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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an 21. 2017

할아버지와 손자 이야기

아이들이 어느덧 커서 할아버지 할머니 집인 제주도 시골에서 방학을 보내고 있다. 엄마가 애초에 따라가긴 했지만 지금은 오롯이 나의 아이 둘과 할머니 할아버지만 같이 지내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런 삶을 동경해 왔는데, 나에게 있어 내 조부모님은 그다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만한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간혹, 아주 간혹 방학 때 시골에 가기는 했지만, 그 심리적 간극은 언제나 존재했다.



돌아가신 조부님은 물론 일제시대 태어나셔서 사범학교를 나오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절 어른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가정을 잘 돌보지는 못한 편이셨고, 사범학교를 나오시 고도 교편을 잡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일본어는 유창하셨다. 하지만 그 시절 이야길 물어봐도 그다지 잘 이야길 풀어주시질 않으셨다. 친할머니는 실제로 뵈어 본 적이 없다. 외할아버지도 그렇고, 외할머니 정도 그나마 어렴풋이 좋은 기억이 있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을 두고 저놈 저거 또 결혼하네. 벌써 결혼만 몇 번을 하는 것이여.라고 하시는 전형적인 옛날 분이셨다. 결론적으로 나는 조부모님들과 그다지 소통에 능하지 않았다.  



내 브런치 구독자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잘은 모른다. 하지만 대화하는 걸 좋아하고, 예전 인류의 기억을 더듬어 가는 것을 좋아라 한다. 요즘 특히나 20세기에 대한 역사책을 읽으며, 이게 나의 할아버지 시절의 이야긴데,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할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예컨대 '나는 해방하기 직전까지 이 나라가 해방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일자리를 구하려고 서울로 기차를 타고 가던 중 갑자기 호외요! 하는 신문이 돌더라고. 그때 알았지 뭐야. (상상이다)' 이런 수준? 보통 서른 살에 아이를 낳는다 가정하면 조부모님은 대략 나보다 60세가 많은 분들이다. 거기다 내 나이를 더하면 그 과거의 시간에 대한 기억을 가지신 분들이 이 조부모님들이다. 나로 따지자면 내가 81년생이니, 대략 1921년부터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분들이 이 조부모님들. 만에 하나 증조부모님까지 계시다면 19세기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겠지. 그렇담 김훈 작가의 흑산 시절의 이야기도 조금은 더 생생히 물어볼 수도 있겠고.



나는 느끼셨겠지만 꽤나 괴팍한 성격이어 상대적으로 선배나 어른들의 '일방적' 조언을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는 스타일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일을 할 때도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만드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나는 어른이나 선배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또 즐겨한다. 내가 오롯이 바닥부터 무언가 결과물을 얻는 데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이 일을 해본 어느 누군가의 조언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인생도 이와 같아서 나는 힘들거나 어려울 때 아버지나 어머니께 간혹 조언을 구한다. 그리 잦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긴 하다. 물론 요즘은 대부분 아내님과 이야기를 하며 인생의 어려운 점을 헤쳐나가지만, 차마 아내님과 논의할 수 없는 문제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 대화를 한다. 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카드가 인생에 몇 장 있다는 데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의 아이들도 자라면서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도 있지만,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극복해 나갈 필요도 있다. 이때 부모가 물론 가장 첫 번째 대화 상대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가 자라며 생기는 갈등의 상당수는 부모에게서 기원된 일일 확률도 높다고 본다. 아무리 부모 입장에선 잘 해주더라도, 아이는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갈등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럴 때 삼촌이나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방학이면 나 그냥 할머니 댁 가서 한 달 있다 올게. 할 정도로 가까운 마음의 해방구가 있다면, 인생을 조금 더 숨 막히지 않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떨어진 지 일주일이 넘어가는데도 우리를 찾지 않는다고 한다. 서운하긴 하지만, 그렇게 인생의 조커 카드를 몇 장 더 잘 만들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훗날엔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1950년대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역사를 간접적으로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살아가다 어려울 때, 그 고민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라도 털어놓고 해결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인생의 긴 궤적 속에 이어지는 손자와 조부모의 연결고리, 그 소중한 관계를 잘 이어나가길 기원한다.



*사진은 갤럭시탭으로 한자 공부하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커팅에지 하고도 전통적인 어느 가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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