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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응급실에서 태어나, 브런치에서 자랐다

나의 상처가 누군가의 지도가 되기를

by 탄만두

"응급실에 앉아, 잠든 엄마를 빤히 바라보며

휴대폰 메모장에 두 줄을 적었다. 그것이 첫 글이었다."


KakaoTalk_20250829_003251017.jpg 2014년 기록



굳이 글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짧은 메모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시 들여다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이만큼 괴롭던 시간도 결국 지나가긴 하는구나.' 걸어온 길의 지도를 확인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과거는 과거에 남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건 이 끔찍한 현실도 언젠가 과거가 된다는 증거였다.


그 메모장은 어디에도 보여줄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대나무숲이었다. 주제도, 형식도, 마침표도 없었다. 병원 복도나 화장실에서 쏟아낸 감정, 엄마가 구토하는 걸 받아내며 느낀 무력감, 처음 구급차를 탄 날, 회사에서 택시타고 병원 가는 길에 이대로 편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아찔함, 엄마 나이 또래의 어머님들이 길가에 잘 걸어다니는 것 만봐도 화가났던 순간들. 집에 돌아와 아무도 모르게 삼킨 눈물까지 그곳에 흘려보냈다.


그러던 기록이 쌓이고 쌓여, 시간이 흘러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지금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내 글은 애초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KakaoTalk_20250423_054032380.jpg 기록 뒤에 늘 존재하던 현실



브런치에 첫 글을 발행할 때는 두려움이 컸다. 익명이라 해도 누군가 비난하면 어쩌나 걱정을 가득 대출받은 듯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은 무관심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자유로웠다. 예상 밖의 순간은 따로 있었다. 메인 노출로 조회수가 수십만을 넘어가고 구독자가 급증했을 때였다. 기쁘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걱정이 함께했다.


하지만 글이 더 쌓이면서 깨달았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오래 기억할 만한 정교한 지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그 지도 속에서 무채색 같던 내 삶에도 색깔이 입혀졌다. 내가 쓴 문장이나 단어를 다시 입 밖으로 꺼내며 가치관이 단단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처음 몇 년은 가까운 친구들에게조차 글을 알리지 않았다. 엄마를 돌보며 느낀 우울과 분노가 현실의 밝은 나를 덮어버릴까 두려웠다. 하지만 돌봄 서사를 아는 가까운 이들에게 조금씩 글을 보여주자,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이건 네 얘기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 같아."


브런치 덕분에 라디오에 출연하게 되면서는 글을 더 넓은 사람들에게 열어두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먼 지인들이 읽고 있다고 생각하니 글쓰기도 달라졌다. 감정을 줄이고 상황은 더 디테일하게 기록하면서, 공감의 폭이 넓어졌다. 좋아요와 구독자가 늘어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은, 모르는 독자가 남긴 댓글들이다. "오늘도 버텨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글이 큰 힘이 되었어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글을 쓰는 이유가 선명해진다.


브런치북으로 한 주제를 묶어 연재하면서는 병원에서의 시간조차 조금 다르게 보였다. 글로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 차분히 의료진의 말을 기억했고, 일상의 대화마저 자료처럼 붙잡았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날아가버릴 것 같은 감정들을 빠르게 기록했다. 그렇게 쌓인 글들은 보호자로서의 나를 지탱하는 또 다른 버팀목이 됐다.


이제는 병원에 가며 스스로에게 농담처럼 말하고는 한다. '그래, 어차피 소재 얻으러 간다.' 그렇게 글쓰기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을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돌봄의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엄마와 4통의 전화를 했고, 병원 예약 날짜를 바꾸고, 지난주에는 검사비로 71만 원을 썼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고통은 다른 얼굴을 갖게 되었다. 상처였던 순간이 기록이 되고, 기록이 지도가 되며, 지도는 누군가에게 건너갈 다리가 될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내게 그 다리를 펼칠 용기를 준 공간이다. 여전히 내 글은 일기에 가깝다. 다만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네도 괜찮은 정도의 일기다. 같은 상황에 놓인 보호자가 읽고 힘을 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돌봄의 무게 속에서 시작된 글쓰기가 브런치에서 길이 되었고, 그 길 끝에서 '작가'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됐다. 아마 브런치가 없었다면 여전히 휴대폰 메모장에만 글을 남기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내 꿈은 단순히 나만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돌봄이라는 보편적 경험을 함께 나누고 누군가의 내일을 조금 더 단단하게 바꾸는 문장이 되는 것이다. 내 글은 나 하나의 생존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닿아 함께 견디게 하는 작은 다리가 되길 바란다. 10년 후에도 브런치에서 쓰는 나의 문장이 더 많은 보호자와 독자들에게 건너갈 수 있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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