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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자격 없음

by 탄만두


“남편 말고 보호자 없어요.”

그 말을 내뱉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엄마의 보호자였다.

엄마는 내 보호자가 될 수 없었다.





옆 자리에 앉은 남편이 비명을 지르며

양 팔을 휘젓고 있었다.

이상했다.

비명이 멈추지 않았다.


창밖에선 와이퍼가 미친 듯이 움직이고,

내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파왔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날 밤,
나는 보호자가 아니라 교통사고 환자였다.


알 수 없는 구토감이 들었다.

급하게 휴대폰을 찾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지금 몇 시지?

휴대폰은 여전히 손이 닿는 곳엔 없었다.

그 순간, 창밖으로 조명이 마구 쏟아졌다.


괜찮으세요????

다양한 목소리와 불빛들이 들이닥쳤다.


오른손으로 허리를 움켜쥐었다.

아뿔싸.

허리가 왜 이렇게 아프지?

본능적으로 발가락을 움직여봤다.

다행히 발가락은 이상이 없다.

하반신 마비는 아니구나.

그 와중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구급차에 실려가는 동안에

사지가 떨려왔다.

한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몸이 왜 그렇게 떨리던지.

도통 진정이 안 되어서 구급대원분이 손을 잡아주셨다.


"다른 보호자가 필요한데"

"연락할 다른 보호자 또 없으세요?"


누워있는 나를 향한 질문.

보호자???? 남편인데??????

아 남편도 같이 사고 나서 그렇구나.


"남편 말고 보호자 없어요"

"엄마가 서울 사시기는 하는데...엄마는 제 보호자가 될 수 없어요."


말이 입 밖으로 떨어지는 순간 떨리던 몸이 멈췄다.

나는 엄마의 보호자였다.
누가, 누굴 보호한단 말인가.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엄마가 달려온다 한들.

엄마는 내 보호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


놀란 엄마가

스트레스로 이석증 어택 와서

옆 침대에 같이 입원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퇴원 후 짐 찾으러 간 차량 상태. 당시엔 이렇게 심각한 사고였는지 몰랐다.



응급실에 도착한 우리는

뇌 ct와 엑스레이를 차례로 찍었다.


누워서 그런 생각을 했다.

처음 가본 병원이기도 했지만

환자로 누워있는 경험 자체가 생소하고 낯설었다.

나는 늘 보호자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복용 중인 약, 부작용 있는 약 있으세요?"


"아뇨. 없어요"


혈관도 한 번에 척척 찾아서

링거도 쉽게 꽂는 나라는 환자.


엄마도 이런 속도로

혈관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작용 있는 약이 없다면

처방이 조금은 더 쉬울까.


계속 엄마 생각이 났다.

내일 아침에 이 사고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왜 어제 연락 안 했느냐고 묻진 않을까.

지금이라도 연락하는 게 나을까?

아픈 와중에 나는 이런 고민을 왜 하고 있는 거지?


'엄마 걱정할까 봐 말 안 했어'
라는 말.


그 말이

엄마가 내 걱정으로 잠 못 자고,

스트레스로 이석증 재발하면

나는 정말 더 힘들어질 걸 아니까.


무엇이 엄마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는 선택일까.

엄마에 대한 걱정이

내 인생에 끈적하게도 달라붙어 있었다.


교통사고 사실을

최대한 축소해서 말해야 겠다는 다짐이 우스웠다.

엄마 앞에서는 영원히 멈출 수 없는 연극.


엄마 앞에서 나는,

단 한순간도 '진짜 나'였던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응급실에 누워있다니.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약해져도 괜찮은 날이 있다는 걸. 그 하루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도. 보호자로써의 삶을 인정하고 직면해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의 이름을 '보호자'라는 역할 안에 가두고서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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