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문고전 순례 (8) 역사
<나의 서양 미술 순례> 로 유명한 故 서경식 작가(1951-2023)가 평생 품었던 화두 두 가지는 ‘디아스포라’ 그리고 ‘기억과 증언’ 이었다.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난 작가는 일본인 아니면 조선인 그도 아니면 한국인 중 어떤 민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야 하는지 늘 고민했고, 스스로를 어디에도 명확히 속하지 않고 늘 주변에서 겉도는 경계인으로 생각했다. 경계선 위에 선 채 어느 한 쪽으로 섣불리 편입되지 못하는 것이다. 편입되지 못하는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다. 너는 저쪽 편이 아니었냐면서 경계선 양쪽으로부터 은밀하게 배척당하는 것이다. 정체성에 대한 그의 고민은 국적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살고 있는 그는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을 떠나 해외에 다녀올 때면 일본 정부로부터 반드시 재입국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는 일본에 살고 있지만 일본인이 아닌 것이다. 이런 정체성의 불확실성은 곧 자신과 같이 디아스포라(이산)의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고, 이는 서경식 작가가 ‘기억과 증언’이라는 두 번째 화두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계에 선 디아스포라인들은 특정 국가 또는 공동체에 깊게 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국가에 의해 쉽게 무시되거나 억압되거나 은폐되어 왔다.
서경식 작가는, 자신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존재와 이들이 잊혀지도록 강요받아 왔던 역사를 계속해서 환기시키고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행위를 자발적인 노력이 아닌 치열한 의무로 여긴 그의 분투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책과 말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갔다. 기억되고 전달되지 않는 역사는 쉽게 잊혀지기 때문에 그는 틈날 때마다 재일조선인의 삶과 역사에 대해, 차별에 대해, 차이를 무시하는 공동체의 억압에 대해 증언했고 진술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는 <난민과 국민사이>,<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언어의 감옥에서>, 그리고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등 30여 권의 책을 펴내며 꾸준히 기억하고 증언하고 전달했다. 스물 일곱 살에 서경식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하고 놀라워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무렵이라 그가 쓴 <나의 서양 미술 순례>를 가볍게 읽은 것 뿐이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서경식 작가가 펴낸 모든 책을 모두 사서 읽게 된다. 저토록 끈질기게 자신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존재를 탐구하고 공동체의 억압을 증언하려는 작가의 시선에 존경을 보낸 것이 벌써 십 수 년 전이다.
기억과 증언.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온전하게 기억하는 것도 물론 어렵지만, 그것을 다른 이에게 증언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법이다. 우선 내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것을 나의 언어로 다시 정제해서 이를 텍스트, 음성,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보다 머리 속에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이 몸 밖으로 표현되어지는 것 사이의 간극은 깊다.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꺼내어진 기억이라는 것이 타인으로부터 너무나 손쉽게 공격받을 수 있다는 점도 증언을 어렵게 만든다. “너 그거 사실 맞아?”, “내 생각에는 네 말이 너무 편파적인 것 같은데?” 라는 타인의 말은 아주 쉽게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나아가 기억하고 증언하는 것 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각자의 기억은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나의 기억과 증언에 대한 타인과 공동체의 반감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다. 나의 증언은 선의를 갖고 자발적으로 시작되었으나 타인의 반감과 냉소 앞에서 쉽게 그 동력을 잃고 사라지게 된다. 맥이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무언가를 기억하고 증언하지 않으면 무수히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작은 존재들을 미래에 알릴 길이 없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하고 가치있는 작업이다. 다시 말해 뭔가를 기록하여 이를 타인에게 전하겠다는 시도는 일종의 정념(情念)을 필요로 한다. 나는 이것을 알려야 한다, 나는 이것을 알리지 않으면 안된다, 비록 사람들이 이것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는 지금 이것을 표현해야만 한다……
헤로도토스가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에 기술한 <역사>는 서구에서 역사라는 개념과 역사 서술의 형식을 최초로 정립한 책으로 잘 알려져있다. <역사>는 잘 알려진대로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 도시 국가 사이의 전쟁 서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페르시아, 그리스, 이오니아 지역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트라키아, 이집트 등 주변 지역을 모두 아우르며 이들 민족의 흥망성쇠, 인물, 문화, 생활풍속에 이르기까지 그가 직접 경험하고 채집하고 조사한 자료를 역사라는 이름으로 모두 묶어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영화 <300> 속 “나는 관대하다” 대사로 잘 알려진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를 침공하러 갈 때의 군대 복식에 대해 설명한 대목을 보자. 그리스를 침공하는 페르시아 육군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인은 물론 메디아, 키시아, 아시리아, 박트리아, 인도, 아리오이, 파르티아, 코라스미오이, 소그디아, 간다라, 다디카이, 카스피오이, 사란가이, 우티오이, 미코이, 파리카니오이, 아라비아, 에티오피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족의 복식과 풍습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1세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바다를 건너 아테네와 스파르타와 어떻게 전쟁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헤로도토스가 살았던 시기에 그가 생각했던 전체 세계의 요동치는 흐름을 모두 담아내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 책에는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의 역사와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물과 사건이 종종 기술되어있어 책을 읽다보면 지금 이 이야기가 대체 전체 맥락에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암담한 기분이 들때가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의미가 없는 이야기들이 점차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듯 하나의 서사로 엮이며 개연성과 인과성으로 묶이는 것을 보면, 헤로도토스가 일종의 거대한 생명의 나무를 텍스트로 그려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무척 궁금했던 것은, 무엇이 헤로도토스로 하여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역사, 문화, 민족을 망라하여 누군가에게 증언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했는지, 그 놀라운 정념의 근거가 궁금했다. 헤로도토스보다 200 년 전 등장했던 호메로스는 당시의 전승을 집대성하여 <일리아드>, <오디세우스> 서사시를 완성하였지만 그것은 아직 역사 이전에 예술의 영역에 더 가까웠다. 호메로스는 이 서사시를 통해 신과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이야기했지만 그 서사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세 여신의 내기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리스 군과 트로이 군이 서로 전쟁을 할때면 올림푸스 신들이 하늘에서 직접 내려와 인간과 함께 싸우곤 했다. 호메로스 시대에는 인간과 신이 함께 섞여있었고 때문에 그의 작품은 신화와 역사의 중간 형태에 가까웠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지중해 일대의 모든 인물과 사건을 다루려고 노력하며, 마치 내가 이 시간과 공간 전체를 기억하고 증언하겠다는 마음으로 역사를 기술해나가고 있다. 그건 김영하 작가가 이야기하는 ‘자기 해방의 글쓰기’와는 조금 다른 영역에서의 글쓰기 행위였다. 자기 해방의 글쓰기는 나 자신을 향한다. 나에 대한 것, 내가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나의 사유가 시작되어 결국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알아가기 위해 생각을 조각하고 글로 표현한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해,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해, 나의 공동체를 둘러싼 전체 세계로 관심을 넓혀가며 그것을 모두 아우르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나만을 해방시키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전체를 기술하여 우리 모두가 각성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그가 단지 전제군주정을 실시한 페르시아에서 역사의 실패의 씨앗을 찾고, 독재를 거부하고 민주정을 옹호한 그리스 도시 국가의 정치체제를 찬양하겠다는 목적아래 <역사> 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건 단순히 유명해지겠다거나 부유해지겠다는 욕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를 기록하겠다는 정념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속한 우주를 증언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헤로도토스는 이오니아 지방의 할리카르나소스에서 지중해 주변의 국가와 민족만을 경험하고 이해했고 그리스 북쪽의 마케도니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지중해에서 태어나 그것이 전부인 세상을 살아갔다. 그는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리비아와 에티오피아에 대해서 알았지만 그 남쪽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 몰랐고, 지금의 이스탄불 너머의 스키타이 민족과 트라키아 민족에 대해 알았지만 그 북쪽에 어떤 민족이 추위를 이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동시대의 대부분 서구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시아의 존재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했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 이외에 고대로부터 전승되는 자료를 참고했다고 하여도, 그 자료 역시 지중해와 근동의 인간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세계관은 지금과 달리 좁고 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에게는 지중해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이 그가 살아가는 우주와 세계 그 자체였고, 설령 그 세계 이외의 지역에 누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가 속한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설명되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세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좋았다. 그가 손을 힘껏 뻗어 닿는 모든 지역의 그가 속한 시대의 모든 시간을 기억하겠다는 엄청난 생각, 그 생각이 그가 역사를 저술한 거대한 정념의 실체였다.
그는 그가 살아가는 우주를 기록한 최초의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건 인류 최초의 제국을 건설한 다리우스 1세나 크세르크세스 1세도 하지 못한 일이며, 아직 신과 인간의 경계에서 거닐던 호메로스도 하지 못한 일이다. 어쩌면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저술 할 때 얼굴에 웃음을 가득 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속한 우주를 타인에게 들려주는 최초의 인간이 될 생각에 말이다. 그 우주는 신의 우주가 아니다. 그 우주는 올림푸스의 신이 야합하고 반목하는 신화 속 우주가 아니다. 그 우주는 인간의 우주다. 현대인이 지구를 중심으로 반지름 약 465억 광년 크기의 구(球)의 형태를 관측 가능한 우주로 인식하는 것처럼, 헤로도토스가 그려낸 인간의 우주는 지중해를 둘러싼 공간이었고 그 우주 속에서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죽어갔다.
시간의 흐름, 공간의 변화, 인간의 생멸을 기록하고 이를 후대에 전하려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경외감이 든다. 임진왜란을 겪고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懲毖”는 생각으로 <징비록>을 저술한 류성룡, 궁형이라는 치욕을 겪고 난 이후 입신양명하여 효를 다하겠다는 정념으로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 자신이 살고 있는 우주를 기록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역사>를 남긴 헤로도토스는 모두 같은 인물이다. 그들은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발견한 글쓰기의 이유를 토대로, 나와 타인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이를 증언하겠다는 정념으로 가득했다. 이것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념은 반대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을 읽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독자로서의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기록하는 자의 정념과 읽는 자의 의무는 서로 닿아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변명하고 싶은 것이 있다. 무언가를 기억하고 증언하는 행위에 있어 모두가 헤로도토스처럼, 류성룡처럼, 사마천처럼 거대한 사건을 목격하고 이를 기억하여 증언해야 한다는 편견은 자칫 큰 중압감을 만들어내 그 행위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빈센트 반 고흐도, 구스타프 클림트도 시대의 무언가를 증언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면에 휘몰아치는 감정의 동요를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서 캔버스 앞에 섰던 것처럼, 무엇을 증언할 것인지 그 대상의 크기와 위대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크든 작든 나는 이것을 말하고 싶다는 원초적인 강렬한 정념, 내가 이것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것은 단지 나의 해방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할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의무라는 경건한 정념, 그것이 나에게도 있는지 여부가 더욱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헤로도토스처럼 <역사>와 같은 책을 저술할 필요는 없지만, 헤로도토스처럼 자신이 속한 소우주의 ‘역사’를 기억하고 증언할 수는 있을 거다. 우리 모두는 헤로도토스가 아니지만 또 동시에 그렇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너는, 무언가를 기억하여 누군가에게 증언하겠다는, 그 일을 기꺼이 하고 싶고 해야만 한다는 정념이 과연 있는가. 너는 네가 살다가 사라질 이 세상의 목격자이자 증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손쉬운 감상자가 될 것인가. 이 질문은 나, 너,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나는 어쩌면 단지 휘발되어 사라질 감상자가 되지 않고 싶다는 작은 욕망으로 이 글을 적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타인의 서사를 듣고 머리를 끄덕이는 것에만 만족하고 싶지는 않은 거다. 나도 최소한 무언가를 말하고는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