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6월 포천의 한 닭 도살장에서 한 마리 어린 닭이 구조된다. 보통 산란계는 12~18개월간 산란을 하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폐계가 되어 도살장에 실려온다. 그런데 아직 어린 닭이 트럭 안에 섞여있는 것을 발견한 운전노동자가 이를 계류장에 풀어주었다. 이후, 운전노동자들의 사료와 물을 먹으며 도살장 앞에서 생활한 닭이다.
이 닭을 동물권단체 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들이 구조했다. 이름은 애니메이션 <마당 밖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잎싹이의 이름을 가져왔다. 구조된 이후, 잎싹이는 한 활동가와 함께 원룸에서 함께 살았다. 그러나, 닭을 실내에서 키운는 것은 닭에게도 사람에게도 좋지 않다. 결국 전 동물권 활동가이자, 닭을 키우고 있는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연락이 닿았다. 그렇게 잎싹이는 우리에게 오게 됐다.
잎싹이는 갈색의 토종닭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자라다 다친 건지 위쪽 부리 한 부분이 깨져 있었고, 그곳으로 혀를 낼름거리는 습관이 있었다.
잎싹이는 다른 색깔 때문인지, 쑥이에게 호된 환영식을 받았다. 쑥이는 먹을 것 앞에서 잎싹이를 호되게 쪼았다. 그렇게 몇 번을 혼나자, 잎싹이는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눈도 안 깜빡하고 가만히 있다가, 쑥이가 안 보는 틈에 먹이를 먹고는 하였다.
잎싹이는 <마당을 나온 암탉> 주인공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닭들이 가지 않는 곳까지 서슴없이 가곤 했다. 하루는 옆 집 우사에 갔다. 그곳 밭을 막 뒤지더니, 긴 지렁이같은 무언가를 집더니 도망치기 시작했다. 혹시 먹으면 안되는 건가 해서, 따라갔더니, 잎싹이는 새끼 뱀을 세차게 바닥에 몇 번 내려치더니 그것을 꼴깍꼴깍 삼켰다.
잎싹이는 알을 많이 낳게 개량된 산란계였기에 쑥이보다 알을 많이 낳았다. 쑥이가 일주일에 2~3개 알을 낳는다면, 잎싹이는 하루 1개 혹은 이틀에 1개 꼴로 연갈색 계란을 낳았다. 그래서였을까. 잎싹이는 먹을 것을 엄청 밝혔다. 매일 계란을 낳는 만큼 그만큼의 칼슘과 영양분을 챙겨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산란계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 먹성은 희안한 것까지 뻗쳤는데, 그건 바로 스티로폼이었다. 이는 쑥이, 냉이, 돌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닭은 스티로폼을 잘 먹는다는 사실! 병아리 시절, 보온을 위해 덮어둔 스티로폼을 병아리들이 쪼아 먹기 시작한 것이다. 검색해 찾아보니, 닭은 스티로폼을 먹어도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스티로폼을 먹고, 빠른 속도로 똥으로 배출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일부로 스티로폼을 먹이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보이는 곳에 있는 스티로폼은 다 치웠다. 그런데도 잎싹이는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는 스티로폼을 찾아내 그것을 집요하게 먹었다. 부리 주변에 스티로폼 조각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안 먹었다고 딱 잡아떼는 건가?' 싶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잎싹이는 심지어 냉이의 피를 마시기도 했다. 돌이와의 싸움으로 벼슬이 찢어진 냉이가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잎싹이는 그 옆으로 다가와 피를 홀짝홀짝 핥아 마시고 있었다. 깜짝 놀라 잎싹이를 떼어내고 냉이를 지혈해줬다. 정말 눈치 없는 녀석이었다.
그렇게 함께 살던 잎싹이는 곡성으로 이사가기 며칠 전, 담비의 먹이가 되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더 많은 칼슘과 영양분을 챙겨줬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매일같이 알을 낳아야 했던 잎싹이는 스스로 부족한 영양을 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
잎싹이처럼 개량된 산란계들은 지금도 수많은 농장에서 고통받고 있다. A4용지 크기의 공간에서 하루 종일 먹고 싸고, 알을 낳는다. 2~3년이 지나면 생산성이 떨어져 도살장으로 보내진다. 이 과정에서 수컷 병아리들은 더욱 비참한 운명을 맞는다. 태어나자마자 암수 감별을 받고, 수컷이라는 이유만으로 포대기에 담겨 땅에 묻히거나 분쇄기에 던져진다. 이런 잔혹한 현실이 하루빨리 종식되길 바랄 뿐이다.
출처: 한겨레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