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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Oct 09. 2018

귀찮다면서도 일기장을 꺼내 쓴다



잊히지 않는 한 가지 문장이 있다.

10대의 시간은 10㎞로 달리고 20대는 20㎞로 달리고, 삼 십 대엔 30킬로미터로 달린다는 말. 고등학교 시절 논리 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점점 더 빨리 달린다는 뜻이었다.


논리 선생님은 여자분이셨다. 호탕하고 유쾌하신 성격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 역시 그 호방함을 좋아하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무료하던 어느 날 선생님은 우리에게 킬로미터 이야기를 하고 큰 목소리로 장담하셨다. 너희 지금 시간 되게 안 가지? 지루해 죽겠지? 근데 나중에 내가 한 말 분명히 생각날 거야. 그때 논리쌤 말이 맞았다고.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날, 너희에게도 분명 올 거야.


정말이었다. 나는 해마다 가을이 오면 이 말이 떠올랐다. 논리 선생님의 예언(?)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은 머릿속에 더 선명하게 맴돌았다. 정말 참 스승님이 아닐 수 없다. 그때 선생님의 1년은 사십 킬로미터 즈음으로 달렸을까. 지금의 속도는 더 빨라지셨겠지.


십 대에는 1년이 지나는 게 정말 길었다. 빨리 나도 어른 돼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 수업시간은 왜 이렇게 지루한지. 하교 후에도 해가 넘어가려면 한참 걸렸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해넘이를 바라보며 할 게 없다고 칭얼거렸던 건 참 좋은 일이었다. 그땐 진짜 몰랐지만. 나도 내가 이런 말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교복 입을 때가 좋을 때다'라는 말 정말 싫어했는데.








지난겨울, 스타벅스에서 연마다 출시하는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커피를 17잔인가 마셔가며 끝끝내 받아냈다. 그 카페는 매년 다이어리를 출시했으나 관심 있게 본 적이 없었는데 샘플로 나와 있던 다이어리가 무척 마음에 들어 참여해봤다. 커피는 매일 1~2잔씩 꼭 마시니까 방문하는 카페만 고정하면 금세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세상엔 쉽게 볼 일은 없었다. 마지막 3잔 정도를 남겨 두고는 "대체 내가 이거를 왜 시작해서…"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처음부터 다이어리값만 내고 그냥 구매할걸. 가까운 카페에 가고 싶어도 스티커 모으느라 스타벅스를 향했고, 거리가 멀거나 부득이하게 다른 카페를 이용할 땐 격하게 아쉬워했다. 주머니에서 헛돈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쨌거나 식음료 브랜드의 '새해 다이어리' 마케팅 효과는 적어도 나에게는 확실히 입증되었다. 한동안 어디에 가더라도 스타벅스가 어디 있는지부터 찾았으니까. 사실 나는 마케팅을 전공했는데 매번 이렇게 마케팅에 저격당한다.







이야기가 스타벅스로 잠깐 샜는데,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다이어리'를 해마다 직접 구매하는 <일기 쓰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일기 쓰기> 숙제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텐데. 왜 누구는 숙제로 썼던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일기였고 누군가는 아직도 쓸까. 그 이유를 나는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쓴 일기는 읽는 사람이 있거든.


내 일기의 유일무이한 애독자는 바로 나다. '오늘 운동회를 했다'부터 '회사 다니기 싫다'는 글을 다시 보고 울고 웃는다. 잊고 살만하면 한 번씩 꺼내서 읽어보고 과거를 되새김질한다.


쓰기부터 자주 다시 읽어보는 것까지 통째로 나의 취미인 셈이다. 이땐 이랬구나 이때는 왜 그랬지 하며 과거를 통해 현재의 마음을 다잡곤 한다. 그다음엔 이러지 말아야지 혹은 해야지. 하는 마음도 함께.




내 취미는 일기 쓰기, 쓴 일기 다시 읽기
특기는 추억팔이다




오래 전 이사하면서 초등학교 때 써둔 일기장을 한 뭉텅이 찾았다. 6년 치 인데 자그마치 21권이나 됐다. 4학년 때 수량이 폭발적으로 많은 걸 보니 담임선생님이 숙제로 내주셨나 보다. 보나 마나 그땐 쓰기 싫었겠지만 교복을 입고 다시 읽어본 나의 초딩시절은 너무 재미있었고 교복 입고 지낸 일상을 정장 입은 미래에 나에게도 읽게 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의 일기 쓰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십 대에 쓴 일기장엔 어떤 날은 우울했고 어느 날은 화난다는 감정만 쓰여 있었다. 몇 년 지나서 다시 읽어보니까 이날 대체 왜 화났지? 이다음에 그래서 어떻게 했지? 궁금해졌고 이후부턴 한 줄이라도 더 쓰게 됐다.


읽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게 함정이긴 한데 어쨌거나 <독자>가 있으니 열심히 쓰게 됐다. 본의 아니게 그 과정이 글 쓰는 훈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훈련이라고 생각하는 건 대부분의 날이 책상 앞에 앉기 정말이지 귀찮았기 때문이다. 쉽고 재미있으면 훈련이 아니지. 재미있는 건 까맣게 잊고 살다가 우연히 발견해 다시 읽을 때였고.


별거 없는 평범한 하루는 기록할 게 없어 힘들었다. 똑같이 일어나서 출근하고 밥 먹고 집에 왔는데. 나 오늘 진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게 없는데. 그런데 그 지루한 하루도 쥐어짜면 한 줄의 감상평이 나오긴 했다. 하다못해 <오늘은 일기 쓰기 너무 싫은 날이다> 라는 단 한 줄이라도.


한 줄의 기록도 어떤 식으로든 나 자신에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한 뒤 가능하면 자주 쓰려고 노력했다. 기록되지 않는 기억은 언젠가는 잊히기 마련이기에. 나는 어리석고 한심했던 나 자신도 기억하고 싶다. 다시는 그러지 않기 위해서.








새해가 밝으면 다이어리를 사는게 나에 겐 연례행사가 됐다. 여러가지 종류의 것을 사봤다. 하지만 여름으로 갈수록 빈 공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찬 바람 불면 갑자기 열심히 다시 썼다. 나는 그 빈칸을 어떻게든 채우고 싶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검사하는 것도 아닌데. 밀리지 않고 차곡차곡 1년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일종의 인생 미션 같았다.


해마다 문구점과 서점을 다니며 나의 한 해를 기억해 줄 디자인을 찾았고 작년에 발견한 곳이 스타벅스였다. 발품 팔아 힘들게 교환한 아이템이라 그런가 지난 9개월 동안 한 장의 빈칸도 없이 채웠다. 컨디션에 따라 한 줄이기도 했고 한 바닥이기도 했다.  


그 일기장은 날짜와 요일이 전부 찍혀있는 데일리 다이어리다. 만년 다이어리라고 날짜를 직접 쓸 수 있는 다이어리를 주로 썼었는데 귀찮은 날엔 미루다 보니 1권을 가지고 2년 넘게 쓰기도 했다. 날짜가 찍힌 일기장은 페이지를 채우지 못하면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고 매일 쓰는 연습을 하기에 좋았다.


달력을 10월로 넘기고서 논리 선생님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진짜 속도 어마무시하네. 심지어 내년엔 이거보다 더 빨리 간다고? 말도 안 돼. 나는 바뀐 것도 이룬 것도 없는데. 뭐 했다고 10월이래. 허망함을 느끼며 일기를 꺼냈다. 오랜만에 1월부터 정주행하려고 넘기자마자 빵 터졌다.



2018-01-10 새해 10일 차에 지쳐있음



어처구니가 없어 한참을 웃었다. 얘는 뭐 시작부터 힘들대. 연초부터 지쳐있었고 이후로도 꾸준히 힘들어하면서 10월까지 꾸역꾸역 잘도 왔구나. 웃으며 9개월 치의 일상을 손으로 잡아보는데 두께에서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달력으로는 9장이었지만 매일의 기록들은 약 280장이었다.


280장을 손으로 잡고 있으니 하루도 대충 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겨놓은 매일은 치열했다. 다만 잊고 살았다. 280장의 페이지엔 재밌는 흔적도 남았다. 졸린 날에는 글씨도 졸고 있고 열 받은 날에는 글씨도 화나 있다. 글이 쓰고 싶은 날, 잘 써지는 날에는 글씨도 예뻤다. PC로 쓰는 일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이 있었다.


그 어떤 해보다 '분노'의 감정이 많이 기록되긴 했다. 느낌표 투성에 휘갈겨 쓴 날이 다수였다. 하지만 중간중간 기뻐했던 일도 있었다. 가령 브런치에 쓴 글이 다음 메인이나 카카오 채널에 걸렸을 때라던가, 자고 나니 구독자가 껑충 늘어있어 깜짝 놀랐던 날들의 기록이 그렇다.







나는 올해 처음으로 내가 쓴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 추억 되새김질하며 혼자 끄덕이던 문장들이 다른 사람의 고개도 끄덕이게 할 수 있다니? 솔직히 아직은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읽어주는 분을 발견할 때마다, 공감했다는 댓글을 볼 때마다 얼떨떨하면서도 기분이 뛴다.


행복했던 기록의 페이지를 넘기며 앞으로도 그 장르로 오래 기뻐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부끄러운 일기가 더 많지만 언젠가는 조금은 덜 부끄러운 나의 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기를.  


내가 귀찮아하면서도 일기를 꾸준히 쓴 건 1명의 나라는 <독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남기는 공개 일기는 감사하게도 나 혼자만 읽는 글로 남지 않았다. 어떤 경로든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나는 앞으로도 더 열심히 쓰고 열심히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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