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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떠나 보내다

쑥이와 곡성으로 이사가다

by 아보

곡성에 이사 가기 한 달 전부터 우리 집 주변에 이상한 동물이 난입하기 시작했다.

한밤중, 닭장을 무언가 치는 소리가 났다.


“탕, 탕, 탕.”


깜짝 놀라 일어나 짚이는 막대기와, 휴대전화 랜턴을 켜고 나갔다.


“뭐야 이것들아!”


소리치자. 뭔가 도망가는 것을 느꼈다. 랜턴으로 비추니 대나무밭에 두 마리 짐승이 보였다. 혹시 나를 공격하는 건 아닐지 두려워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그들은 “쎽쎽” 소리를 내면서 사라졌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위가 어두워 정확히 그들이 어떤 동물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며칠 뒤, 그들의 행동은 점점 과감해졌다. 한낮에 닭들이 “까아아악”하며 울었다. 평상시와는 다른 울음소리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대나무밭에 버젓이 그들이 서 있었다. 두 마리였다. 얼굴은 생쥐처럼 생겼고, 몸은 족제비처럼 길고 가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담비다. 담비는 2021년부터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생물 2급으로 지정된 동물이다. 그들은 주로 꿩이나 닭, 비둘기부터 쥐, 다람쥐, 토끼, 청설모, 말벌 심지어 머루나 다래 버찌와 같은 열매도 즐겨 먹는다. 한 마디로 잡식 동물이다.


하필이면, 왜 멸종위기 생물 1급인가. 나는 귀농하기 전 서울에서 동물권 단체를 다녔다. 그곳에 다니며, 야생동물(고라니, 곰 등)을 비롯해, 반려동물(개, 고양이 등), 축산 동물(돼지, 닭, 소 등)의 권리를 지키는 운동을 했다.


‘신이시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게 동물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소리쳤는데, 막상 닭을 괴롭히는 담비를 보니, 저 녀석을 잡아서 없애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우리 닭을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면사무소에 전화하니, 멧돼지나 고라니를 사냥하시는 분을 연결해 주셨다. 사냥꾼은 “멸종위기 동물은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라며 잡을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대로 닭을 풀지도 못하고 매번 가둬 둬야 하는 건가. 속상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닭들이 답답한 것보다 차라리 자유를 누리게 풀어주는 편이 나았다. 대신 우리가 좀 더 자주 들여다보자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사고는 터졌다. 아침부터 닭들의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려왔다. 놀란 마음에 달려 나갔다. 검은색 수컷 닭인 냉이가 마당에 누워 있었다. 닭이 평상시엔 절대 누울 수 없는 자세였다. 건드려도 꼼짝하지 않는다. 죽었다. 한 쪽 다리가 구부러져 평생을 절뚝거리며 살았던 친구였다. 절뚝거리면서도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았던 친구였다. 이 생각에 이르자 슬픔이 북받쳐 올랐다.


감정을 추스르고, 그의 몸을 수색했다. 겉은 멀쩡했다. 날개를 펼쳐 밑쪽을 보니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담비는 냉이를 물어 가려고 했고, 냉이는 날개 죽지를 물렸다. 이 정도로 죽을 건 아니지만 아마 큰 충격을 받아 죽은 것이 아닐지 짐작했다. 냉이를 집 앞 마당 흙 속에 백일홍과 함께 묻어줬다. 냉이는 훌륭한 거름이 되어 태어날 것이다.


스크린샷 2025-02-28 164917.png 잎싹이와 돌이를 발견한 대나무 숲


쑥이만 남았다


곡성으로 이사 가기 며칠 전, 부산에 지인이 놀러 오라는 말에 급하게 차를 타고 나가게 됐다. 당일 바로 돌아올 거로 생각하고, 닭을 풀어주고 왔다. 큰 실수였다.


부산 지인 집에서 저녁을 먹고 쉬고 있을 때였다. 지인 집 고양이 한 마리가 내 곁으로 와,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양이가 내 팔을 엄청난 힘으로 할퀴였다. 팔에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피를 닦고, 소독했다. 이게 어떤 신호였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지인과 함께 즐겁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암컷 쑥이만 우리를 반긴다. 다른 두 마리는 어디 갔지? 옆집에 간 거 아닐까라고 옆집으로 가도 보이질 않는다. 소를 키우는 집에 나가 있나 하고 가봐도 그곳에도 없다. 마당 앞 돌이 것으로 추정되는 회색 털 뭉치만 휘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하다. 닭들이 안 보인다.


집안일하는 동안 다님이 주변을 수색하다 우리 집 위쪽에 있는 대나무 숲에서 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와니, 이리로 올라와 봐! 애들 찾았어!”


하던 일을 던져두고, 올라갔다. 돌이는 머리가 없어져 있는 상태였고, 잎싹이는 거의 먹혔다. 담비 짓이 틀림없다. 놀라고 무서웠지만, 우린 그 자리에서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 자리에 그들을 나란히 두고, 나뭇잎으로 묻어주었다. 담비의 똥으로, 다른 거름으로 또 다른 생명 탄생의 밑거름이 되어줄 터였다.


정신을 차리고 그날 있었던 사건을 추적했다. 이날이 있기 전부터 이상하게 쑥이는 원래 자는 곳이 아닌 반대편에서 자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두 마리는 가운데 횟대에서, 한 마리는 그 반대편에서 잤다. 담비는 가운데 횟대에서 자는 애들을 건드렸다. 놀란 돌이와 잎싹이는 밖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닭들은 밤에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마당 앞까지 나왔으나 결국 담비에게 붙잡힌다. 돌이가 발악하며 마당에 떨군 깃털 뭉치가 그 증거였다. 담비 두 마리는 각각 잎싹이와 돌이를 물고 대나무 숲으로 올라간다. 먼저 잎싹이를 먹었다. 돌이를 먹으려 했는데 배가 부르다. 머리만 먹고 가버린다. 이상의 정도가 내가 그날 있었던 일을 상상해 본 이야기다. 혼자 남은 쑥이는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속상했다. 애지중지 키우던 닭들을 허무하게 잃어버렸다. 닭을 가축으로 키우는 주변 이웃들에게도 닭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조그만 빈틈을 보여도 야생동물들이 찾아와 닭을 죽였다. 이웃집 목수님 닭장에는 야생 개가 철장을 이빨로 물어뜯고 들어왔다. 개는 닭은 먹지도 않고, 그저 목만 물어 죽인 뒤 다시 달아났다. 십여 마리의 닭이 모두 죽었다. 끔찍한 현장이었다.


한편으로 담비도 이해가 됐다. 담비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담비도 죽을 만큼 배가 고팠기에 닭을 먹은 것 아닐까. 살자고 벌인 일이다. 인간처럼 먹고 또 먹고, 배가 불러 소화제를 먹고 또 먹는 그런 미련한 짓은 아니었으니까.


혼자 남은 쑥이를 우린 알뜰히 돌봤다. 이사가 얼마 남지 않은 동안 되도록 집에 가둬 놨다. 혹시 안 좋은 일이 또 발생하면 안 됐기 때문이다. 쑥이는 우리를 잘 따르기 시작했다. 닭은 사회적 동물이라 자기의 집단이 없을 땐 사람을 잘 따른다.


"쑥이야, 우리 곡성 가서 잘 살자."


우리는 쑥이만 데리고 곡성으로 갔다.

냉이, 돌이, 잎싹이를 두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서글펐다.


KakaoTalk_20250228_164454625.jpg 동료들을 잃고 혼자서 낮잠을 자는 쑥이


이제 와서 생각해 보건대, 만약 쑥이까지 잃었다면, 그 상실감은 더 컸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쑥이만 생각하면 괜스레 울컥한다. 쑥이가 아직 우리와 함께 해줘서, 더 많은 친구와 함께 건강히 잘 살아줘서 고마울 뿐이다.


쑥이야. 할머니 될 때까지 우리랑 건강하게 잘 살자. 손자 수십 마리 볼 때까지 오래 살자. 쑥이야.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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