이 귀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두 번 다시 그곳에 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수화로 채널을 돌리자고 말했다. 또 다른 선택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곳에 갈 수 없다면 다른 피아노 학원에 가면 되니까. 하지만 엄마는 다시 수화로 음악이 귀가 되었다고 말하고 영원히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산책을 듣는 시간> p.20
영원히. 장애.
두 단어가 내 마음에 깊숙이 다가왔다.
장애. 영원히.
장애는 가능성 제로의 영역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그 영역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선고이다.
"그날의 후유증은 꽤 오래갔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벽장 안에 틀어박혀서 보냈다. 피아노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꺼낸 영원히란 단어 때문이었다. 영원히. 만들어는 두었지만 절대 쓰지 않았던 그 단어를 엄마가 열었다.
나를 잊고 있다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내게 다가와 붙어 버린 것 같았다. 엄마도 나도 그 단어를 쓰지 않으려고 조심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가장 큰 소리는 우리 집 상하 수도관을 덮고 있는 크고 네모난 철제 뚜껑인데 그 뚜껑을 밟았을 때 느껴지는 진동보다. 영원히라는 말이 천 배는 시끄러울 것 같았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끝없이 울리는 것 같은 말."
<산책을 듣는 시간> p.21~22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눈물이 났건만, 딸은 글이 너무 길다며 볼멘소리다. 영원히라는 말의 무게가 어린 딸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것 같다. 이미 인생의 한계를, 장애를 느끼고 있는 나에게도 영원히라는 말은 무겁게 다가왔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나도 계속 되새김질하게 된다.
'영원히'라는 말을 넣어 딸이 지은 시
수지에게는 그 이후로도 무거운 시련이 계속된다. 가장 많은 사랑을 주었던 친할머니의 죽음, 갑자기 말도 없이 유학을 떠난 엄마. 마땅히 슬퍼하고 좌절할 만한 인생이었지만 수지는 슬픔을 느끼는 방법을 모른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는 마땅히 슬퍼야 할 텐데
이상하게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마음은 무참해서 오히려 고요했다. 그때의 감정은 이미 나를 넘어설 만큼 커져서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슬픈 것은 확실한데 그 슬픔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산책을 듣는 시간> p.132
그런 그녀가 낯선 은행 직원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낯선 이 앞에 켜켜이 쌓아 둔 눈물을 터뜨리며 새로운 삶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철저히 혼자일 것만 같은 수지에게는 다행히 시각장애인 친구 한민과 그의 충성스러운 안내견 마르첼로가 함께 하기에 회복은 더디지만은 않았다.
독립하기 위해 일자리를 구했지만 청각장애인을 직원으로 선뜻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카페에서 '혼잣말 이력서'를 쓰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 내려간다. 수지가 좋아하는 '산책'에서 힌트를 얻어 마르첼로와 한민이 함께 하는 산책이라는 사업 아이템을 생각해 낸다.
<산책을 듣는 시간> p.167
언뜻 발칙한 생각 같기도 하지만 산책을 하는 과정을 상상해 보니 참여자에게 매우 치유적일 것 같았다. 글밥이 많아 계속 투덜대던 딸아이도 이 신박한 사업 아이템에는 표정이 밝아진다.
나: 딸, 엄마가 시각장애인이라면 너는 엄마에게 어떻게 산책을 듣게 할 거야?
딸: 엥? 그런 것도 상상해 봐야 돼? (투덜)
나: 한번 상상해 보자~ 아, 여기 무슨 냄새가 나네요? 뭐가 있나요?
딸: 아.. 여기는 하얀 꽃이 있어요.
나: 아.. 하얀 꽃이요? 어떻게 하얀지 궁금하네요.
딸: 하얀 거.. 하얀 거.. 구름 같은 느낌이에요.
나: 죄송해요. 제가 구름을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요.
딸: 앗 그렇네. 어렵다, 이거.
나: 그치? 엄마도 어렵긴 한데, 이렇게 표현해 보면 어떨까? 고요한 평화 같은 하얀색?
딸: 아~~~ 느낌 온다! 이거 좋다. 이 사업 대박날 거 같아. 결국 산책에 참여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것 같아.
참여자들은 익숙하게 봐온 것들을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딸과 잠시 산책을 듣는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도 아하!의 경험이 되었으니까.
책을 끝까지 읽은 뒤 장애와 영원히라는 말을 다시 떠올린다. 자신의 장애를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비장애인들과 공존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을 찾아낸 기분 좋은 결말을 생각해 본다면, 장애는 영원할 수 있어도 그저 일부일 뿐인 것 같다. 일부의 장애가 영원할 수 있어도 존재 전체가 장애가 아니기에 가능성의 영역도 영원히 열려 있다. 그래,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