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병아리와 첫 만남

쑥이, 돌이, 냉이 병아리를 키우게 되다

by 아보


2022년, 짝꿍인 유다님과 내가 처음 밀양으로 귀농했던 해다. 자급자족의 삶을 꿈꾸며 서툰 손길로 밭을 일구고, 농사를 배우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귀농하는 데 도움을 주셨던 김진한 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병아리를 한번 키워보실래요?"


병아리? 생각지도 못했다. 단번에 거절했다. 어떤 생명을 키운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한 생명을 키운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1~2년 키우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10년은 함꼐해야 할 존재 아닌가. 귀농 전, 동물권 단체에서 일하면서 학대받고, 버려지는 수많은 동물을 보았다. 그때 다짐했다. 함부로 생명을 들이지 않겠다고. 무언가 키운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일이던가. 매일 같이 밥 주고, 똥을 처리해야 한다. 나는 지금 내 몸 하나 건사하기 벅찬 사람이다.


“아직 키울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정중히 거절했다. 진한 님은 끈질겼다.

“에이 그래도 키우시죠. 그냥 해봐요. 별거 아니에요.”


다님은 키우고 싶은 눈치였고, 죽어도 안 된다는 게 내 의견이었다. 그러나 진한 님의 거듭된 설득과 다님의 간절한 눈빛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초등학생 때 키우던 푸들 '곰돌이'와 햄스터 '햄토리' 이후 처음으로, 살아있는 생명체 세 마리를 받아들였다.


한 마리는 회색과 하얀색이 섞여 있었고, 두 마리는 검은색이었다. 주먹보다 작은 생명체에 털이 복슬복슬 덮여 있었다. 그런데, 검은색 한 마리는 다리가 꺾여 발등으로 걷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걸까 싶었다. 병아리 시절 교정하면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우리가 키우고 있는 닭의 품종은 '청계'라는 품종이다. 품종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 중심적인 말이긴 하다. 자연에선 원래 교잡되며 자라왔고, 그것이 오히려 건강하기도 하다. 청계는 원래 칠레에서 자라던 아라우카나 종에서 유래했다. 귓불에 털이 콧수염처럼 털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후 미국에서 개량시된 '아메라우카나 종' 한국에 들어와 토종닭과 오골계 등과 교잡되어 청계가 되었다. 청록빛 알을 낳기에 '청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집엔 병아리가 살만한 곳이 없었다. 급한 대로 창고에 있던 고무대야를 씻고, 그 안에 왕겨를 깔았다. 검색해 보니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휴대전화 거치대에 조명을 연결해 대야에 빛을 쐬어 주었다. 병아리들은 따뜻한 듯 보였지만, 낮에도 계속 중간중간 졸았다.


생각해 보니, 밤낮 없이 환하게 켜진 조명은 병아리가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것은 병아리를 빨리 키우기 위해 공장식 축산에서 하는 관행 방식이 아니던가! 급하게 방법을 바꿨다. 낮에는 조명으로 따뜻하게. 저녁에는 주전자 물을 따뜻하게 데워 수건과 감싸 넣어줬다. 우리 집은 대나무로 해가 안 들어오는 데다가 북향으로 낮에도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추웠다. 병아리들은 온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서로 몸을 비벼대며 체온을 지켰다. 엄마 닭의 따뜻한 품속이 있었다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


한 손안에 온전히 쥐어지는 작은 생명체를 집에 들이는 일은 힘겹기보다, 즐거움이 더 컸다. 다님과 나는 번갈아 가며 고무대야 위 덮여 있는 담요 속을 파고들어 병아리를 지켜봤다. 대나무를 잘라 밥그릇과 물그릇을 만들어줬다. 병아리는 부리를 물에 대고 대여섯 번을 쩝쩝거리고 고개를 들어 물을 삼켰다. 목 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그들의 물을 삼키는 방법이다. 꼬물꼬물 다리를 움직이는 것, 날개를 움직이는 것, 똥을 싸는 것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놀라웠다. 똥을 쌀 땐 날개를 번쩍 높이 들어 항문에 힘을 주어 빼낸다. 하얗고 짙은 녹색을 띤, 작은 물방울만 한 똥. 병아리는 이 물방울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어떻게 저렇게 작은 존재가 살아 움직인단 말인가.


병아리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잘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금방 걸음을 걸었고, 날개를 퍼덕였다. 손톱만 한 날개는 점점 엉덩이까지 자랐다. 그들은 수시로 온몸의 털을 관리했다. 털 하나하나 이쁜 방향으로 자랄 수 있도록 곱게 손질해 주는 것 같았다.


하루는 뒷마당 대나무밭에 풀어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흙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다리와 부리로 흙을 부수고, 가슴을 대고, 뒷발로 흙을 차올려 날개로 흙을 자기 등 위에 끼 얹었다. 퍼덕이는 날개짓에 흙이 온몸을 감쌌다. 한참 흙 목욕을 한 뒤엔 몸을 털어, 자신 몸에 붙어 있는 진드기나 오염물질을 처리했다.


우리는 각 병아리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지천으로 널린 풀들처럼 건강하게 야생적인 삶을 살라는 마음으로 검은 암컷은 '쑥이', 회색 수컷은 돌나물에 '돌이', 검은 수컷은 '냉이'라 부르기로 했다.


병아리들이 성장하면서 고무대야는 좁게 느껴졌다. 그들은 고무대야를 넘어 집에 있는 화분의 흙을 뒤집어 놓기도 하고, 식탁 밑에 숨어있기도 하고, 자꾸만 탈출했다. 하지만 마땅한 닭장을 만들 실력과 체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중닭이 되어서도 계속 고무 대야에서 생활해야 했다. 결국 차선책으로 그물을 높게 치고, 그 가운데에 횟대를 만들어 그곳에서 쉴 수 있도록 했다.


20210405_145048.jpg 병아리가 크면서 고무대야는 그들에게 좁았다. 그들은 수시로 탈출했다.


어느 날 아침, 괴상한 울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꼬...꼬오!"


맑고 청아한 울음 소리가 아니었다. 목에 물을 머금은 듯한 어설픈 울음이었다.

수탉 냉이와 돌이가 새벽부터 서툰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큰일이다! 얼른 닭장을 만들어야 한다!


keyword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