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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ul 06. 2017

아이의 거짓말

우리 집 아홉 살 인생을 살고 계신 분은 일요일이면 아침 10시에 친구와 함께 교회를 간다. 어린이 예배를 드리고 나서 어른 예배가 끝나면 나와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조금 있어 매번 용돈을 2천 원가량 주곤 한다. 친구들과 간식거리를 사 먹으라고.


한 번은 깜빡하고 용돈을 주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예배를 마치고 만나니 얘가 음료수와 과자봉지를 손에 들고 있는 게 아닌가. 미심쩍어 그건 어떻게 샀니 하고 물어보니, 아이는 예전에 엄마에게 받은 돈이 가방에 남아 그것으로 샀다고 하더라. 그런데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그렇게 넉넉하게 돈을 준 적은 없다고.


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절대 꽃길만 걷는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아직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성숙하지 않은 아이에게는 부모의 가이드라인이 꼭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러니 옆에서 관찰을 하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잡아줘야 한다.


그렇지만 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아이에게 다그치기 시작하면, 아이는 부모가 나를 신뢰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또한 한번 저지르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니 늘 조심해야 한다. 나는 너를 신뢰하지만, 너의 잘못된 행동은 잡아주겠다는.


미심쩍은 마음이 든 나는 아이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저 돈이 났을까. 줄잡아도 음료수만 1,500원에 과자까지 하면 3천 원 정도 필요할 텐데.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그래도 도벽을 할 아이는 아닌데, 친구에게 사달라고 졸랐다면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해야 할 셈이었다.


그러던 중. 아내는 아이의 교회학교 선생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고, 아이가 오늘 수업태도가 너무 좋아서 선생님이 과자와 음료수를 사주었는데, 음료수를 먹어도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하더란다. 우유를 권했는데 굳이 음료수를 골랐다고. 찾았다. 아이의 음료수와 과자는 선생님이 사 준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무심결에 거짓말을 했다. 아이들은 정확히 나쁜 행동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으면 자연스레 복잡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습성이 있다.


여기서부터 나는 어떻게 아이에게 따끔한 기억을 심어줄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일을 할 때도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화를 낼 때는 연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실제로 화가 나서 윽박을 지르거나 소리를 지르면, 분명히 후회할 행동 한두 가지 정도는 나오게 된다. 하지만 침착하게 예정된 대본대로 연기를 한다면 원하는 것은 얻고, 후회할 것은 만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까 화가 난 척을 하는 것이다.


아이를 불러냈다. 다시 한번 물어보겠다고. 이 과자와 음료수 어디서 났느냐고. 아이는 확고한 아빠의 어투에 조금은 눈치를 챘는지, 조금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원래 있던 돈으로 샀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지난 두 시간의 행적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는 교회학교가 끝난 후, 선생님과 함께 슈퍼에 갔고, 1,600원짜리 음료수와 1,400원짜리 과자를 샀다고. 그리고 선생님은 3,000원을 지불하고, 너는 그것을 지금 먹고 있다고. 아빠는 니가 하는 일을 다 알고 있는데, 아직도 그렇게 거짓말을 하니 앞으로 아빠는 너를 믿을 수 없다고. 니가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니 아빠도 더 이상 너를 믿고 키울 수 없다고.


아이의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잘못했다고. 그냥 선생님이 사줬다고 하면 혼날까 봐 둘러 댄 것이라고. 여기서 그만 용서하면 안 된다. 나는 아직까지 애를 그다지 혼 내본 적은 없지만, 한번 혼나면 제대로 기억나게 혼이 나야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철저히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이해할 때까지.


그렇게 아이의 거짓말의 전모는 밝혀졌고. 충분한 반성을 한 후, 나는 아이를 안아 주었다. 다음부터 그러면 안된다고. 아빠와 구름이 사이에는 ‘신뢰’라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을 어기기 시작하면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없다고. 구름이가 어디 나가서 친구와 싸우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 아빠를 찾을 때, 아빠가 구름이를 100% 믿을 수 있어 변호해야 하는데, 거짓말을 하는 아이를 아빠는 믿을 수 없다고. 아빠는 앞으로도 영원히 구름이 편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겠냐고. 여기서 구름이는 실명이 아닌 태명이다.


아들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노라 다짐을 했다. 이게 내가 여태까지 아이를 키워오며 가장 크게 혼낸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이는 어디까지나 삐뚤어질 수 있고, 잘 못 커 나갈 수도 있다. 이것은 아이가 나빠서 그럴 수도 있지만, 부모가 제대로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상기 사례에서 내가 무심결에 지가 어련히 샀겠지 하고 넘어갔다면, 아이는 계속해서 소소한 거짓말을 나에게 했을 것이다. 아이와 부모 간에 신뢰가 깨지기 시작하면 나중에 타인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기 상당히 어려워진다. 내가 내 아이를 못 믿으면, 어떻게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겠는가. 결국 스텝은 꼬이게 된다. 그러한 문제가 계속해서 이어지면 아이도 부모도 상처를 받게 되고. 관계는 멀어지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늘 어렵고 힘든 일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면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나는 가족 간에 서로 신뢰도가 높아야 어렵고 힘든 일도 같이 토로하며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여전히 올바르다 자신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인데, 올바른 아이로 키우는 일. 그것 참 어렵다. 그것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아이와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 나가는 방법밖에 해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빠와 아이는 함께 성장을 하고.


*사진출처: https://www.pexels.com/photo/kid-in-pink-tanktop-playing-bubbles-147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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