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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 소방관 심바 씨 Dec 12. 2021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


밤 12시 15분


" 반장님! 준비는 다 했습니다. 이제 어떡할까요?" 나는 긴장된 목소리로 선임 반장님께 물었다.


"이다음부터는 제가 할게요. 자리 좀 비켜주세요."


"예 반장님."


나는 내가 들고 있던 장비를 선임 반장님께 넘기며 구조대원 8년 차의 경험을 믿기로 했다.


선임 반장님은 그곳을 덮고 있던 뚜껑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뿌연 수증기와 엄청난 열기운이 피어올라왔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을 했다.


"이반장! 그쪽 다 뜯어놨어??" 선임 반장님이 물었다.


"아.. 예! 여긴 다 끝났습니다. 지금 넣을까요?"


"안돼!! 기다려! 아직 아니야." 다급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우린 한 걸음 뒤로 떨어져 그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작업은 두 명이 손을 대는 순간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또한 책임을 나눠진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소방서에 하루라도 일을 해봤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온전히 홀로 모든 책임을 지고 싸우는 고독한 작업인 것이다.


"지금쯤 넣어도 될 것 같은데요.." 상황을 지켜보던 입사동기 박반장이 작지만 소신 있는 말을 내뱉었다.

 

사실 박반장은 선임 반장님보다 소방서 경력은 짧지만 이일에 잔뼈가 굵은 친구였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100KG 넘는 몸과 피지컬이 말을 하고 있었다. 언뜻 몽골 씨름선수 같기도 했다.


"아직 아니야!! 조금 더 기다려!"


선임 반장님은 박반장의 말을 곧바로 잘랐다. 그리곤 박반장의 얼굴을 한번 쓱 쳐다보았다.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지금이야! 다 넣어!!"


"한꺼번에요???"


"어! 다 넣어!!"


우린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다 투입했다. 다시 한번 수증기가 하얗게 선임 반장님의 얼굴을 덮쳤다. 선임 반장님도 이번엔 냄새가 매웠는지 고개를 돌려 수증기를 피했다. 쿨럭. 살짝 박반장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서 팀장님 모시고 와!"


"아니 벌써요?"


"그래. 다 끝났어 모시고와."


팀장을 모시러 갔던 박반장이 홀로 뛰어들어왔다.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선임 반장님께 보고를 했다.


"팀장님은 안 드신다는데요?"


[3시간 전 우리들의 대화]


심바 씨: 반장님! 이따 라면 끓일 건데 드시겠어요?
선임 반장님: 아~ 어제 몸무게를 재봤는데 1kg 또 늘었더라고요. 94kg예요. 94. 이제 야식 안 먹어야지. 반장님 저 부르지 마세요. 저 야식 안 먹어요.
이반장: 저 살 너무 많이 쪄가지고 이제 야식 못 먹습니다. 제대로 운동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심바 씨: 야 박반장! 넌 먹을 거지?
박반장: 아 형! 저 야식 이제 진짜 안 먹어요.
심바 씨: 아닌데~ 먹는데~ 내가 미래를 다녀와보니 너 먹고 있던데~ (닥터 스트레인지 손동작 흉내 내면서)
박반장: 저 다이어트 중이에요 안 먹어요.



결국 먹을 거면서 우린 한참을 서로 속고 속이다 12시가 넘으니  주방에 모였다. 마지못해 먹는다는 사람들이 대충 끓이지도 않는다. 마치 반도체 정밀 공정을 하듯 어찌나 신중했는지 라면 끓일 때는 서로 눈도  마주치더라.


" 우리 이왕 이렇게 된 거 4대 4 씨름대회나 나갈까?"


"반장님 씨름 선수들도 이렇게 안 먹어요."


"크크크크"


영양실조 걸릴까  짜파게티에 계란까지 풀어서 먹는 구조대원들이었다. 다들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량이 많긴 한데  근육들은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내년 여름엔  식스팩에 자외선을 쐬어주자며 파이팅을 외쳤건만 짜파게티, 계란, 양파, 고춧가루, 들기름, 밥이 뒤섞여 기름기 자글자글한 욕망의 비빔밥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한때 운동선수 소리를 듣던 쥐똥만  자아가 나를 롭게 했다.

선임반장님이 팀장이었던 시절,  아마 살면서 저때 가장 많이 웃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저땐 다들 말랐네요 ㅎㅎ

인사이동으로 모두 흩어져 이제는 추억이  먹방의 시간이다. 가끔 오가며 서로의 안부를 물을  보니 각자의 자리에서 무게(?) 잃지 않고  지내는  같아 안심이 되었다. 이따금 전주 구조대로 가신 선임 반장님의 말이 생각난다. 의사는 의술로 사람을 구하지만 구조대원은 몸무게로 사람을 구한다고.. 구조현장에서 큰 힘을 쓰는 구조대원에게 틀린 말은 아닌데 변명처럼 들리는 건 기분 탓인가 보다.


마지막으로 입사동기 박반장에게

"박반장아 저번에  놀러 가니까   뺀다고 샐러드 먹고 있더라. 그런데 있잖아. 샐러드도 그렇게 많이 먹으면 살쪄. 소도  뜯고 700kg 넘기는겨.. "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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