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주연의 2022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의 원작 소설 리뷰
* 본 글은 2018. 2. 7. 에 작성된 글로, 방영 예정인 2022 쿠팡 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가 정한아 작가님(동문><)의 <친밀한 이방인>을 원작으로 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예전에 쓴 글을 브런치에 공유하고자 올립니다.
1. 리뷰
고등학교 때의 특별한 경험으로 인해 더욱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 있지만, 정한아 작가님의 문체 하나하나 다 소중하고 때론 마음이 저릿할 정도다. 누가 내 마음을 활자로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더없이 솔직하게 옮긴 기분이랄까. <달의 바다> 이상으로 매력적이고 그만큼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아쉬웠던 <친밀한 이방인>.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 모든 서사를 힘겹게 이끌어가는 번역가? 어디서부터가 진짜고 가짜인지를 알 수 없었던 엠? 순진무구한 캐릭터로 작은 반전을 준 진이? 그 모두가 맞을 것이고, 동시에 주인공이 인터뷰를 진행했던 인물 한 명 한 명이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 점이 좋았다. 어쩜 이리도 일상 또는 삶을 바라보는 감정을 예리하게 포착하는지, 그 시선과 관찰력 등 작가가 가지고 있는 힘이 부러웠다.
거짓말의 농도가 달라졌다. <달의 바다>에서의 거짓말은 힘든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상상력과 긍정을 이끄는 것이었다면, 이번 <친밀한 이방인>의 거짓말은 삶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어차피 내가 정하는 내 인생의 배역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부분이 뭐 그리 이상할까. 다만 그 거짓말들이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도였는지, 아니면 내가 원해서 주체적으로 실행한 것인지, 그러니까 거짓말의 원인이 능동적인지 수동적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아직은.
소설을 쓰는 것이 행복하다는 엠의 말에서 그가 소설가가 아님을 알아내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글이라는 게 그렇다. 한 순간은 내가 꽤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만들다가도 또 어느 순간은 나의 가장 시린 부분을 공개하는, 가장 부끄러운 매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오래 곱씹어서 생각할 것 같다.
다소 많은 이야기와 여러 소재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함에도 이야기를 쭉쭉 밀고 나가는 흡입력이 최고였던 소설 같다. 사실 결말이 그렇게 와 닿고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소설의 과정이 너무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정한아 작가님의 작품들이 더 기다려진다.
2. 인상 깊은 구절
- 네, 이런 이야기가 어리석게 들린다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이 모든 게 대단한 암시처럼 느껴졌어요. P16
- 텍스트로 삼은 문학작품들, 그것들은 한때 내가 삶의 경전으로 삼은 것들이었다. 한 편의 소설이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P24
- 글을 쓸 수만 있다면 모든 게 좋아질 것이다. 정지되었던 삶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P29
- 하지만 그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누구나 자기의 환상을 좇는 것이다. P52
- 나는 겨우 스물다섯 살이었다. 삶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P81
- 드디어 혼자가 되어, 정말 혼자라는 것을 즐기기 위해 P83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보호하게 되어 있어요. 어쩔 수 없이 그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상처받지 않는 쪽으로 단련되게 되어 있죠. P117
-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페허가 된 길목에서. P133
- 나와 똑 닮은 아들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 아이와 나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 그런데 또 너무나 같다는 것. 내가 밀어낸 내 자신이, 그 자국 그대로 튀어나고 순수와 무구의 얼굴로 나를 보는 것. 그 기분을 아십니까? 네, 그게 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P156
- 나는 단지 한 정신 나간 여자를 쫓고 있는 또다른 정신 나간 여자일 뿐이었다. p158
- 그는 단어 하나하나를 손에 쥐어보고, 그 무게와 질감을 느껴본 뒤에야 한 줄의 문장을 썼다. P191
- 하지만 저는 소설을 쓰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말은 너무 가볍고 환해요. P198
- 오랜 시간 내가 간절히 바란 것은 오직 하나, 진짜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P236
- 마치 막간에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 배우들처럼 우리도 잠시 서로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어마어마한 양의 대본과 지시문에서 벗어난 느낌이었어요. 그곳에서는 거짓말이 필요없었어요.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