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만 하면 양손은 무거워지고, 잠은 줄고, 지갑은 얇아진다. 정신과 의사에게 진단을 받은 건 아니지만, 나는 스스로 '변수포비아 환자'라고 부른다.
'혹시'라는 이유로 20분 일찍 눈을 뜨고, 10분 일찍 집을 나선다. 뭐든 하나 더 사두고, 이것저것 가방에 쑤셔 넣는다. 외출 전 날씨 확인은 습관이고, 강수 확률이 50%만 되어도 우산을 챙겨 나간다.
확률은 반반. 어느 날에는 혹시 몰라 챙겼던 손수건, 위장약, 여분의 옷 들을 아주 유용하게 쓴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프린트해 온 종이가 쓸모없어 버리거나, 두 배가 된 짐을 무겁게 들고 돌아온다. 여행 짐을 꾸릴 때는 기본 3시간은 필요하다. 그래서 바쁠 때는 장거리 여행을 잘 안 잡는다. 짐을 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피곤했고 스트레스였으니까. 내 짐은 늘 무거웠고 혹시 모르니까 챙겨간 것들은 절반만 유용했다.
그럼에도 이 행동을 멈출 수는 없었다.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대비하는 편이 무조건 나았으니까. 마음이 지친 것보다는 몸만 고단한 게 더 나았기에.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 예를 들자면 내일 사무실 공사가 키워드다. 책상, 파티션, 개인 짐을 옮길 예정이라 '출근길 편의점에서 물티슈를 사야겠다'가 첫 번째 든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사무실에 이미 물티슈가 있는 사람이다. (그럼 왜 또 사는 건데..)
지금 가진 것으로는 모자랄 게 분명하니까. 먼지, 새 책상, PC, 숨어있던 물건들을 다 닦아야 하므로. 필요한 순간에 사러 나가느니 미리 사가는 게 편하다가 두 번째 생각이다.
출근길 혼잡함을 고려하여 집 앞이 아닌 회사 앞에서 사간다로 세 번째 생각을 마치고, 여기서 혹시 모르니까가 슬금 고개를 든다. '그럼 몇 개면 될까? 혹시 모르니까, 나눠줄 것까지 계산해서 두 개.'
해외여행이면 증상은 더 심각해진다. 캐리어 초과 비용 지불해 본 인간으로서... 무게가 늘 걱정되어 캐리어 전용 저울도 샀고, 보조배터리는 용량 초과여서 여행용/일상용이 따로 있다. 여행짐을 싸는 것은 나에게는 항상 거대한 인생 미션이었다.
남들은 이게 안 필요한가? 어쩜 저렇게 후다닥 빨리 끝나지? 여행 같이 갈 친구들에게서 하나 둘 누웠다는 연락이 온다. 항상 그 평안한 밤이 부러웠다. 나는 아직 옷방에 갇혀 있는데. 지나가던 남편은 널브러진 옷들과 열려 있는 짐 가방을 보며 "여보, 유학가?" 농담을 던지고는 한다.
물론 준비병은 오프라인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 몰라서 찍어두고 캡처해 둔 사진과 메모들로 내 데이터는 항상 가득이다. 카카오톡에서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기능이 나왔을 때, 나는 환호했다. 그 채팅방 이름을 <메모장>으로 바꿔두었다. 가끔 내 카톡을 보는 사람마다 "어머, 이거 메모장으로 저장해 둔 사람 처음 봐" 하며 신기해한다.
신혼집 입주 전에는 현관부터 방마다 동영상으로 촬영을 해두었다. 동영상 덕분에 보일러 위치가 어디 있었지? 샤워기 모양이 뭐였지? 세탁기 들어갈 때 문고리가 어느 방향에 있었지? 입주 전 물건 구매 시에 유용했던 기억도 있다.
준비병 말기환자의 자기 전 루틴은 이것이다. 나는 휴대폰 알람 3개와 아날로그시계 2개를 맞추고 자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자기 직전 알람 소리를 귀로 확인한다. 벨소리 크기도 최대화해서 들어보고 잔다. 예전에 벨소리 크기가 작게 설정되어 못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 매일밤 우리 부부는 한 바탕 웃고 잔다.
"와 오늘도 또 듣는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응. 이걸 들어야 마음이 편해 잠깐만 참아줘"
웃으며 이불을 덮는다.
지독한 준비병 덕에 업무성과는 좋았지만 일상은 확실 피곤했다. 과거에는 이런 성향을 부끄러워하고 심지어는 싫어했다. 그렇기에 남들에게 이런 성향을 드러내 본 적이 없었다. 별난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아서. 하지만 별나다는 건 특별하다는 거야. 지금의 나는 별 모양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준비하는 게 뭐 좀 어때서.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준비를 안 하고 괜찮은 사람이 있듯이
나는 '준비를 해야만 괜찮은 사람'임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해 주자 오히려 '될 대로 돼라'는 마음이 장착됐다. 참 신기했다. 나를 인정했을 뿐인데 마음이 편했다. 나 이런 사람이야. 나를 드러내고 개그 요소로 쓰고 깔깔 대는 날들이 쌓여갔다.
그러자 어떤 비 오는 날에는 동료랑 한바탕 비도 맞아보고, 구두가 끊어져 실내용 슬리퍼 신은 채 길을 걸어보고,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길을 묻기도 하는 날들을 갖게 된 것이다. 준비를 안 하면 사람과 사람사이 에피소드가 생겨나는 걸 알게 됐다. 이 점이 퍽 즐거웠다.
하지만 여전히,
내 좌우명은 '유비무환'이고 특기는 '준비하기'가 맞다.
누군가 뒤꿈치가 까졌을 때 밴드를 건네고
비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할 수 있으니까.
그게 내 진짜 모습이니까.
그래도 가끔은,
센 척을 하며 계획을 느슨하게 슬쩍 놓아본다.
그 틈에 사람이, 이야기가, 바람이 스며들기에.
어쩌면 내가 변수에 취약해진 건,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었던 생존 본능이 아니었을까. 가장 두려워하는 건 보호자로서 준비되지 않은 응급상황에 노출되는 거고 그게 끔찍하게도 싫어서 여러 단계의 준비를 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미리 준비된 보호자'이고 싶었다.
준비하지 않아도
해결되는 일상이 찾아오기를 바랐다.
엄마가 아플 때는 가방이 몇 배는 더 무겁다.
무거운 건 사실 가방만은 아니겠지.
내일의 나는 어깨도 발도 한껏 가벼워도 괜찮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엄마의 아픔이 내 일상을 휘두르지 않기를.
걱정할 변수가 오직 나의 것들뿐인 삶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