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 최영민 교수님의 <쉽게 쓴 자기심리학>에는 이런 아빠가 나와요. 이제 막 일어서기 시작한 아이가 아빠의 손바닥 위에 서 있으려 안간힘을 쓸 때, 아빠는 아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살짝 지지해 줍니다. 아이가 아빠의 손바닥 위에 간신히 서게 되었을 때 이 아빠는 “우리 아들 정말 최고다!! “라고 엄지척을 해주었어요. 아이의 과대감, 전능감에 반응해서 아이가 그 성취를 자신이 해낸 것으로 느끼에 도와주었습니다.
며칠 후 그 아들이 아빠와 공군 비행장에 놀러 갔어요. 제트기가 굉음을 내며 이륙을 하려 할 때, 아들은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 왔습니다. 그 때 이 아빠는 “우리 아들 무서웠지…. 괜찮아. 아빠가 안아줄께.”하며 아이를 따뜻하게 보듬습니다. 여전히 최고의 아들이지만, 그 아들의 연약함도 기꺼이 수용하는 아빠의 모습이예요. 이런 수용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세상에서 좌절을 경험할 때 부모라는 안전기지에서 잠시 불안을 다스리고 세상을 탐색하고 용기 있게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모라는 안전기지는 자신 안에 내면화되어 스스로가 안전기지가 되어 주는 단단한 ‘나’의 성격 구조가 형성되는 밑거름이 되지요.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요? 권경인 교수의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에는 이런 예시가 나옵니다. 교수님이 오랫 동안 상담을 했던 대형교회 목사님의 아들 이야기입니다. 그 아들이 대입을 4수를 하려고 결정한 시점에서 술에 만취해 교회 마당을 가로질러 사택으로 간 적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교인들이 담임목사 아들의 실패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사불성이 된 모습의 아들을 본 목사 아버지의 마음은 참 속상하고 괴로웠을 겁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의 행동은 놀랍습니다. 그 때가 겨울이었는데, 아들 방 쪽에 나무가 보였다고 해요. 이파리 하나 없이 가지가 앙상한 겨울나무 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저 나무가 죽은 것 같지? 정말로 죽은 것 같지? 그런데 봄이 오면 잎이 난단다.
네가 지금 죽은 것만 같지? 네가 겨울나무야.
아들은 그 날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이랍니다. 인생의 나락으로 추락한 것 같은 순간에, 아버지가 최고의 아들인 연약함을 품고 아이가 가진 좋은 것을 끝까지 유지시켜 주었기 때문이죠. 그런 대상이 우리가 꿈꾸는 부모의 모습 아닐까요?
만일 나에게 그런 부모의 경험이 별로 없다고 느껴진다면 나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거나 위로하기가 정말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내가 부모의 안아줌으로 나의 불안이 진정되고 위로받은 경험이 있어야 나 스스로에게도 그런 셀프 수딩 기능을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연약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어린 시절 나의 연약함이 중요한 대상에게 얼마나 수용되었는지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좌절하고 실패해서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은 그 때, 내 연약함이 수용된 적이 별로 없었다면…내가 그런 대상을 상실했던 것에 대한 애도가 필요해요. 그리고 현재의 중요한 대상들과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건 어떨까요? 그 때 마땅히 받았어야 할 위로를 받지 못한 경험을 안전한 대상과 나누고 애도하며 내 상처를 돌볼 때, 아이의 연약함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어요.
[마주봄 질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위로가 나를 지탱해 주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