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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ul 17. 2016

OECD내 최고수준 최저임금을 받던 기억

기억하자, 최저임금! 2017년엔 6,470원!

정확히 십년 전 나는 호주 브리즈번으로 넘어가 3개월간 어학연수를 하고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일은 시내 식당의 Kitchenhand라는 이름의 주방장 보조. 당시 50장을 돌려도 연락이 없자 100장을 넘게 출력해서 돌리던 기억이 난다. 물론 유명한 식당의 경우, 내가 이력서를 주면 그 수백장이 넘는 이력서들 맨 밑에 한 장 더 보태주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이력서를 돌려도 면접은 커녕 일을 구할수 없게 되자, 나는 구인사이트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Painting job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설명하자면 당시나 지금이나 호주는 시간당 최저임금이 세계최고 수준이며, 내가 처음 받았던 시급은 USD 기준 14불이 넘었다. 그러니까 한화로는 시간당 1만5천원이 넘는 수준이었다. 그림1은 OECD dataset을 바탕으로 내가 그려본 각국의 연도별 최저임금 현황이다.(각주*1) 호주는 예나 지금이나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보여주며, 한국은 15년 전 2.4불 수준의 최저임금은 현재 5.3불로 두배 넘게 상승했다. 이젠 포르투갈, 스페인을 따라잡아 일본이나 미국에 근접해 가고 있다. 상승률은 OECD 내에서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


저 위에 홀로 나는 파란선이 호주요, 그나마 계속 우상향하는 노란선이 한국이다



Painting job은 동유럽 출신 이민자 사장님과 둘이 집을 돌아다니며 페인트를 칠하는 일이었다. 호주 브리즈번의 경우는 아파트가 많지 않고 대부분 단독주택에 거주하며, 이 단독주택은 목조로 지어져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같이 벽지로 마감을 하지 않으며, 나무 위에 페인트를 칠하는 방식으로 내부마감을 하게 된다. 아울러 건물 외부도 페인트로 마감을 한다. 사장님은 처음부터 나와 딜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호주 소득세율의 최저구간은 15%였는데, 연봉 6천 호주달러(약 5백만원) 이상에 적용되는 소득세율 30% 정도가 원천징수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각주*2) 물론 외국인의 경우엔 귀국할 때 Tax refund 제도도 있긴 했다. 여튼 사장님은 따로 소득신고를 하지 않으면 세금을 더해서 주겠다고 제안했다. 외국인에 워킹홀리데이비자를 가지고 있어 철저한 ‘을’이었던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나에게도 인센티브는 있었으니 보통 최저임금을 시급 18불 받는 친구들은 원천징수 떼고나면 13불 초반대 금액을 가져갔는데, 나는 18불을 온전히 가져갈 수 있었다. (호주달러 기준, 당시 환율은 USDAUD=0.80 수준이었음) 당시 호주 한국식당에서 일하던 친구들은 최저임금이 엄연히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없이 호주달러로 대략 10-12불 수준에서도 일을 했다. 물론 당시 한국최저임금이 시간당 4천원 수준이었으니 그들도 기쁜 마음에 일을 하긴 했다.



헌데 이렇게 최저임금 이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일하면 무엇이 문제냐면, 산업재해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고용주 입장에서 법으로 정해 놓은 최저임금 이하로 고용을 한다는 말은 세금탈루는 물론 고용주가 이행해야할 의무를 져버린다는 데에 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고용주가 법적으로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사항은 국민연금보험 50%, 국민건강보험 50%, 고용보험료 50%, 등이 있다. 아울러 산재보험료의 경우엔 당해 연도 1년간 근로자에게 지급한 임금총액에 해당산업별 보험요율을 곱하는 방식으로 보험금액을 산정한다. 따라서 고용주는 해당근로자에게 지급한 임금을 적확하게 신고해야 한다. 법적 최저임금 이하를 지급하는 고용주는 있는 그대로 신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연스레 최저임금 이하 지급 사업장은 산재보험료 사각지대에 빠지게 된다.



물론 모든 고용주가 최저임금 이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급격히 높아지면 분명 상기와 같은 문제는 어디서든 터져나올 것이다. 이는 고용주만의 문제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때로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니즈가 맞아 떨어져서 발생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호주 어느 한인식당에서 일하는 어느 학생같이, 스스로 호주의 일자리를 얻기 어려우나 당장 생활비는 없고, 그러다보면 최저임금 이하 일자리라 할 지라도 어쩔 수 없이 택한다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페인팅 잡과 관련하여 나는 일주일이 조금 넘고 그만둘 마음을 먹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싶단 생각이 들어도, 불법으로 일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같이 살던 남자 호주인이 나에게 그 페인팅 잡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호주인 변호사, 중국인 의대생, 그리고 이 호주인 남자와 같이 살았는데, 호주인 남자에게도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는 쉽게 얻지 못하는 상태란 말을 전해들었다. 물론 내가 그들에게 이 페인팅 잡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말을 하니, 나에게도 어서 그 일을 그만두라고 조언해 주었다.



페인팅 잡을 그만두고, 나는 패스트푸드점에 겨우 취직할 수 있게 되었다. 내 기억으로 20세였던 패스트푸드점 매니저는 동양인인 나를 십대로 생각했는지, 처음 고용하고 근무시간을 많이 부여해 주었다. 참고로 호주는 당시 이력서에 사진이나 나이를 기재하는 것은 차별로 간주되어 할 수 없었다. 호주는 최저임금이 높은 대신 20세 이하의 경우 나이에 따라 차등급여를 지급하게 되어 있다.(각주*3) 2016년 기준 20세는 최저임금의 97.7%, 18세는 68.3%, 16세 미만은 36.8% 밖에 받지 못한다. 따라서 대부분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근무하며, 고용주 입장에선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내가 10시간 일하는 금액으로 16세 미만 아이들을 고용하면 27시간을 일 시킬 수 있었다. 패스트푸드점 근무 첫 주에 20시간을 근무했던 나는 손에 세후 약 300불에 가까운 돈을 가질 수 있었고, 이는 혼자 사는 데 충분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주 time table에 내 근무시간은 15시간으로 줄어들었고, 그 다음주엔 12시간, 그리고 10시간, 다음엔 그 이하로 점점 줄어들었다. 사실 10시간 이하면 일주일에 벌 수 있는 돈이 150불 미만이며, 이는 당시 방 렌트비 120불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일하고 방값 내고 나면 식비나 교통비를 낼 수 없었다. 즉, 스스로 벌어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수준이란 말이다. 최저임금은 한국에 비해 5배에 달했지만, 근무시간을 얻을 수 없어 결국 총액 자체는 줄어들게 되었다. 당시 대학 4학년 1학기까지 마친 나는 이럴 바엔 그냥 한국가서 취직해서 괜춘한 연봉을 받는게 인생에 더 도움이 되지 싶어 귀국했다. 물론 영어는 일정수준이 넘어가니 원어민 수준은 될리 만무했고, 교육적 측면에서도 더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도 했다.



최저임금을 적정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생각도 조금은 나이브한 생각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오른 만큼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것이고, 만약 급격히 오른다면 그 문제는 더 커질 것이다. 16년 전 내가 사회에 처음 나왔을 때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2천원이 채 안되었다. 물론 그 때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현재의 최저임금 수준으로 오른 것은 꽤나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조금은 더 점진적으로 올랐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서, 당장 만원으로 올리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노동자 쪽으로 몰아가는 것도 나는 아니라고 본다. 어제 아침(2016.07.16) 내년 최저임금 시급은 올해보다 7.3% 오른 6,470원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머릿 속으로 숫자를 잘 기억하자. 육천 사백 칠십원. 이것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만으로도 사각지대에 몰린 많은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사회를 바라며. 끝.



각주
*1 : OECD Real minimum wages : https://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RMW
*2 : OECD personal income tax rates : http://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TABLE_I1
*3 : Mywage.org/Australia :http://www.mywage.org/australia/main/salary/minimum-wage


사진출처

http://levick.com/sites/default/files/styles/vimeo-large/public/labor.jpg?itok=-_qboG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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