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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화엉 Sep 23. 2024

주변에서 중심으로 그리고 다시 주변으로

나의 인문고전 순례 (7) 군주론

1막 뒤러와 미켈란젤로


미국으로 MBA를 떠나기 전 6개월 동안 회사에서 알고 지냈던 신입사원이 있었다. 나와 같은 조직에 아니었지만 같은 층에서 일하며 그 신입사원이 배치된 부서에 내가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 많았던 터라 자주 얼굴을 보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신입사원은 조금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었는데 회사가 에너지 기업이다보니 일반적으로 경영학, 경제학, 혹은 화학공학이나 산업공학을 전공한 신입사원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신입사원은 학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다는 것이다.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나서 그것과는 꽤 거리가 멀어보이는 기업에 와서 사업을 분석하고 숫자를 다루고 보고서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번은 점심식사를 하며 (아마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이미 물어봤겠지만) 어떻게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이런 일반 기업에 오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았는데, 대학 졸업 후에 공부를 더 하기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고 사회생활을 하는 경험을 얼른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기억이 난다. 예술에 대한 안목은 없지만 미술사에 대해 오래도록 관심을 가졌던 나는 신입사원과의 대화가 무척 즐거웠다.


신입사원과 점심식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서 그녀에게 간단한 이메일을 하나 보냈다. 나는 예전부터 신준형 교수님의 <뒤러와 미켈란젤로> 책을 오래 전부터 아주 좋아했는데, 신준형 교수님은 신입사원이 졸업한 학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고 혹시 신입사원도 이 교수님을 알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입사원에게 “...... 서가에 있는 여러 예술 관련 책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서울대 신준형 교수님이 쓰신 <뒤러와 미켈란젤로> 책이거든요. 제가 워낙 신 교수님의 책을 좋아해서 심지어 MBA도 신 교수님이 공부하신 미국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으로 갈까 생각도 했죠 ……” 라며 이메일을 보냈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 날 오후 신입사원으로부터 반가운 답장을 받았다. 


신입사원에게 신 교수님은 학사 논문 지도 교수여서 그분을 모를수가 없었고, 그녀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자신이 공부했던 학부의 교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말이다. 반가운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10년 전 한창 미학에 빠져 이것저것 공부하고 읽을 무렵 나에게 큰 울림을 준 두 권의 책이 있었는데 하나는 고 서경식 작가의 <나의 서양 미술 순례>이고 다른 하나가 신준형 교수의 <뒤러와 미켈란젤로>였다. 서울 광화문 한 가운데에 위치한 이 빌딩에서, 이 삭막한 일터의 현장 속에서 신준형 교수님과 이 책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또 그 교수님으로부터 학부 시절 직접 수업을 들었던 사람이 나와 같은 층에서 일하고 있다니. 세상은 참 묘하게 인연이 닿는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의 신준형 교수의 <뒤러와 미켈란젤로>는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과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와 함께 그가 펴낸 르네상스 미술사 3부작 중 첫 번째 책이다. 신 교수는 이 책에서 문화권력의  ‘중심’과 ‘주변’이라는 단어로 16세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두 명의 거장인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와 독일의 뒤러를 비교한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미켈란젤로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도제를 거쳐 로렌초 데 메디치의 후원 아래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아나가며 회화, 조각, 건축 전 분야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활약을 펼친다. 스물 넷의 나이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를 선보이고 일흔을 앞둔 나이에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며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잡는다.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다. 2013년 피렌체와 로마 여행을 갔을 때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게 되었는데 나 역시 세상의 중심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그 자체였다.


반면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르네상스 시기 독일 미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컸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지중해와 로마를 동경했고 두 번이나 이탈리아를 향해 미술 유학 여행을 떠났다. 그는 로마라는 르네상스의 중심 외곽에 위치한 ‘주변’ 이었다. 그는 예수와 닮은 자화상을 남기며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할 정도로 높은 자의식 아래 최고의 르네상스인이 되려는 야망이 있었지만 결국 르네상스의 상징이 되지는 못했다. 그가 생각하는 르네상스의 중심에는 진입하지 못한 것이다. 중심에 있었던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의 이상적인 미(美)에 몰두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범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다. 주변에 있었던 뒤러는 르네상스 미술의 중심이 되고 싶은 야망 아래 강박적으로 이탈리아와 로마가 추구하던 미술 양식을 선보이고 자신도 르네상스 미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계속 피력했다. 그는 주변에서 중심으로 계속 침투하려고 했고 중심으로 인정받고 싶어했다. 즉 중심에 이미 있던 자(미켈란젤로)는 중심에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다시 눈길을 돌리고, 반대로 주변에 있는 자(뒤러)는 계속 중심으로 파고 들어가며 상반된 움직임을 낳았다. 이것이 신준형 교수가 주변과 중심의 관점에서 조망한 뒤러와 미켈란젤로의 행보다.



…… 뒤러와 미켈란젤로는 그토록 심대한 의미를 갖는 예수의 몸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뒤러는 매우 ‘르네상스적’인 예수의 몸을 그려냈다. 중세의 도상 전통을 이어받되 르네상스 미술이 제공한 여러 시각적 기법들을 사용해 메시지의 호소력을 극대화시켰다. 반면에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를 뛰어넘는 예수의 몸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계속 언급하겠지만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미술가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나 기괴하리만큼 일탈을 지속적으로 추구한 인물이다.


- 신준형, <뒤러와 미켈란젤로>, 사회평론, pp.18-19



2막 마키아벨리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중심과 주변…… 이 키워드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으며 떠올린 이유는, <군주론>을 읽기 한 달 전에 마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은 기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로마 제국의 제 16대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5현제(賢帝) 중 마지막 황제인데 이 시기에 로마의 영토는 최대로 확장되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실현되었던 시기였다. (참고로 5현제라는 표현은 당대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훗날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를 저술하며 탄생된 표현이다.) 로마의 전성기를 이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끊임없는 이민족의 반란 진압과 영토 확장 때문에 일생의 대부분을 전선에서 병사와 함께 머물러있어야 했는데 스토아 학파에 식견이 깊었던 그가 숙영지에서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정리하여 완성한 글이 <명상록(Meditations)>이다. 이 책은 로마 황제였던 그가 어떻게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고 제국을 전성기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회고록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 최고의 자기계발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또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어떤 내적 중심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야 하는지 진지하고 사색적인 성찰을 보여주는 책이다. 가령 “잠시 후면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너를 잊게 될 것이다” 라는 구절이라거나 “인간은 서로를 위해 태어났다. 그러므로 가르치든지, 아니면 용납하라” 라는 문장은 몇 번이나 곱씹어보며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나는 <명상록>을 읽고 “공동체를 향한 혼의 선한 성향, 선한 충동, 선한 행동이 인간의 지향점” 이라는 글귀를 조그맣게 남겼다.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로마 제국의 위대한 역사라거나 정치와 권력의 본질에 대한 것은 담겨있지 않았다. 로마 황제이기에 앞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는 한 인간의 자기 독백만이 남아있었던 것인데, 세계 최고의 권력자로서의 페르소나를 철저히 벗고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는 그가 바로 권력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와 비슷한 규모와 위상을 지닌 국가 또는 제국이 없던 시기였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따라가고 경쟁해야 할 대상이 없는 최고의 자리(황제)에 올랐기 때문에 오히려 그 권력의 무게를 부정하고, 일탈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권력의 중심부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 권력을 제대로 가져본 사람만이 권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고 인간의 본령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중심에 등극한 이후 중심에서 벗어나려 했던 미켈란젤로에 가까웠다.


반면 마키아벨리는 끊임없이 권력의 외곽에서 중심으로 진입하려했던 주변의 인물이었다. 그가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에 이어 말년에 저술했던 <피렌체사>를 읽고 있으면, 이탈리아라는 공간은 로마가 이룩했던 공고하고 영원하며 안정적인 제국의 권력과는 전혀 거리가 먼 곳이었음을 알게 된다. 로마 제국이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된 이후부터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 대 이민족’, ‘교황 대 황제’, ‘구엘프(교황을 따르는 세력) 대 기벨린(황제를 따르는 세력)’, 구엘프 속에서도 ‘백당 대 흑당’, ‘도시 대 도시’, ‘가문 대 가문’, ‘귀족 대 평민’, ‘평민 대 하층민’, ‘길드 대 길드’로 나뉘어져 끊임없이 분열하고 반목하며 이합집산이 반복되었고 전쟁이 지속되었다.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면 어제의 적과 손을 잡는 것은 일상이었고, 오늘의 적과 손을 잡고 오늘의 동맹을 배신하는 것 또한 일상이었다. 마키아벨리가 주로 활동했던 피렌체는 강대한 권력을 자랑했으나 늘 불안정했고 그들은 밀라노에 맞서 베네치아와 손을 잡았지만 서로 늘 불신했고 눈앞의 이익에 따라 그들은 언제든지 친구와 적을 오고갔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몇 개 도시를 중심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했으나 로마 제국과 같이 광대한 영토를 대상으로 수 세기 동안 흔들림없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 마키아벨리가 목격했던 15세기, 16세기 이탈리아의 현실이었다. 마키아벨리가 목격한 권력은 유한한 것이었다.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권력은 ‘주변’ 이었다. <로마사 논고>, <피렌체사>를 저술할만큼 역사에 해박했던 마카아벨리가 보았을 때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16세기 이탈리아까지 이어지는 전체 역사 속에서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교황, 나폴리 왕국이 서로 대립하던 분열된 현실은 권력의 주변이었고, 그가 생각한 권력의 중심은 과거 이탈리아 반도에 실존했던 로마 제국의 전성기였다. 권력의 주변에 머무르던 마키아벨리가 택한 것은 권력의 중심에 직접 들어가는 것이며 그때문에 그는 <군주론>을 통해 권력이란 무엇인가, 통치란 무엇인가,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군주는 어떤 자질과 태도와 역량을 지녀야 하는가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거다. 그러한 고민을 통해 이탈리아 반도가 강력한 리더 아래 하나의 국가로 통합될 수 있다면 그는 비로소 권력의 핵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당대 실존했던 체사레 보르자를 이상적인 군주로 생각하며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군주국을 선호했다는 의견도 있고, 사실 그는 민주공화국의 옹호자이며 그가 이야기한 강력한 권력은 공화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정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아무래도 좋다. 마키아벨리가 군주국과 공화정 중 어떤 정치사상을 선호했든지 그는 결국 통일된 이탈리아 제국을 경험하지 못했고, 때문에 이것을 염원했고 그래서 권력의 주변에 머물렀다. 그리하여 그는 권력의 중심으로 진입하여 분열의 역사를 종식시키고 싶었고 그것이 그를 권력의 본질에 탐구하도록 만들었다. 마키아벨리는 주변에서 중심에 가까워지고 싶었던 뒤러에 가까웠다. 그래서 메디치가에 <군주론>을 헌정하며, 어서 이 분열된 주변에 머무르지 않고 위대한 군주가 되어 진정한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 그것을 유지하라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역사와 권력에 있어 정점에 서서 누군가의 전범(典範)이 된 자는 오히려 권력의 본질이 아닌 인간의 본령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고, 정점에 서려는 자야말로 누구보다 권력의 본질을 숙고한다 …… 이러한 패턴은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반복된다. 나는 비록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학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래도 경제와 금융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은 계속 가져야 할 것 같아서 10년 전에 <Mad for finance project> 라는 이름 아래 관련 책을 읽어나가던 적이 있었다. 벤저민 그레이엄, 피터 린치, 존 템플턴 같은 월가의 전설의 투자자의 책도 읽어보고, 밴 버냉키나 폴 볼커와 같이 미국 금융정책의 수장이었던 인물들을 다룬 책도 읽어보고, 한편으로는 실질적인 금융과 투자에 대한 감을 잡고 싶어서 당시 인기가 많던 투자 관련 도서도 여럿 읽어보았다. 


분명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전설의 투자자들이 이야기하는 투자는 조금은 형이상학적이었고, 투자자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시장이 가진 불확실성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간이 지닌 한계와 그 한계에 대한 겸손한 인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책을 읽어서는 금융시장의 현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많지 않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방향을 어렴풋이 알게될 뿐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금융시장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금융와 투자의 본질이라는 것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들려주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에 가까웠다. 


반면 베스트셀러 투자서들은 결이 달랐다. 이들은 금융산업에서 경력을 쌓으며 축적한 경험을 기반으로 혹은 실제 자신의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의 성공적인 운용을 통해 (가령 투자 3년만에 10억원의 이익을 봤다는) 실질적으로 어떤 기업에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목과 기술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제는 투자자의 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에 단순히 주식 움직임을 음봉과 양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는 식의 기술서는 적당히 소비되고 인기를 얻다가 사라지게 되지만, 금융시장이 움직이는 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거나 주요 국가의 어떤 정책은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금융과 투자에 대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의견과 지식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타서 부유한 돈의 중심으로 진입하자고 이야기한다. 이런 유형의 책은 많은 의미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현실적인 실물 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경각심도 일깨워주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방향도 제시해준다. 너무나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은 피터 린치, 존 템플턴, 밴 버냉키, 폴 볼커와 같이 금융권력의 진정한 중심에 있던 세력에 비교해보면 주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까 금융의 권력을 제대로 쥐어보지 않은 이들이 금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돈의 권력을 쥐고 싶었던 것이다 …… 이런 대비는 언제나 어디서나 쉽게 반복된다.



3막 주변과 중심


우리는 <군주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군주론>은 권력의 정점에 서지 못한 자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권력과 통치의 속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문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형이하학적이며 삶의 목적에 대한 본질을 담고 있지 않다고 여겨야 하는 것일까. 한때 인기를 얻었던 <후흑학>처럼 이것은 난세를 이겨내는 처세술을 담은 실용서에 가까운 것일까. 결국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은 진정으로 권력을 쥐어본 자의 통찰이 담긴 <명상록>이며 그 속에 담긴 철인황제의 지혜를 본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군주론>과 <명상록>은 서로 대립하거나 반목하지 않는다. 이 두 책은 주변에서 중심으로 향하는 단계와 중심에 도달한 이후 다시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단계로 연결되어 있고, 이는 우리의 성장 단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이라는 다이달로스의 미로에 갇힌 우리는 일단 어떻게든 가운데에서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만나러 중심으로 향한다. 미노타우로스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권력, 지위, 부와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형이상학적인 행복, 사랑일 수도 있다. 각자에 따라 그것이 무엇이든, 미노타우로스를 만나러 가는 길에 다양한 협력, 고난, 배신, 환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그에 맞게 우리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쓰고 다양한 사람들과 협력하고 통치하며 치세하게 될 것이다. 점차 우리는 성장하며 미로를 더듬어 나아갈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다수는 여전히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겠지만 그 중 몇 명은 점차 권력의 주변에서 중심을 향해 성공적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윽고 중심에 도달하여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난 이후 그곳에 영원히 머무를 것인가? 그렇지 않다. 중심에는, 그곳에 머물며 나를 자극시킬만한 요소가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미궁에서 되돌아나올 수 밖에 없다. 중심에서 다시 주변으로 나를 끊임없이 일탈시키는 것이다.


미궁의 중심으로 향하는 이는 미노타우로스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미노타우로스를 확인하고 다시 중심에서 주변으로 이탈하는 이는 더 이상 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세계에 대해, 우주에 대해, 한계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이야기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일 군주를 찾고 있었고 미노타우로스를 만나러 가는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오래 전 미노타우로스를 만난 뒤 그것에 대해 벌써 잊어버렸다. 그는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자신에 대해서만 숙고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키아벨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과거를 보여주는 인물 아니겠는가 …… 당신은 지금 주변에서 중심으로 향하는 길인가 아니면 중심에 막 도달한 참인가 아니면 중심에서 주변으로 이탈하고 싶어하는가. 하나는 확실하다. 권력이 무엇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한 자는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우선 계속 중심을 향해 달려가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중심에서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만나기 전에는 이 미로를 헤쳐 나가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을 떠올려 볼 수는 없는 거다. 


다만 이것만큼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내가 주변에서 중심으로 정신없이 달려갈 때 과연 나는 그 중심에 무엇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그 중심에 과연 무엇이 있기 때문에 나는 미덕(아레테)을 발휘하여 오늘 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일까? 내가 쟁취하고 싶은 대상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만이 중심에 도달할 수 있고, 중심에 도달했을 때 다시 되돌아나올 수 있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그 미로에서 고군분투하며 경쟁할 수 밖에 없다. 어디가 중심인지 영원히 알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평범한 인간에게 되풀이되는 비극이다. 우리는 권력을 한 번 쟁취해보겠다고 주변에서 중심으로 달려가지만, 정작 무엇을 만나기위해 달려가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에 영원히 미로 속에서 헤매게 되는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달리면 중심에 닿을 것이라고 믿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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