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고지기간의 필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종종 아이가 나의 말을 듣지 않아 속상한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 그냥 윽박지르며 애가 울든 말든 부모의 기준대로 리드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가 계속된다면 궁극적으로 부모와 자녀 간의 유대감 형성이 더디어질 수 있고, 서로 한 배를 탔다는 동질감 형성에도 저해될 수 있다. 이게 시간이 지나가다 보면 결국 아이가 학교나 사회에서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부모가 나의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는 자꾸 자신의 행동을 감추려 하고, 부모와 소통하지 않고, 외톨이가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면 어떻게 아이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까.
요즘 음식점 등 공공장소에서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소리만 크게 틀어놓지 않으면 나는 이를 크게 나쁘게 보진 않는데, 종종 보면 스마트 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던 아이 앞에서 갑자기 스마트폰을 획~ 하고 채어가는 부모들이 눈에 띈다. 당연히 아이는 분노하고, 스마트폰을 다시 달라고 한다. 하지만 부모는 다른 약속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이제 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화가 난 아이는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고, 부모는 더 화가 나서 아이에게 윽박을 지르기 시작한다. 결국 그 부모는 우는 아이를 둘러업고 해당 장소를 유유히 사라진다.
무엇이 문제일까. 만약 내가 회사에서 열심히 업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회사 선배가 오더니 노트북을 확 닿아버리면 어떤 기분이 들까. 화가 날 것이다. 자초지종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이게 뭔 일인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회사 선배가 10분 전에 와서 곧 급한 회의가 있으니 어서 하던 일 정리하고 10분 후에 같이 가자고 한다면? 그리고 10분 후에 와서 미처 일을 마치지 못한 나에게 빨리 회의 가야 하니 노트북을 챙겨서 나오라고 한다면? 나는 두말없이 내 노트북을 덮고 부리나케 따라갈 것이다.
어떠한 차이인가. 같은 상황이더라도 미리 언질을 주고(=충분한 고지를 주고), 약속을 한 상태에서 무언갈 지시하는 것과 다짜고짜 무언갈 지시하는 것은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성인 간의 인간관계에서는 당연한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기본 논리는 분명 부모와 아이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예컨대 스마트 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는 다섯 살 아이에게 이제 10분 후엔 이 식당을 떠나야 하니 그만 정리하라고 언질을 주면 아이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10분 후 어서 스마트 폰을 달라고 하면 대부분 두말없이 스마트 폰을 부모에게 준다. 여기서 안 준다고, 나는 그래도 끝까지 보겠다고 한다면 그건 억지다. 이렇게 행동하는 건 억지라고 설명하면 아이도 못내 아쉽지만 그저 부모를 따라나서기 마련이다.
대단한 차이는 아니다. 나는 그저 아이를 내 앞에 있는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느냐 아니냐가 그 관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끼는 마음은 세상 어느 부모나 매 한 가지겠지만,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는지 아닌지는 은연중에 각기 상이하다. 아이를 그저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피노키오처럼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 당하는 아이도 내가 피노키오가 아님을 꾸준히 표출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부모와 자녀의 시각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
분명 부모가 가이드를 해주어야 할 부분은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가이드의 애티튜드가 나도 모르게 고압적이거나 일방적이라면, 아무리 좋은 가이드라 할 지라도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이라 할 지라도, 부모와 자식은 독립적 자아의 소유자이다. 아울러 미성년의 나이가 벗어나면 각자 다른 사회의 구성원이다. 교육은 하되, 동등한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나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린아이들도 충분히 자기 의견이 있고, 상호 간에 약속한 바를 이행할 의지가 있다. 부모는 그런 점을 간과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