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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Jun 30. 2016

영화 - 아가씨

전략과 계략, 그리고 능력의 한계

바둑에서 수를 내다본다는 말은 내가 어떠한 지점에 돌을 놓았을 때, 상대방이 근처 어디에 돌을 놓고, 그에 따라 내가 다른 지점에 돌을 놓았을 때, 다시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며 전략을 세운다는 말이다. 즉 어떠한 전략, 다섯 수 열 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이라는 말은, 계속해서 계획했던 바가 틀어지는 것을 가정하고 계획하는 것이다. 그 틀어짐의 변수는 인간이고, 그 인간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렵다. (이하 스포 주의)


영화 아가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 명의 플레이어가 각자의 계략을 가지고 진행된다. 하녀 숙희(김태리)는 처음부터 아가씨인 히데코(김민희)를 부잣집 규수 정도로 재단하고 자신의 계략을 펼쳐 나간다. 극은 같은 상황을 두 명의 시점으로 재해석하는데, 하나는 숙희의 시선이요, 다른 하나는 히데코의 시선이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자부하는 하녀 숙희는 아가씨 히데코의 능력을 낮게 평가하지만, 히데코의 시선으로 가면 그 모두 히데코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것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결국 히데코도 자신의 계략을 끝까지 일관성 있게 펼쳐 나가진 못하게 되는데, 극에선 사랑의 감정이란 장애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극 초반부터 숙희와 히데코의 사랑을 암시하는 시선을 보여주었고, 모든 게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그 눈빛의 진실은 관객에게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사람의 능력은 거기서 거기라지만 엄연히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각자 캐릭터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포장하는 부류가 있고, 자신의 능력을 축소시켜 이야기하는 부류도 있다.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긴장되는 시점은 바로 이 ‘사람’을 처음 만날 때이다. 나의 전략이, 나의 계략이, 상대방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되고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군에게도, 그리고 적군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영화는 결국 그 플레이어들의 전략과 계략이 얽히고설켰지만 나름 심플하게 마무리된다. 심플하고, 나름 괜찮게 마무리되었지만 극이 끝나고 나서도 나의 마음은 개운치 못했다. 상당히 몰입감 있게 만들었고, 그 어마어마한 규모이자 디테일한 미장센에 만족감 있게 보긴 했지만, 기분은 끝끝내 좋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 이유를 오늘 하루 골똘히 생각해 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으로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전쟁 이후 비교적 평온한 시절이 60여 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사람은 그렇게 이제 폭력을 혐오하게 되고, 각자의 사유재산을 인정하여 약탈이나 강도짓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전 일제시대나 6.25라는 특수한 상황이 온다면, 우리 인간은 또 어떠한 방식으로 변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아마도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이러한 사고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아가씨와 같은 시대가 다시 올 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 시대에 발현될 인간의 본성. 나의 능력에 의한 전략과 계략의 한계.


아가씨, 박찬욱 감독,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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