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나다
23년 2월, 곡성에 이사왔다. 이사 오기 전부터 아는 분과 함께 부단히 닭장을 만들어보려 노력했지만, 내 실력으론 어림도 없었다. 이사온 뒤, 짝꿍네 아버님의 힘을 빌려 겨우 닭장을 완성했다. 닭장은 쑥이 한 마리만 있기엔 넓어 보였다. 짝꿍은 닭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 닭 두 마리를 입양해왔다. 회색 빛의 수컷은 방아의 방이, 회색 암컷은 참나물의 참이라 이름 지었다. 이 둘은 쑥이를 경계하는 듯 보였지만, 금새 친해졌다.
따뜻한 9월, 한창 낙엽이 붉게 물드는 시기에 암탉 참이가 알을 품었다. 밀양 살 때는 병아리를 부화시킬 수가 없었다. 집도 너무 좁고, 이사할 가능성도 있었기에, 괜히 식구를 늘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쑥이나 잎싹이도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곡성에서 만난 방이와 참이 그리고 밀양에서 온 쑥이는 점차 사이가 좋아졌다. 먹이도 충분하고, 공간도 넓으니 참이는 알을 품기 시작했다. 11개의 알을 품었는데, 참이는 쑥이가 낳은 알도 함께 품었다. 11개의 알을 자신의 가슴과 배로 온전히 덮었다. 자신의 온기를 직접 전달하기 위해서 참이는 가슴털을 뽑아 직접 살이 맞닿게 했다.
참이는 처음 만날 때부터 낯을 많이 가려서, 우리와 항상 거리를 두던 닭이었다. 야생 닭의 모습을 본다면, 참이 같은 모습이 아닐까. 참이는 못 먹는 것이 없었다. 무더운 여름, 암탉 복분이가 미처 부화시키지 못한 알에서 나온 것을 꾸역꾸역 삼키기도 하고, 남들이 먹지 못하는 향 있는 잎도 잘 먹었고, 심지어 누린내 나는 노린재를 먹기도 했다. 노린재는 천적이 없고, 농작물의 잎을 빨아먹어 농부들에게 골칫거리인 해충이다. 이 정도면 농업기술센터가 와서 참이의 DNA를 복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포란(알을 품은 행위)을 시작하니 이전보다 더 낯을 가린다. 참이가 포란하고 있는 곳은 꽤 높은 곳이었다. 새끼들이 다칠 수 있어, 이를 내리려고 하니, 참이는 쪼고, 발로 할퀴며 나를 적극적으로 막아냈다. 어떻게 해야 할까. ChatGPT에 물어보니, 밤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닭은 낮에 주로 활동하는 동물로, 어두운 환경에선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자는 틈을 타 옮기기로 했다. ChatGPT 말이 맞았다. 참이는 목이 축 늘어진 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내가 참이를 들고 있는 사이 짝꿍이 알을 옮겼다. 다음 날 참이는 알도 없는 그곳으로 가 한참을 들여다 봤다. 뭔가 이상해진 것임을 눈치 챈 것이다. 한참 혼란스러워 하더니, 다시 밑으로 가 알을 품었다.
암탉은 새끼를 부화시키기 위해 21일 동안 포란한다. 21일 동안, 잠깐 나와서 흙 목욕을 하거나, 물을 마시고, 밥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참이는 계속 알을 품고 있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한 생명을 21일 동안 품었다.
사람은 한 생명을 낳기 위해 마지막 월경일로부터 280일 동안 배에 태아를 품는다. 280일 동안 약 2.6kg까지 자라는 태아를 온전히 감당한다. 임신한 것만으로 수시로 올라오는 입덧과 배가 불러오며 하복부가 당기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 지난한 시간이 지나, 양수가 터지고, 머리부터 빠져나온 생명체는 좁은 자궁에서 빠져 나와 세상의 빛을 마주한다.
소나 닭, 돼지는 새끼를 낳으면 바로 서 어미의 젖을 문다. 하지만 사람만이 아이를 오랜 시간 돌본다. 적게는 3~4살 아니, 지금은 30~40살이 되도록 자신의 새끼를 돌본다. 한 생명을 잉태한다는 건 세상의 일 중 가장 신성스러운 일이다.
부화 일인 21일을 계산해 보니, 하필이면 휴가와 겹친다. 휴가 가서 새끼가 나오면 곤란한데. 다행히 휴가 하루 전, 새끼가 나왔다. 병아리 여섯 마리였다. 회색과 검은색 털이 섞인 병아리와 검은색 털로 덮인 병아리였다. 참이에게 쌀알을 주면, 그것을 집어 "꼬꼬꼬꼬"하면서 병아리에게 주었는데, '마치 이건 먹어도 되는 거야.'라며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 병아리들은 그걸 용케 알아듣고는 그것을 집어 먹었다. 병아리들은 참이 품에 계속 붙어 있었는데, 한 녀석은 벌써 참이의 등에 타기도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모든 생명의 새끼는 어찌 저렇게 귀여울까.
이 모습은 한 달이 지난 뒤에도 계속되었다. 병아리들은 이제 어느 정도 커서 참이의 날개 죽지에 들어가기엔 좁았는데, 병아리들은 아직도 어린 날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참이 품속을 파고 들었다. 참이는 해괴망측한 모습으로 잠을 자게 되었는데, 날개는 펴져 있고, 다리를 굽히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참이는 자신의 잠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이후 병아리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더니, 금방 어른들의 잠자리에서 함께 자기 시작했다.
이후, 참이는 언제 자기 새끼였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새끼들을 대했다. 인간에 비하면 정말 빠른 자립이다. 병아리들은 넘어지고, 다치면서 스스로 걷기를 배우고 날갯짓을 배웠다. 참이는 그저 그것을 지켜볼 뿐 더 이상 간섭하지 않았다. 마치 남인 것처럼. 지금은 서로 낯설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