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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이의 첫 계란과 채식주의자

by 아보

다님 아버님과, 우리 아버지 도움으로 겨우 닭장을 완성했다. 땅을 개간하고 깊이 박힌 대나무 뿌리를 제거했다. 뒷마당 대나무를 잘라 토대를 세우고, 주워 온 옛날 문을 붙였다. 안쪽에는 닭이 잘 수 있는 횟대를 만들어 주었다. 닭은 높은 곳에서 자는 것을 선호한다. 넓진 않지만, 닭 세 마리가 잠자기에 충분한 공간이 완성됐다. 매일 아침 풀어줄 테니 집이 넓을 필요는 없었다.


닭장에서 지낸 지 얼마나 지났을까. 하루는 암컷 쑥이가 안절부절 몸을 가만히 있지 못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여기저기 서성였다. 갑자기 병아리 시절 자기가 살았던 우리 집 안을 들어오려고 하길래 문을 열어줬다. 지금은 사라진 대야가 있던 쪽으로 가서 뭔가 찾는다.


‘아 알을 낳으려나 보다!’


태어난 지 5~6개월이 지났으니 알을 낳을 때가 됐다. 여기서 낳으면 안 된다. 쑥이를 안아 다시 밖으로 내보냈다. 쑥이는 급히 자기 집으로 갔다. 신속하게 짚을 깔아줬고, 쑥이는 부리를 이용해 그곳을 야무지게 둥지로 만들기 시작했다. 40분 정도가 지났을까. 작고 귀여운 계란 하나를 그곳에 낳았다. 마트에서 보는 계란의 1/2 크기 정도는 될까. 하얗고 작은 계란. 쑥이의 따뜻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를 '초란'이라 한다. 성인 닭이 되었다는 신호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계란을 먹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마치 햄릿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외친 것처럼 우리에겐 심각한 문제였다.


나와 짝꿍 다님은 오랫동안 채식을 해왔다. 다님은 고등학교 시절, 다큐<Earthlings>를 본 뒤로 채식을 시작했다. 채식을 실천하면서 베지쑥쑥이란 채식 동아리를 만들었고, 채식과 관련된 책과 다큐를 만들고, 영화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나 또한 동물권 단체 면접을 준비하며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읽고 채식을 결심했다.


책을 읽기 전까지 먹거리에 무지했다. 하지만, 축산업의 현실을 알고 난 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쉽게 시작할 수 있는 해산물과 채소만 먹는 페스코(Pesco) 채식을 하다가 점차 완전 채식(Vegan)을 하게 됐다. 멸칫국물, 김치에 들어간 젓갈 하나 허용하지 않았다.


채식한 지 5년 차, 과민성대장증후군이란 병을 얻었다. 먹기만 하면 배가 아프고, 자주 설사하는 병이다. 1~2년 차엔 단식을 해보기도 하고, 자연식물식을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생활협동조합에서 육류와 해산물을 사 먹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야 다른 동물도 존중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배는 아팠다. 극단적으로 생각한 내게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8체질 카페'라는 곳을 들렸다. 이곳에서 목음체질을 판정받았다. 목음체질이란 간이 가장 강하고, 폐와 대장이 약한 체질로 소고기와 우유, 뿌리채소 등 따뜻한 종류의 음식이 맞는 사람이다. 아뿔싸! 이런 사람이 채식을 했다니, 배가 아픈 게 당연했다. 그렇게 한참 고기류를 먹으며 지냈다. 처음엔 나아지는 듯 했지만, 가면 갈수록 살이 찌고, 온몸에 염증이 생겼다.


1개월 뒤, 대구 '8체질 연구소'에서 정반대 판정을 받았다. 금음체질로 판정했다. 채식과 해산물을 주로 섭취해야 하는 체질이다. 연구소에선 극단적 채식을 하면, 원래 장이 쉽게 차가워 질 수 있다며, 적절한 육류 섭취도 권장했다. 자신에게 이로운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의 분류표를 주며 7:3의 비율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8체질을 더 깊게 공부하면서 내 몸의 원리를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생선과 육류를 섭취하기 시작했다.


이후 조화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육식과 해산물 그리고 채식. 먹는 것의 문제는 '무엇을 먹느냐'보다는 '얼마나 균형을 맞추느냐'였다. 물론 공장식 축산과 거대 어업을 지지하지 않는다. 가능한 적게 소비하고, 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하며, 직접 농사 지어먹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이런 고민 끝에 계란을 먹기로 했다. 계란 맛을 느끼기 위해, 멀리 수입된, 어떻게 가공됐을지 모를 가공 계란을 먹느니, 집에서 건강하게 자란 닭이 낳은 계란을 먹기로 했다. 두부 하나를 먹더라도, 자동차를 타고 나가야 했고, 플라스틱 쓰레기가 만들어진다.


쑥이의 작디작은 초란은 양은 적었지만, 참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났다. 이후로, 우린 닭의 계란을 자주 먹었다. 모아서 우리의 계란이 필요한 분들께 팔기도 했다. 계란 껍질은 모아서 닭에게 돌려줬다. 닭들은 신나게 껍질을 받아먹었다. (계란 껍질은 닭에게 중요한 칼슘 공급원이다.)


그만큼 닭들에게도 좋은 먹이를 챙겨 주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그저 일방적으로 얻어먹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살피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

초란을 낳을 때쯤 찍은 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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