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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ler Nov 14. 2020

21세기의 바벨탑, 코로나19

20세기에 배우고 21세기에 살기_01

우선, 나는 무교이다. 그래서 성경의 내용을 깊게 해석하거나 이해하지는 못해서 언급하는 데에 조심스럽지만,  일반 상식 수준에서 스토리를 인용하는 것이니, 혹시라도 교인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바벨탑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들이 점점 발전하는 스스로의 능력에 자만하여 하늘에 닿기 위해 엄청 크고 높은 탑을 쌓기 시작했는데 이에 분노한 신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서로 소통하지 못한 인간들은 결국 탑을 완성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는 이야기. 


신의 세계에 입성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경고였다고 후대에서는 해석했다. 

흩어진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신의 의도대로 주어진 환경 안에서 오손도손 살아가면 좋으련만, 그들은 또다시 어떤 생물의 진화보다도 빨리 발전하면서 전쟁을 통해 검증했고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들이 교류하면서 지구를 점령했다. 


다른 언어는 이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외국어는 여전히 스트레스이지만) 단기 여행은 물론이고 외국인들과 건물 하나 짓는 것은 고민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심지어 전 세계 어디에라도. 


사람들은 새로운 대륙을 찾아 진출하고 지상의 먹거리와 땔감이 모자라 땅을 파내려 갔으며, 원하지 않는 것들은 바다에 던져 내 눈앞에서 치워버렸다. 그리고 더 빨리 이동하기 위해 하늘길을 텄다. 


각기 주어진 한도 내에서 살기를 바란 신의 의도와는 달리 인류는 거침없이 그들의 리그를 만들어 하늘과 땅과 바다를 점령한 것이다. 또.다.시.


대한민국도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즈음하여 본격적으로 일반인들의 해외여행 자율화를 시행했다. 

이때부터 대학생이 되면 배낭여행, 어학연수, 해외봉사 등등의 이름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이 하나의 과제처럼 될 만큼 성시를 이루었고 유학길에 오르기도 쉬워졌다. 그들이 취업한 후에도, 결혼한 후에도 휴가지의 선택은 전 세계가 되었다. 

부모님들은 세상 좋아졌다고 감탄하며 비행기에 오르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방학 때 해외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공유했다.  


이제 대기권 밖도 두렵지 않은 우리를 막을 이가 누가 있으랴 싶었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손톱 아래 가시 같지도 않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 좁은 줄 모르고 돌아다니던 우리를 집안에 가두어 둘 줄이야.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흩어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우리가 집에 머무르는 동안, 공기는 좀 더 청정해졌고, 거리는 여유로워졌으며, 가족은 복닥거리기 시작했다. 과거로의 회귀? 아날로그로 돌아간 것일까?  


알다시피 그런 건 아니다. 급브레이크를 걸었다고 차가 후진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갈 계획은 없어 보인다. 이제 디지털 플랫폼에 새 판을 짜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전자기기 사용을 걱정하던 부모들은 온라인 수업이라는데 백기 들고 컴퓨터나 태블릿을 내주어야 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친구들은 소셜 플랫폼에서 만나 수다를 떨었다. 그룹별로 각기 다른  친숙한 플랫폼에서. 

우리가 애용했던 항공사와 여행사는 망했지만 아이들의 온라인 놀이터는 더욱 성업 중이며, 아파트 문 앞에는 항상 꽉 찬 택배 상자들과 배달 음식들이 들어오고 빈 포장들이 나가기에 바쁘다.


새로운 판은 그동안의 세대차이를 더 벌려놓았고 동시에 양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변화까지도 불러오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나마 이렇게 새롭게 적응할 수 있는 정도의 변화 정도가 아니라 아직도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하는, 혹은 예상은 가능하나 대안은 준비되지 못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에게 다른 언어를 쓰게 한 것이 환경이나 개인에게 손해를 입힌다거나 사상자가 있었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다. 손해 본 이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하지만 21세기의 바이러스가 제공하는 새로운 시장과 환경, 그리고 통념은 우리가 적응해야 하는 변화뿐만 아니라 치러야 할 잔인한 대가 또한 바로 보여주고 경험하게 한다. 바로 현존하는 세대들의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벨탑에서 흩어진 사람들과 다른 방법으로, 더 빨리 우리는 또다시 만나고 있다. 생존자들의 환경적응력은 더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공존이 아닌 생존에만 목표를 둔다면 다음의 바벨탑은 언제 타노스의 건틀렛으로 나타날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내 가족만이 계속 운이 좋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공생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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