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다리 하나가 휘어서 왔다. 발가락이 안쪽으로 굽어 발등으로 걷고 있었다. 선천적 장애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병아리 때 교정하면 쉽게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친구의 이름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냉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냉이는 다리가 불편했음에도 자신의 방식으로 잘 적응해 나갔다. 다른 병아리들이 두 발로 흙을 파낼 때, 냉이는 한쪽 발로 땅을 파고, 다른 한 발등으로는 땅을 파는 시늉을 했다. 어렸을 적엔 이렇게 하더니, 자라면서 발등에 굳은살이 쌓여 발등으로 땅을 파기에 적합해졌다. 횟대를 만들어주었는데, 냉이는 동그란 횟대에 서 있기 불편해했다. 냉이를 위해 횟대를 동그라미가 아닌 네모로 각지게 만들어 냉이가 편하게 그곳에서 쉴 수 있게 했다. 닭들은 잘 때 항상 횟대에 올라가서 자는 습관이 있다.
냉이는 뛸 때도, 걸을 때도, 날 때도 항상 발등으로 착지했다. 아프진 않았을까. 만져보니 발등은 이미 굳은살이 박여 딱딱해져 있었다. 펴려 해도 펴지지 않았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동물병원을 찾아보았지만, 닭을 받아주는 동물병원은 거의 없었다. 몇 번의 전화 끝에 대구의 한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닭을 차에 태워 가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난동을 부리진 않을까. 밑에는 담요를 깔고, 위에는 수건으로 감싸 냉이를 편하게 만들었다. 닭은 눈을 어둡게 하면 밤인 줄 알고 잠이 든다. 냉이가 가는 동안 이불로 얼굴을 덮어 잠을 자게 만들어 편안히 병원에 도착했다. 코까지 골면서 자는 냉이를 보면서 웃음이 절로 났다. 잠깐 이불을 젖혀주기도 했는데, 의외로 냉이는 가만히 잘 앉아 있었다. 자기가 어디로 간다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병원에 들어서니, 대기실엔 개와 고양이 뿐이었다. 닭은 냉이가 유일했다. 나와 짝꿍, 냉이는 반려동물과 보호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X-ray를 찍었다. 의사 선생님은 고칠 수 있으나 백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는 이야기에 치료가 망설여졌다. 결국 예상보다 큰 비용에 치료를 포기했다.
"그래, 다리가 아프면 어떠니 너만 행복하면 됐지. 안 그러니?"
나는 냉이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냉이는 성격이 까칠했다. 장애를 갖고 있어서인지, 돌이와 자주 싸워서인지, 아니면 암컷이 쑥이 한 마리뿐이어서인지 몰라도 쉽게 흥분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공격하는 것처럼 목깃을 세우며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공격하는 것처럼 다리를 잘게 딛으며 오기도 했다. 손에 먹을 걸 올려 주면 마치 ‘네놈이 주는 거? 그래 먹어주지’라고 하는 듯 거칠게 먹이를 쪼았다.
냉이는 돌이라는 수탉과 자주 서열 다툼을 벌였다. 불구경 다음으로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라고 했던가. 냉이와 돌이의 싸움은 볼만했다. 서로 목깃을 곤두세우고 부리를 맞춘다. 마치 자석 N극과 N극처럼 그 부리는 닿을 듯 닿지 않는다. 부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상대를 견제하다가 날면서 발톱으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파닥 파다닥'
땅바닥에 처박히기도 하고, 벼슬을 물고 절대 안 놔주기도 한다. 그렇게 치열한 몇 번의 부딪힘 끝에 싸움이 끝나면 냉이는 항상 패배자로 도망가기에 바쁘다.
하루는 외출하고 집에 도착해보니, 냉이 얼굴에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돌이가 냉이의 벼슬을 찢어 버린 것이다. 벼슬은 닭들이 싸울 때 가장 많이 공격당하는 곳인데, 종종 검정 딱지가 붙어있곤 했다. 깜짝 놀라 도망가는 냉이를 붙잡고, 지혈을 해줬다.
'아이고 독하게도 싸웠구나.'
진짜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날 것 같은 싸움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을 말릴 수도 없다. 엄연한 이들의 세계니까.
주변 분들은 수컷과 암컷의 비율을 1:10으로는 둬야 평화롭다고 했다. 수컷 둘이 있으면 서로를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암컷 수가 적으면 그 암컷이 괴롭다고 했다. 수시로 올라타며 짝짓기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아니다. 우린 그 말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냉이와 돌이 둘 중 하나를 어디에 보낼 순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수컷만 있을 땐 그저 동료가 된다고 한다. 신기한 일이다. 물론, 한 수컷이 울기 시작하면 온 수컷이 따라 울기 시작하는데, 그 시끄러움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돌이가 한 쪽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 냉이는 이때를 노렸다. 냉이는 매섭게 돌이를 공격했고, 마침내, 돌이를 이겼다. 돌이는 심한 부상을 당했다. 잘 움직이지도 못하고, 계속 앉아만 있었다. 당시 집에 우리가 어설프게 지은 닭장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닭장에 돌이를 두고, 다른 쪽에 냉이를 따로 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친 뒤 그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격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곡성으로 이사 오기 얼마 전, 아침에 닭장 쪽에서 꽤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뭔 소리인가 놀라 나가보니, 다른 닭들은 멀쩡한데, 냉이만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어? 뭐지. 다가가 건드려봐도 냉이는 눈을 감은 채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죽었다
아, 이렇게 갑자기 간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다리를 절룩이며 자신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노력하던 아이였는데, 이렇게 쉽게 죽는다고?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날개 죽지 안쪽에 선명한 이빨 자국이 보였다. 담비가 분명했다. 담비는 족제비과 동물로 귀엽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닭을 노리는 포식자다. 최근 들어, 닭장 주변에서 자주 목격되었는데, 결국 냉이를 죽이고 만 것이다. 담비는 냉이를 데려가려고 물었는데, 쇼크에 죽어버린 것 같다. 허무한 죽음이었다.
우리는 냉이를 마당에 묻었다. 빨간 백일홍과 함께. 좁은 마당이었지만, 그 나름대로 자유를 많이 누리며 살길 바랐다. 뛰고, 날고, 흙을 파고 비비고, 사랑을 하기도 했던 그의 삶이 부디 헛되지 않았기를.
한편, 우리는 발칙한 상상을 했다. 혹시 쑥이가 낳은 알이 냉이와 교미해 낳은 알이라면? 이 알을 부화시키면 냉이 주니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스티로폼 박스와 온도 조절기를 이용해 어설픈 부화기를 만들고, 20일 동안 따뜻한 전구 빛을 쐬어주었다. 그러나, 20여 일이 지나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깨보니, 안에서는 썩은 계란물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우리의 기대는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