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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Sep 24. 2021

이토록 사적인 독서모임이라니_Ep.05

천선란, 박해울, 박문영, 오정연, 이루카-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

2021년 9월 8일(수) 선선한 바람과 함께했던 2021년 BnJ의 제5회 독서모임.

다시 찾은 서울시립미술관 앞마당에서 진행됐다.


독서모임을 위해 다시 방문한 서울시립미술관. 오늘도 날씨가 무척 좋다.







※ 본 글에는 일부 스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B: 우리 한국 작가 책은 오랜만인 것 같아.


J: 올해 처음이죠?


B: 그런가?


J: 아! 아니다. 1월에 달러구트의 이미예 작가!


B: 아~ 달러구트 2권 나왔더라.


J: 맞아요! 저도 봤어요. 나왔더라고요. 그나저나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책 어땠어요?


B: 일단 단편집이니깐 하나씩 이야기할까? 아니면 통으로 이야기할까?


J: 둘 다 상관없을 것 같아요. 대신 제일 좋았던 단편, 제일 별로였던 단편은 이야기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B: 뭐가 제일 좋았어?


J: 나 왠지 언니랑 좋았던 것, 별로였던 것 겹칠 것 같아요.


B: 그래? 뭐가 제일 좋았는데?


J: 난 '요람행성'이요.


B: '요람행성'이 제일 좋았어? 나는 남십자자리가 제일 좋았어. 제일 별로였던 단편은?


J: 나 '2번 출구에서 만나요'요.


B: 나도!


J: 난 천선란 작가 단편도 좋았어요.


B: 나도. 처음에 천선란 작가 꺼 읽고 ‘재미있다!’ 하고, 두 번째 거 읽고 약간 아쉽다 싶었는데, 너는 그 두 번째가 제일 좋았다는 거지?


J: 응. 난 그거 좋았어요.


B: 나는 그 작품 주인공 아이가 나중에 커서 반전을 주거나, 이야기를 이어가거나, 어떤 마무리를 하겠구나 하는 게 보여서 좀... 뻔했어. 근데 나쁘지는 않았어.


J: 나는 주인공이 행성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 감정 변화랑,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 살아있음을 같이 느낀다는 것에 되게 감명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그 감정에서 크게 느끼는 것이 있었어요. 다른 존재와 생존하고, 살아있는 것을 주인공이 느끼는 것을 내가 같이 느끼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 감정이 되게 따뜻하더라고요.


B: 나는 이게 지구에서 일어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 이게 원래 지구가 아닌 타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잖아. 하지만 지구와 별만 다르지 않았어. 어떤 지적 생명체나, 타인의 고통을 묵인하고 짓밟고 밀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지적 생명체와 공존하려는 노력을 할 것인가에 기로에 놓였을 때 주인공의 감정이 디테일하게 변하잖아. 너 말대로 나도 그게 재미있었고. 약간 식민지? 전쟁? 이런 것과도 연결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 내가 볼 때는 식민지화하는 과정 같았거든. 일제가 예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말살하고 회유하고 하는 과정들이 분명 우리는 이들과 지적 생명체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이지만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미개하게 보고 다 쓸어버리려고 했잖아. 그런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혹은 우리가 어떤 동물들을 대할 때 그런 것과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았고. 그래서 그거에 대한 연장선처럼 느껴져서 나쁘지 않았어. 다만 글의 흐름이 너무 뻔하다 싶었지.


J: 나도 천선란 작가의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와 박해울 작가의 '요람행성' 이렇게 좋았어요.


B: 나는 오정연 작가의 '남십자자리'. 다른 작품들은 외계 생명체나 외계행성에 집중해서 지구가 아닌 어떤 판타지적인 것들을 그리려고 노력한 느낌이었다면, 이 작품은 너무 판타지 같지 않아서 더 심금을 울렸어.

 

J: 뭔가 다른 작품들보다 인간에게 초점이 맞춰진 스토리였죠.


B: 굉장히 있을법한, 진짜 그런 행성을 만들고 그런 걸 떠나서, 미래에 의학기술이 조금 더 발전한다면 가능할 법한 일이어서 재미있었어.


J: 맞아요. 그리고 나는 이루카 작가의 '2번 출구에서 만나요'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B: 너무 추상적이야.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실체가 없는 것을 너무나도 추상적으로만 그려놔서 잘 모르겠어. 이해가 안 돼.


J: 나는 이게 너무 어려운 이과적인 내용인 건가? 그래서 이해가 안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뭔가 명확한 흐름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B: (작가가) 뭔가 재미있는 방식으로 글을 풀어보고 싶으셨던 것 같아.

알리의 입장에서 혹은 유니의 입장에서 글들을 써가잖아. 근데 그게 보통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글을 써내려 갈 때는 빈 공간의 아귀를 맞춰주는 느낌이 있어야 톱니바퀴처럼 내용이 굴러가는데, 개인적으로 톱니바퀴가 맞춰진다기보단 톱니의 볼록한 부분만 맞불리는 것 같았어. 같은 얘기를 둘의 입장에서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었거든. 근데 그 얘기조차 추상적이라 반복적으로 얘기해도 명확해지지 않는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측해 보면, 결국 그 2번 출구는 그냥 '감정'의 다른 말인 것 같아. 이들이 이야기하는 에너지, 신호라는 것이 내가 보기엔 그냥 감정의 변화와 표현인 것 같거든. 그래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만나게 되는 지점을 이야기하는 건가 싶었는데, 확신이 안 선다.


J: 저도 이 책을 단숨에 읽었을 정도로 집중해서 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번 출구가 기억이 잘 안 나요.  아직까지도 무슨 내용이었지? 이런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이 다섯 개의 단편 중에는 '요람행성'이 가장 좋았는데, 글은 천선란 작가의 글이 가장 잘 쓴 글 같기는 해요. 뒤로 가면 갈수록 문장에 힘이 부족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B: 천선란 작가 작품이 좋았던 건 '글'이 좋았다는 거지?


J: 네. 천선란 작가의 글은 분명 쉬운 글은 아닌데 되게 빨리 읽히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리고 '요람 행성'은  내용이 쉬워서 빨리 읽혔고, 그 뒤로 나오는 작품들은 빨리 안 읽혔어요. 천선란 작가의 문장이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B: 아 맞다! 천선란 작가의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읽을 때 영화 '컨텍트' 생각 안 났어? 나는 그 작품 읽을 때 '컨텍트' 생각났었거든.


J: 나도 그 얘기하려고 했었어요. 영화 '컨텍트'가 소설 '(테드 창 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잖아요. 천선란 작가가 왠지 그 책에서 영감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B: 그리고 이게 코로나 시대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 작금의 상황들을 여기 잘 녹여 놓으셨더라고. 그것도 읽는 맛을 더하는 포인트였어.  


J: 이 다섯 명의 작가가 모두 코로나 시대에 영감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를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하는구나 싶었어요.


B: 나도 이후에도 지금 이 시기가 큰 전환점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여하튼, 그래서 그런 부분이 재미있었어.


 

B: 박문영 작가의 '무주지' 얘기를 안 했네. '무주지' 어땠어?


J: 나는 무주지 보면서 '멋진 신세계' 생각났어요.


B: 아~ 맞아. 거기에도 그런 거 나오지.


J: 거기서 말했던 미래의 모습과 많은 것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영화 '아일랜드' 느낌도 많이 났고. 그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들의 복제인간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잖아요. 그런 면도 비슷하기도 했고.  사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이 어디서 봤던 내용들 같기도 해요.ㅎㅎㅎㅎ


B: 맞아. 진짜 영화 '아일랜드'랑 비슷해. 아일랜드는 주문자(?)의 신체적 능력이 떨어졌을 때 그걸 대체하기 위해 복제인간을 만든 거지만, 무주지에 나오는 복제인간들은 인간이 하기 힘든 것, 인간이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대체 인력으로 키워진 거지.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여기 나오는 복제 인간들은 애들을 키우는 임무를 맡고 있잖아. 근데 내가 지금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J: 필요하다? 있었으면 좋겠다?


B: 필요하다기보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었어. 차라리 엄마가 애를 돌볼 수 있도록 일을 해주는 거나 보조 역할을 해주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었거든. (물론 소설이니까 이런 전개가 필요했던 거겠지만...) 그래야 수입도 계속 생기고 안정적으로 아이도 키우고 그래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엄마도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근데 그럴 거면 복제 인간이 아니라 로봇 같은 AI가 낫지 않나 싶고, 그런 생각을 하면 또 AI 때문에 아예 직장을 잃을 수도 있지 않나 싶고, 뭐 그런저런 생각이 들었어.


J: 저는 책 읽으면서 유튜브에서 영화 리뷰 하는 것을 봤는데... 가사를 해주는 AI를 만들었는데, 감정이 없이 태어난 것들이었는데 불량인가? 바이러스인가? 때문에 감정을 갖게 되는 그런 내용이 있었거든요.


B: 그런 거 많지. 예전에 윌 스미스가 경찰로 나왔던 '아이, 로봇'도 그렇고.


J: 아~ 나는 그 영화는 못 봤어요. 근데 그런 류의 영화들이 떠오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물론 나는 기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감정을 갖지 않게끔 설정을 해놓더라도 무언가 학습하게 만들어진다면 감정도 학습이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B: 맞아, 영화 'Her'도 약간 그런 내용이잖아. 학습하면서 점점 더 인간과 가까워지는 거.


J: 맞아. 어쨌든 얘네들이(AI) 더 발전하려면 학습을 하게끔 만들어야 될 텐데 감정도 학습이 될 수도 있으니깐.(과학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J: 언니 혹시 좋았던 구절 체크해 왔어요?


B: 응! 나는 이 장면이 되게 좋았어. '매일같이 마지막 인사를 미리 나눈 지 168일이 되었다. (중략) 남편이 아내의 주름진 손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잘 자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내일 눈 떴을 때 우리가 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매일 같이 인사를 한다는 이 장면이 되게 좋았어. 나도 그러고 싶다 생각이 들만큼.


J: 남십자자리의 내용이네요. 나도 남십자자리 중에 있는데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제일 좋아하는 게 인간지만, 그 인간의 말 중에 제일 믿을 수 없는 게 스스로에 대한 말이다.' 이게 그때 되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B: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했어?


J: 요즘에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었거든요. 예전에 나는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야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내가 스스로를 잘 모르겠다기보다 모든 면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B: A면만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A면도 있고, B면도 있고, C면도 있고? 그래서 남십자자리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잖아. '내가 그 모든 기억을 잃는 게 아니라 마지막에 어떤 기억이 사라질지 모르고, 그 기억이 사라졌을 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모르겠지만, 내 안에 중요한 것은 다 있을 것 있고, 만약에 그것을 잃는다면 네가 그것을 나에게 알려주면 된다.'


J: 맞아. 그리고 남십자자리에서 또 인상 깊었던 게, 주인공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서서히 지울 것인지, 현재의 기억을 저장하지 않게 할 것인지 중에 과거에 기억이 지워지는 쪽을 선택하잖아요. 어찌 보면 그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요.

저도 나이가 들어서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 나도 그런 선택을 할 것 같거든요. 과거의 캐캐 묵은 기억보단 지금의 기억이 남는 게 지금에 나에게는 중요한 거지.

근데, 과거의 기억을 잃은 내가 나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드는 거예요.


B: 난 그래서 주인공이 안 한다고 할 줄 알았어. '나는 과거의 너와의 반짝거리던 순간들, 과거에 내가 했던 과오들을 모두 안고 가고 싶다. 오롯한 나를 지키고 싶다.'그럴 줄 알았거든. 근데 현실은 또 그렇지 않으니까.

알츠하이머나 치매에 걸리면 최근의 기억부터 잊게 되잖아.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들면 들 수록 과거의 기억이 또렷해지고 최근의 기억은 점점 흐릿해지니까.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 깨닫고 선택할 수 있게 되면 좋긴 하겠다.


J: 나도 기억을 먹고사는 사람인데 내가 어떤 일들로 인해서 점점 과거의 기억을 잊는다면 내 인생이 되게 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구절과 내용이어서 선택했어요.


미아는 양로행성에 도착한 뒤 거듭 확인했다.
방치된 미래에서도 삶은 지속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시작한 인연을 소중하게 키워가고, 평생의 빚을 성실히 갚으며,
매일 공들여 이별하는 것으로 암보다 독한 최후의 형벌에 대비하면서...


B: 여하튼. 어디서든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이야기들을 새롭게 잘 구성하려고 노력한 SF 단편 소설들이었는데...


J: 나쁘진 않았다. 쉽게 읽고 싶어서 정했던 책으로 적합했다.


B: 그리고 아직은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서 SF 쪽으로 발판이 잘 마련되어있지 않잖아. 나는 SF계가 아직도 도약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정도?


J: 나는 발견 못했다...ㅎㅎㅎ


B: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다.  대한민국의 SF는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할만하다.



B&J의 지극히 사적인 평점

B: 7.8

J: 7.7


함께 보면 좋을 작품 추천!

B: 영화 '컨텍트' : '지구 밖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 소통할 수 있다면' 그 상상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
J: 영화 '월-E' : 어른과 아이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미래의 이야기

* 이 글은 B의 브런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bonaw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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