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키웠고 사유를 생산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3~4시가 되면, 옆집 수탉 한 마리와 우리집 수탉 두 마리 오동이와 방이가 경쟁하듯 새벽을 가른다. 주사 맞기 전 엉덩이를 탁탁탁탁 때리는 것과 같은 날개짓 소리와 함께.
"꼬끼오~ 꼬끼오~"
마을 사람들 다 깨워 볼 심산일까. 추운 겨울이든, 더운 여름이든 상관없다. 그들은 때가 되면 온 힘을 다해 울어 아침을 연다.
매일 아침 빼놓지 않고 하는 행위 중 하나는 닭장 문을 열어주고, 물과 밥을 챙겨주는 것이다. 늦잠 자고 일어난 늦은 아침이라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내가 문을 열어주러 가면, 닭은 마치 놀이공원 개장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문 앞에서 서성인다. 문을 열면 연말 블랙프라이데이에 백화점 가는 사람처럼 밖으로 뛰어 나온다. 사실 별 것도 없는 담으로 둘러 쌓인 공간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들에겐 이 좁은 자유마저도 갈급했나보다.
우리 집은 현재 14마리 닭을 키운다. 언제 또 식구가 늘어날 지 모른다. 우리는 닭을 반려로 키운다. 닭에겐 각각 이름이 있다. 쑥이, 방이, 참이, 오동이, 복분이, 쓔가, 나리, 복숭이, 뽕, 오디까지. 누군가는 다른 들짐승에게 먹힐 수도 있으니 정을 붙이지 않는 게 좋다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볼수록 정이 들어서, 이름을 안 붙일 수 없다.
살면서 내가 닭을, 심지어 반려로 키울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 해본 적 없다. 도시에 살면서 TV 광고나, 치킨집 광고판에서나 봤던 닭을 내가 키우고 있다니. 가끔 실감이 안 날 때도 있다. 도시에서 닭은 그저 먹을 것에 불과하다. 나도 그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닭 없이 살지 못한다. '1인 1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닭을 많이 먹는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전망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인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약 26마리다. 20년 동안 2배나 늘었다. 도축량은 10억 1137만마리, 무게는 60만 7000t이다. 초당 32마리의 닭이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닭에 관한 생각? 딱히 해본 적 없다. 그저 먹는 것일 뿐. 광고에선 튀김옷이 입혀져 있는 닭만 볼 수 있다. 초등학생 때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파는 모습 정도를 봤을까. 닭의 살아있는 모습은 마치 전설처럼 내려져 오는 그런 것이었다. 아침이면 꼬끼오 하고 운다던지, 엄마 닭을 병아리가 졸졸 따라다닌다던지 하는 모습은 TV나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닭을 키우면서 닭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사는 동물인지 깨달았다. 주변에 고양이가 나타날 때, 경보음 울리듯이 짧고 강렬한 목소리로 울고, 내가 가서 먹이를 줄 때면 꼬꼬 꼬꼬 하며 얇고, 가늘게 수시로 운다. 배추나, 기타 다른 음식들을 가지고 갈 때, 싫어하는 애도 있는가 하면 허겁지겁 달려와 먹어 치우는 애도 있다. 누군가는 횟대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누군가는 왕겨가 가득한 땅을 헤집어 흙목욕을 하기도 한다. 우리의 모습이 각양각색이듯 닭의 모습에도 각양각색 모습이 있다.
지난 4년 동안 닭을 반려로 키워오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어떤 것을 배우기도 했다. 먹이만 보면 환장하며 달려오는 닭의 모습에 웃음이 끊이질 않다가도, 한 병아리의 죽음에 슬픔을 가누지 못한 적도 있다. 엄마 닭과 병아리가 함께 서로를 위하는 모습을 보며, 병아리 스스로 자립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을 통해 내 삶을 반추해보기도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화서원의 김재형 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보며, "다님, 기완님네는 닭으로 고기나 알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사유를 생산한다."며 닭 키우는 것에 대한 의견을 주셨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린 닭으로 거대한 장사를 하는 건 아니였지만, 그들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고, 경험을 하고 그들을 느끼고 함께 살았다.
이 글 속 이야기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4년 동안의 우리의 기록이다. 깊지 않을 수 있고, 조금은 부족할 수 있지만, 닭이란 존재에 대해 담아보려고 애쓴 흔적이다. 읽은 뒤에 닭이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인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