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연차라 큰아이 학교 가는 길을 배웅해줬다. 언젠가 큰아이가 아내 뱃속에 있을 때, 홀로 등교하는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를 본 기억이 난다. 그때도 비가 살살 내리던 아침이었는데, 길을 횡단하며 기어가는 지렁이 한번 보고, 고인 물에 비친 자기 얼굴 한번 보고, 풀잎에 맺힌 빗방울 하나 보면서 천천히 등교하는 그 아이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라 하염없이 지켜본 적이 있다. 뱃속에 있는 우리 아이도 언젠가 저럴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마도 그 아이는 벌써 고등학생은 되어 수염도 거뭇거뭇 났으려나.
시간은 빨리 가라고 하면 가질 않고, 가지 말라고 해도 이렇게 잘 흘러간다. 서른 초중반까지는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쉬웠고, 대학생이 다시 되고 싶다는 생각을 무던히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선, 오히려 작금의 시간이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의 경험이 쌓이고, 집에서도 어깨가 조금 무거워지고, 이제 슬슬 누굴 따라야 할 위치보다 누굴 이끌어야 할 위치. 점점 부담스럽긴 하지만, 또 새롭게 배워가는 세상의 이치에 즐거움을 느낀다. 공짜 점심은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노력은 하되, 기존 고정관념을 버리고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내 기준은 세우되 언제나 새로운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여하튼 그러한 것은 다시 일을 할 때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같이 쉬는 평일, 가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이 아침엔 애들 학교랑 유치원 다 보내 놓고 감수성 짙게 카페에 앉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9번을 BGM으로 깔고 책을 읽어보는 여유를 가져봐야겠다. 좋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