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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an 21. 2017

평화의 바다 - 대통령 노무현의 한일관계에 대한 생각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 상당히 낮은 지지를 받은 데 반해, 현재는 반대로 많은 인기를 받고 있다. 2004년 노대통령을 탄핵한 주체는 새천년민주당이었고, 당시 한나라당 129명은 물론 새천년민주당 52명을 포함, 국회의원 의석수의 대략 2/3인 193명의 찬성으로 탄핵은 진행되었다.



당시 보수진영의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진영의 언론도 항상 노대통령을 비난했다. 그중에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으니, 이 '평화의 바다'이다. 정권 말기인 2007년 한일 정상회담 도중 브레인스토밍 차원에서 나온 이 평화의 바다는, 계속해서 동해를 두고 일본해니 동해니 싸우지 말고, 이 참에 평화의 바다나 우정의 바다와 같이 발상의 전환을 하는 게 어떠냐는 취지였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치며, 그래 이거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당시 보수와 진보진영 거의 모든 언론은 이에 성급한 태도라 비난을 했으며, 다시 이러한 논의는 공식 논의가 아니란 BH의 입장표명과 함께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



유럽 대륙의 북쪽에 있는 북해의 경우도 보면 영국에 입장에서 보면 동해이고, 덴마크의 입장에서 보면 서해이다. 실제로 덴마크어로는 이 북해를 공식 명칭 외에 Vesterhavet라는 단어로 쓰기도 하는데, 여기서 Vest는 영어로 West를 뜻하여, havet이 Sea이니 서해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1992년 오슬로-파리 협정으로 북해라는 명칭을 전유럽 권에서 결정하여 이제 이견은 없는 상태다. 북해는 사실상 영국이나 덴마크, 노르웨이 외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등 다수의 유럽에게는 북쪽에 위치하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바다의 명칭은 누구 하나가 양보하기 전까지는 끝없는 평행선과 같은 싸움일 수밖에 없다. 동해든 일본해든 매일같이 티격태격해도 누구 하나 승자라고 국제사회에서 인정해줄 리 만무하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난 노대통령의 제안은 공식적이진 않다 하더라도 상당히 긍정적이라 여겨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OYVpg5H4EqI&feature=share

노무현 대통령 일본 국회 연설

첨부의 노대통령 일본 국회 연설은 대략 30분가량 진행된다. 나는 이 동영상을 보며 지난 십 년간 한일 양국 간의 관계는 그 얼마나 후퇴되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일본도 우경화의 길을 걸었고, 한국도 보수정권 십 년 동안 일본에 대한 악감정을 정략적으로 이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노대통령은 꾸준히 친일을 청산하려 했고, 과거사를 정리하고자 했다. 이는 그저 과거 친일을 했던 사람들 혹은 그 후손들에게 악감정으로 보복을 하려 했던 의도라기보다는 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서 일제강점기의 기억은 정리하고, 이제 새로운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가했던 식민역사는 물론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교육시킬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것에 계속해서 얽매여 분노와 악감정으로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무한도전에 힙합가수들이 나온다 하여 본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애국 힙합곡을 만드는 것이더라. 이 얼마나 부 조화스러운지. 락 스피릿이든 힙합정신이든 애초에 저항정신에 반항아적 기질이 있는 양반들 모셔놓고 뭔 일을 하는 건지. 거기서 실망했던 부분은 독도수호대 사무실에 찾아가서 딘딘이 일본을 두고 "이거 다 헛짓 아니에요. (일본) 세금 낭비하는 거지!"하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고, 이에 수호대 대표님은 화색을 하며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라 칭찬하는 장면이었다.



과거는 착실히 기억에 두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일본이 우경화한다고 우리도 우경화해서는 되겠는가. 20세기 초에는 세계 인구 1/3이 식민통치 하에 살았고, 프랑스도 2차 대전에만 독일에 의해 군인 및 민간인 60여만 명이 사망했다. 아우슈비츠가 존재했던 폴란드를 비롯한 수많은 유럽 국가들이 독일이나 이탈리아에 좋은 감정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들은 EU를 만들어 냈다. 현재 위기에 봉착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전 세계의 유일한 공동체이다.



조금은 진일보할 필요가 있다. 감정적으로 국가 외교를 본다 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사드의 관점에서도 보면 어느 하나 정답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당장 친중과 친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미를 선택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중국도 과거를 돌이켜 보자면 병자호란이나 정묘호란, 거란족 여진족, 몽골까지 확장시켜본다면 그 얼마나 우리를 천년 이상 못살게 굴었나. 화냥년이란 단어를 들으면 아직도 중국에 대한 원망과 한남충들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자괴감을 느낀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나는 간혹 한국의 국제정세를 떠올린다. 내가 좋아하는 동물인 레오파드, 즉 표범은 홀로 사파리를 유유히 걸어 다닌다. 사자나 코끼리같이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들과는 다르게 혼자 사냥을 하고 사냥한 먹이를 나무 위에 걸어 놓고 며칠 동안 그 먹이를 주워 먹으며 조용히 지낸다. 그리하여 동물의 왕인 사자와 표범은 그다지 부딪힐 일이 없다. 사자는 고냥 그 사파리에서 떵떵거리며 살지만, 동선이 겹치지 않는 선에서 표범도 알아서 잘 살아간다. 사자가 설마 표범에게 공격을 가할 일이 있을까. 사자도 표범과 싸운다면 그 민첩성에 쉽게 이기지 못할 것이다. 설령 내가 이긴다 하더라도 큰 손실이 예상되면 그 싸움은 시작하면 안 된다. 그래서 사자도 굳이 빠른 표범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다. 그게 동물의 세계이자 작동방식이다.



한국은 토끼나 임팔라와 같은 약하디 약한 초식동물일까. 아니다. 나는 적어도 한국의 경제규모 및 국방비 규모로 보았을 때, 표범 정도는 되어 보인다. 현대산업의 쌀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에서 D램의 시장점유율은 75%에 달한다고 한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아이폰과 양대산맥인 갤럭시가 있고, 조선 철강 자동차 건설 석유화학 등 어느 것 하나 세계적이지 않는 수준의 산업이 없다. 적어도 한국과 같은 나라와 전면전을 선언할 나라는 없다는 말이다.



굳이 적을 만들지 않고, 유유히 초원을 거니는 표범과 같이 실리적인 외교를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이는 외교의 1도 모르는 어느 월급쟁이의 출근길 잡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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