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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Dec 26. 2016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

어제 산타할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나서 우리집 다섯살 둘째는 한껏 기분이 좋았다가, 어느 순간 고독한 얼굴을 하며 허공을 응시했다. 그래서 내가 왜 갑자기 말이 없냐고 물어보자 돌이켜보건데 내가 일년동안 착한 일을 한게 별로 없는데 왜 산타할아버지가 나에게 이런 큰 선물을 주었는지 자괴감이 든다고.(물론 어른 의역있음 ㅋ)


그래서 나와 내 아내는 부랴부랴. 아니 너는 유치원도 아침부터 꼬박꼬박 잘 일어나서 다니고, 엄마나 아빠가 도와달라는 것도 잘 도와주고, 병원에서 주사맞을때 울지도 않고, 아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고냥 빵끗빵끗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착한 일 많이 한거야. 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고보니 나만해도 요 몇일간 둘째 아이가 무슨 일을 안 하려고 하면, 그럼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주신데, 하며 위협(?)을 가한 사례가 떠오르며 반성을 하게 되더라.


우리 둘째가 세살때인가, 젤리를 손에 들고 다니며 먹고 있던 때가 있었다. 평소와 같이 나는 집에 들어와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고자 했는데, 화장지가 없어 들어가자마자 나오려는 찰나,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알고보니 먹던 젤리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심각하게 혼자 고민하다가 다시 주워 먹다 걸린 것이었다. 아이 입장에선 아빠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적어도 일분 이상은 있다 오니 그냥 그 일(?)을 감행한 것. 문득 나는 저 세살짜리 아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이미 다 파악하고 있구나. 아마도 본인이 떼를 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자기가 하는 일의 옳고 그름을 파악하는 것.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마땅히 스스로 해야하는 것인데, 그런 자가진단, 나는 하고 있는가.


여튼 자신이 선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착한 일을 한게 없다고 부끄러워하는 둘째. 문득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던 동주선생이 떠오르는 시점이다. 잘못된 일을 하고서도 떳떳한, 나를 포함한 수많은 어른들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렇듯 거울을 통해 나를 다시 돌아보려 함도 그 이유가 되지 않을까.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올해의 크리스마스 선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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