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퀘벤하운 Mar 12. 2018

작금의 남북관계에 대한 어느 아재의 생각

예전부터 고착화된 생각이지만, 나는 애초에 현시점에서 남북이 통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명제라 생각한다. 통일을 논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정상궤도로 올라와야 하고 정상적인 국가의 형태가 갖추어져야 가능하다. 


중국이 현시점의 G2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진성 공산주의자였던 마오쩌둥 시대를 접고 덩샤오핑으로부터 시작된 개혁개방이 되었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덩샤오핑은 같은 공산주의 진영임에도 불구하고 소련과 등을 돌리고, 1979년 미국과 공식 수교를 맺고 중국 지도자로는 최초로 미국을 방문하는 등의 파격적 행보를 이어 나갔다.


한번 쯤 읽어봐야 할 명저이다. 읽기 부담스러우면 퀘벤하운의 서평이라도 읽어보자 (https://brunch.co.kr/@aboutheman/227)


아울러 20세기 초반 중국에게도 좋지 않은 역사를 안겨준 일본과의 관계도 개선하여 1979년부터는 일본의 해외경제협회 기금(OECF) 차관도 제공받았는데, 에즈라 보걸의 덩샤오핑 평전을 토대로 보자면, 1979년부터 2007년까지 일본으로부터 제공받은 중국의 차관은 총 250억 불 규모로, 이는 일본이 다른 어떤 나라에 제공한 차관 액수보다 많았다고 한다. 


(출처: http://stat.kita.net/stat/istat/CtsMain.screen)


한국무역협회 자료 중 2017년 기준 중국의 총수출액은 2.3조 달러 규모인데, 이 중 1위인 18.9%는 대미 수출액이다. 아울러 2위 홍콩은 12.3%, 3위 일본은 5.4%, 4위 한국은 4.5%이다. 덩샤오핑이 자유진영을 상대로 개혁개방을 하지 않았다면 작금의 중국 경제도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게 수입국의 비중으로 가자면 여전히 한국이 9.9%로 1위이다)


경제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1990년 35%에 이르던 전 세계 빈곤율(Poverty rate)이 2013년 11%으로 떨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의 경제발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에 등장하는 두 개의 표는 세계은행에서 작성한 것인데, 1990년 7억 5천만 명에 이르던 중국의 빈곤인구는,


아래 표와 같이 2013년 2천5백만 명으로 급격히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조: http://datatopics.worldbank.org/sdga…/SDG-01-no-poverty.html)


그렇게 경제발전은 숫자로만 표시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인간 전반의 삶을 개선해준다. 사실상 일인당 GDP가 20배 이상 차이나는 국가가 하나로 통일한다는 것은 거의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안 그래도 남한 내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데, 교육이나 의료, 식생활 및 의복, 주거, 등등 어느 것 하나 비교할 수 없는 두 지역의 국민이 하나가 되어 단일화된 화폐 및 세제, 복지 등을 공유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남아공 주민들의 삶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남아공 소웨토에 거주하던 흑인 주민들은 명목상 자유와 평등을 얻어냈지만, 그것이 폐지된 지 24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삶이 특별히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다. 아프리카 최고의 경제대국이었던 남아공은 여전히 악성 치안문제가 심각하여 집집마다 담장 위 20-50cm의 전기 철조망을 설치해 둔다. 실업률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올라 현재는 27% 대에 이르고, 세계 최고 수준의 빈부격차는 단기간 내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을 들고 다니는 백인이 소웨토에 걸어 다닌다면 대낮이라도 강도를 당할 수 있다.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면, 지금 이 한반도에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아무리 한민족이라 할지라도, 먹고사니즘 앞에선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다.


피터잭슨의 디스트릭트 9의 주 촬영지는 남아공의 소웨토이기도 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통일을 위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문제는 두 지역 간의 경제적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개혁개방을 바탕으로 경제력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회복해야 하고, 남한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은 그렇게 스스로 먹고살만한 경제력을 지닐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개인적으로 북한이 최소 현재 베트남 수준의 경제력은 가져야 남북연방제나 더 진일보한 국가체계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서로 윈윈 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괜찮은 미래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실은 나도 금번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전까지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평창올림픽의 아이스하키 단일팀 건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굳이 왜 올림픽이라는 세계인의 축제에 남북의 정치적 변수를 리스크로 얹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작금의 남북정상회담 및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은 그간 어느 지도자들도 이루지 못한 엄청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지루하게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야기한 이유도, 그러한 개혁개방도 1972년 중국을 방문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 닉슨, 그리고 1979년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덩샤오핑이 있었으니 가능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만약 5월에 북한을 방문한다면, 김정은도 답례 차원에서 언젠가 미국을 방문할 것이다. 그렇게 대화가 오고 가는 와중에 북한의 핵문제도 해결될 여지가 있는 것이고, 다양한 차관 지원 및 개혁개방의 단초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을 당장 어떻게 해버려야겠다는 생각도 조금 조심해야 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지난 1955년부터 시작된 주체사상으로 인해 김씨 일가를 일종의 종교의 영역에서 추앙하고 있다. 실제로 Adherents.com이라는 종교 관련 통계 사이트에서는 주체사상을 옛 소련의 공산주의나 중국의 마오이즘 시대보다 훨씬 더 종교적이라고 분류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실각을 하거나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면 북한 체제를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과연 김정은이 덩샤오핑과 같이 자연스럽게 권력을 분산시키는 시스템을 만들런지는 의문이지만, 일단 그것도 개혁개방을 하며 천천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부디 이 분께서 덩샤오핑의 길을 걸어주기를 바라며


현재의 북한은 정치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하기 어려운 체제이다. 통신이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북한 주민들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없는 것이고, 경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이 자생적으로 어떠한 타개책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 이대로 북한 체제를 유지해 나간다면 제2의 고난의 행군만이 북한 앞에 남아있기 마련일 것이다. 아울러 그렇게 체제 붕괴의 위험이 존재한다면, 궁지에 몰린 생쥐는 고양이를 물게 된다고 북한의 누군가를 향한 물리적 타격 역시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우리 앞에 놓인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 정상회담은 현재로서 우리 미래에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협상과 대화 중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어떤 흐름으로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현상유지만 하며 리스크를 키우는 것보다는 훌륭한 전개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현재의 남북관계를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