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DSM-5 진단기준)
우울감과 우울증은 어떻게 다를까. 이미 많은 콘텐츠들에서 다룬 얘기일 듯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울감을 이미 우울증으로 판단하기도 하고, 우울증인데도 단순한 우울감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전문가들도 우울증 진단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질환으로 치료해야 될 정도에 이른 만성화된 우울감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와 기준은 필요하다. 그래야 그에 맞는 의학적 또는 심리적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 정신의학협회(APA)에서 제시하고 있는 DSM-5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는 세계 각국의 정신과에서 우울증(주요 우울 장애)의 진단 기준으로 삼고 있기에 때문에 자신의 우울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는 1차적 기준이 된다.
온라인에서 우울증 자가 진단 테스트를 진행해 볼 수 있는데, 물론 타당화된 객관적인 검사 도구들도 일부 있긴 하겠지만 이와 같은 테스트들도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DSM-5이다. 이 기준들을 천천히 읽어보며 내가 어떤 상태에 해당하는지 먼저 생각해 보는 과정만으로도 나의 상태를 관찰자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처음 DSM-5를 배울 때 시간적으로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점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울 성향이 많은 나로서는 2주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느 정도 삶의 우울을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심리학 공부와 심리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난 그동안 내 감정을 잘 바라봐 주지도, 돌봐주지도 않았다는걸. DSM-5 기준을 알고 나서야 나는 아주 자주 우울 삽화를 경험했고, 그 삽화를 혼자 견뎌내느라 고통의 시간을 불필요하게 지연시켰음을 깨닫게 되었다.
<마음의 여섯 얼굴>의 저자 김건종 정신과 의사는 DSM-5 외에 우울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우울은 심리적 고통이자 심리적 능력이기도 하고, 질환이 될 수도 있지만 진정한 삶으로 부르는 무의식적 초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 우울의 실체를 단정하지 않고 무엇인지 잘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가 우울증을 쉽게 단정하고, 평면적인 기준만을 제시한다면 그 전문성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우울한 이유는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픔에 관한 한 자신을
파멸시킬지 모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똑바로 쳐다봐야 한다.
-조앤 디디안 <슬픔의 위안>-
심리상담도 결국 내담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마주 보게 하는 만남의 과정이다. 지금까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 자신을 새롭게 알아가고, 무엇보다 내 고통과 그림자를 똑바로 마주해야 하는 자리에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다. 혼자서는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마주 보지 못하는 자신의 그림자를, 안전한 대상과 함께 마주 볼 수 있다면 내 우울의 실체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inside.talk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