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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Mar 27. 2016

대학 학과에 대한 단상

회사생활 10년 차 공돌이가 전하는 대학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

고3 때 미래에 유망한 직업 top 10, 뭐 이런 걸 봤습니다. 거기 1등이 도시계획가였는데, 이름도 꽤나 멋지 구리하고 저의 장점인 미술과 접목시키면 좋을 것 같아 도시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정확히 1년 반을 다녔는데, 거 참 답이 없더라고요. 분명 막노동(밤새 나무, 도면 그리기 등)은 죽어라 하고 시간은 엄청나게 소모하는데, 한 학기가 지나도 무언가 배웠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토목공학으로 갈아탔습니다. 이름도 그 무식해 보이는 그 土木! 뭐 도시과나 토목과나 같은 학부여서 갈아타는 일은 지하철 환승하는 일보다 쉬운 일이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공학 수학과 구조역학, 유체역학을 공부했습니다. 한 학기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세상이 달라 보이더군요. 인천공항에 가면 천장 지붕을 구성하는 철골구조가 눈에 보였고, 고속도로를 가면 하부 교량의 형식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토목공학은 영어로 Civil engineering으로 사람이 필요한 구조물, 수자원, 토질, 환경 등을 조성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는 한 꾸준히 수요가 많은 학문이란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학과를 틀어버린 게 인생에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개인의 경험을 일반적으로 적용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도시공학과 토목공학만 놓고 보았을 때 학부에서 쓸모가 있는 학과는 토목공학과라 조심스레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도시공학의 중요성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향후 복잡다단해지는 거대한 도시를 건설/유지하기 위해선 도시공학은 매우 중요한 학문임은 사실입니다. 다만 고건 석사나 박사 차원에서 이야기지, 학부 차원에선 그다지 일자리를 얻는데 유용한 학문은 아닙니다.
2016년 서울시 공무원 선발인원을 봅시다. 일반토목 7급 13명, 9급 53명을 뽑습니다. 도시 직렬은... 안 보입니다. 참고로 건축은 7급 4명, 9급 14명 뽑습니다. (출처 : gosi.seoul.go.kr)
2015년 5급 기술직 선발인원은 어떠한가요.(예전에 기술고시라 불리운 이것) 토목직은 21명, 건축직은 8명입니다. 도시직은... 없습니다. (출처 :www.gosibox.pe.kr/m/post/329)
분명 서울시든 국토해양부든 도시를 계획하고 관리하는 직군은 필요한데, 이를 도시공학과 '학부'에서 뽑아가진 않습니다. 대부분 저 물 건너 스탠포드니 퍼듀니 하는 동네에서 석박사를 따오든, 어려운 환경에서 국내 석박사를 하든, 그러한 과정을 통과한 소수의 엘리트들만이 본디 꿈꿔왔던 도시계획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것도 학부에선 건축이나 토목을 전공한 후, 석박사를 도시계획으로 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이게 도시과 토목과만 그러할까요?

전 국회의원 김진애 님입니다. 학부 건축 - MIT 도시계획 석박사 트랙의 전형적인 예... 가뜩이나 힘든데, 이런 분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니...


가끔 보면 답답해 보이는 과 이름들이 있습니다. 호텔경영학과, 자동차공학과, 항공우주공학과, 정보디스플레이학과 등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과는 물론 석사, 박사과정에서는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학부에선 그닥 효용이 떨어지는 학과입니다. 즉, 자기 앞마당을 다른 전공자에게 빼앗기기 딱 좋은 학과란 말이지요. (그치만 오히려 저런 학과들이 입결이 같은 학교 타과보다 높은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 점수가 아깝다고 합니다)
롯데호텔 사장은 영어과를 나왔고, 삼성중공업 사장은 기계공학과를 나왔습니다. 현대차 사장도 경영학과를 나왔고, 대한항공 사장은 교육학과를 나왔습니다. 물론 향후 상기 언급된 학과에서 사장님들이 나올 수는 있지만, 일단 학과명 때문에 본인들의 진로는 제한적이게 됩니다. 반대급부적으로 본인들의 가려는 회사엔 타 학과 경쟁자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어느 선박공학과 나온 학생과 기계공학과를 나온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선박공학과 나온 학생은 중공업 회사밖에 원서를 못쓰지만, 기계공학과를 나온 학생은 중공업, 자동차, 항공, 등 다양한 회사에 원서를 쓸 수 있습니다. 결국 선박과 나온 학생은 기계과 나온 학생과 경쟁해야 하지만, 기계과 나온 학생은 선박과, 자동차과, 항공과, 등 자기가 경쟁자를 골라가며 지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서를 수백 장 써도 무방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요. 학과 커리큘럼을 보자면 기계공학이든, 상기 언급한 자동차, 항공, 선박 이 모두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1학년 때 수학,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을 배우고, 2,3학년 때 공업수학, 정역학, 고체역학, 유체역학 등을 배우게 됩니다. 굳이 차이를 두자면 3학년 후반, 혹은 4학년 커리큘럼인데, 어차피 입사원서에 들어가는 학점은 4학년 1학기 때 까지고, 취직 준비 때문에 이때 배우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여러 개 수업을 개설하여 수강하게 하면 그만인 것이지요. 굳이 선박이나 항공, 자동차에 깊게 연구하고 싶다면 기계공학사를 취득하고 관련 대학원 가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전화기 취업깡패란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닙니다... 전자전기, 화학공학, 기계공학


더 크나큰 리스크는 경기변동에 있습니다. 시장경제에 있어서 산업은 10년 20년 주기로 변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10년 전 호황이었던 중공업 회사는 지금 죽을 쑤고 있습니다. 7-80년대 호황이었던 중화학 회사는 90년대 약간 바닥을 치다가 2000년대 들어와서 다시 호황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화공과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가고. 물론 저유가 추세가 지속되는 지금은 또 그 변동의 변곡점에 서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언제까지 세계 3-4위권에 포지션 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현대차가 망해도 중공업에 취직하고, 중공업이 망해도 공작기계회사에 취직할 수 있는 게 기계공학과입니다! (아... 취업 깡패 전화기...) 심지어 건설회사도 태반은 기계직입니다. 헌데 이걸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제한을 둔다면? 자신의 인생을 경기변동 흐름에 베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새로운 학과가 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경영학과도 사실 100년 전엔 그닥 알려진 학과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모든 대학에 개설되어 가장 인기 있는 학과가 아닌가요. (요것도 사실 MBA로 대체해도 될만한 학과로 보이지만...) 쨌든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에게 미래에 유망하다는 보이지 않는 미끼로 유혹하는 학과명은 좀 아니라고 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아무도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미래에 유망한 학과 리스트는 그냥 가볍게 무시해도 됩니다) 대학은 상아탑이라지만 어차피 그것은 대학원 및 박사과정의 연구하는 사람들 이야기고, 학부 졸업생은 조금 더 고차원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원하는 곳에 취직을 해야 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은가요. 그렇다면 학과를 선택할 때도 가급적 넓은 분야로 나갈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첨언) 대학은 학생의 고등교육, 그리고 자기 전공에 대한 기본소양 교육에만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은 기업의 취업 사관학교가 아닙니다. 기업에서 필요한 교육은 기업에서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 대학에서 하는 건 효율적이지도 않고 실제 기업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삼성 SDS나 SK C&C 같은 소프트웨어/네트워크 관련 회사는 컴퓨터공학과만 모집하지 않고, 공대생 전부를 모집군으로 잡곤 합니다. 어차피 똘똘한 친구라면 기업에서 반년이고 일 년이고 교육하면 그만이라는 사고의 연장선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거슨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으로서 개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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