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심리학>으로 진행한 2번째 모자북클럽 내용입니다. 그 중 "제2장 아무리 노력해도 오류에 빠지는 우리 (p.59~69)"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나누었습니다.
자기합리화의 이유: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책에서는 똘이와 슬기가 상담소에서 슬기의 다이어트 문제로 티격태격을 하고 있어요. 똘이는 한 달간 다이어트를 했지만 살이 전혀 빠지지 않는 슬기를 놀리지요. 하지만 슬기는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도 나아졌다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우리는 슬기처럼 '자기합리화'를 많이 하며 살고 있지요.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자기합리화'를 하는 이유를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소개합니다.
'인지부조화의 원리'는 합리적인 결론보다 부조리하더라도 자신의 믿음을 선택하는 우리 생각의 경향 중 하나를 말합니다. (아래 유튜브가 굉장히 재미있게 소개를 하고 있네요 ^^)
이 영상에도 소개되는 레온 페스팅거라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는 종말론을 신봉하는 이단 종교 모임에 참여 관찰을 해서 이 이론을 생각했어요. 미국에 살던 매리언 키치라는 가정주부가 1954년 12월 31일 대홍수로 모든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신의 계시를 받습니다. 그리고 서낸더라는 구세주를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져 급기야 여러 신도들이 형성됩니다. 신도들이 함께 종말을 기다리던 12월 31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한 행동이 재밌어요. 매리언 키치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더니 자신이 신의 계시를 다시 들었고 신도들의 정성에 감복한 신이 지구 멸망 계획을 취소했다고요(화끈한 신입니다). 그리고 그 신도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부둥 껴안죠. 자신들의 믿음으로 세상이 오히려 구원을 얻었다며...
페스팅거는 또 스탠퍼드 대학생들을 상대로 심리실험을 했어요. 실험 중 학생들은 굉장히 단순하고 의미 없는 작업을 한 시간 동안 해야 했고, 작업을 마친 이후 한 그룹에게는 1달러를, 다른 그룹에게는 20달러를 주며 이런 부탁을 해요. "다음 지원자도 잘 참여할 수 있도록 실험이 아주 재밌고 의미 있었다고 말해주세요~"라고요. 어떤 그룹이 실험에 대해 더 좋은 평가를 내렸을까요? 언뜻 20달러 받은 학생들이 더 좋게 평가했을 것 같지만 결과는 놀랍게도 1달러 받은 학생들이 더 긍정적인 평가를 했답니다. 명문 스탠퍼드 학생들은 자신이 1시간 동안 이렇게 의미 없는 시험에 참여했다고 인정하는 것보다는, 이 실험이 뭔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을 선택했던 거죠.
아들의 뒤늦은 고백: 일본 여행에서의 인지부조화
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책을 읽었어요. 제가 읽어야 할 부분인데도 자신이 읽겠다며 나섰을 정도로 흥미를 보이더군요. 아들과 이런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나: 아들, 너는 이런 인지부조화를 겪어 본 적 있어?
아들: 솔직히.. 있어요. 이번에 영어학원에서 모의고사 성적이 좋게 나와서 당연히 레벨업이 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레벨업 문자가 안 오니까 학원 평가 시스템을 오해한 적도 있었고요... 또... 옛날 일이긴 한데.... 에이... 엄마 잊었을 수도 있어요.
나: 뭔데? 이제 고백하는 거야? (ㅋㅋ 뭘까 뭘까)
아들: 저희 할아버지 칠순 기념으로 여행하면서 일본 갔을 때 제가 지하철 길 안내를 했잖아요.
나: 그랬지~ 그때 우리 아들 활약이 대단했잖아. 네가 길 안내 안 했으면 우린 엄청 헤맸을 거야(아들은 지하철 노선을 쫙 꾀고 다니는 걸로 어렸을 때부터 유명 인사).
아들: 근데 그때 도쿄에서 저희 많이 헤맸잖아요.. 할아버지 다리도 엄청 아프시고..
나: 그랬지. 근데 원래 도쿄 지하철이 복잡한 거 아니었어?
아들: 그렇긴 한데요.. 그때 제가 길 안내를 하다가 구글 지도에서 보니 제가 좀 많이 돌아가는 길을 안내를 했더라고요. 근데 그때는 그 길이 맞을 거라고 저를 합리화했던 거 같아요. 제가 확신에 차서 막 안내하긴 했는데 지금 이걸 보니 인지부조화였나 봐요..
전 이 얘길 듣고 빵 터질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면 아빠는 그날 몸 져 누우셨기 때문이죠. 당신 칠순 기념으로 간 여행인데 손자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다니다가 거의 기절 수준. 도쿄역 앞에서 멋지게 사진을 찍자고 했지만 아빠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며 마지막을 기념하는 여행 사진도 안 찍으셨거든요. 그게 우리 아들의 인지부조화 때문이었다니... 이 뒤늦은 고백을 아빠에게 말씀드리면 어떤 반응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자기합리화는 무조건 나쁠까? : 방어기제의 필요성
아들과의 대화가 끝난 후에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쳤어요. 인지부조화 경향으로 인한 자기합리화가 습관이 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우리가 자기합리화를 전혀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자기합리화를 못하는 것은 자기방어를 못한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합리화는 방어기제 중 하나이니까요.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는 체계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자아의 다양한 방어 전략들을 자세히 설명했지요. 최영민 교수님의 <쉽게 쓴 정신분석이론>에 따르면 방어기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방어기제는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정상적인 반응이다. 개인은 모두 방어기제를 사용하며, 방어기제 없이 인생사를 처리해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방어기제는 보다 적응적이고 기능적이어서 건강한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방어는 기본적으로 개인을 불안으로부터 보호하는 자아의 무의식적인 기능이다."
최영민 <쉽게 쓴 정신분석이론> p.172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합리화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채로 지나갈 때가 많아요. 이게 큰 함정이죠 ㅠㅠ. 책에서는 방어기제를 다시 자기애적 방어(가장 원시적), 미성숙한 방어, 신경증적 방어, 성숙한 방어로 분류하고 있어요. 합리화는 이 중 신경증적 방어(neurotic defenses)에 속합니다.
"신경증적 방어는 일반 성인에서도 흔히 관찰된다. 이 방어기제들은 대처를 하는데 단기적으로는 이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어기제를 대처의 기본 양식으로 삼는다면 장기적으로 상호관계나 직장생활, 일상생활을 즐기는 데 문제가 발생한다."
최영민 <쉽게 쓴 정신분석이론> p.180
어느 정도의 자기합리화는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단기적으로는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합리화를 자주 사용해서 습관이 될 정도에 이르렀다면 장기적으로는 여러 관계에서 문제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나는 자신을 잘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합리화나 자기기만을 하는 걸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작가도 이런 고민을 했나 봐요.
나: (문신은) 잘 될 거예요. 그리고 저번에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좋은 것들도 많이 널려 있는데 나쁜 증거만 찾아서 사용한다고요. 제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 봤어요. 예를 들어 제가 누구한테 차였어요. 그러면 '걔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다가도, 책 내용 중에 '사랑의 모양과 색깔은 다 다르니 네 생각대로만 판단하지 마라' 이런 글귀를 보면 '맞아 걔도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겠지,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을 바꾸다가도 제가 합리화하는 것 같아서 안 하려고 해요.
선생님: 합리화를 왜 부정적으로 보세요?
나: 뭔가 진실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느낌?
선생님: 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예요. 자신의 상처나 결정에 대해 이유를 찾는 거니까.
나: 나를 지키려는 방법으로 괜찮은 거예요?
선생님: 네.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거죠. 과도해지면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얼마든지 좋게 바라볼 수도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들과 자기합리화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보려고 해요. 자신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자기합리화와 자기기만으로 넘어가는 자기합리화, 그 둘을 분별하는 방법에 대해서요. 좀 더 생각해 보면 자신의 잘못을 그래도 인정하는 것은 참 고통스럽잖아요. 그러니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는 힘, 고통을 받아들이는 힘이 증가할수록 자기합리화는 좀 덜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서 경계도 조금씩 구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성숙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하지만 성숙은 누군가의 강요나 급하게 이루어지진 않더라고요. 그럴 때까지는 합리화할 수 밖에 없는 자신에게 연민도 느끼고 공감도 하면서 점진적인 성숙의 과정을 걷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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