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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Dec 13. 2018

말 많이 한다고 낯가림 없는 거 아니에요



'나는 낯가리는 사람이다'

이 문장은 나의 지인들을 푸학 하고 웃게 만드는 마법의 문장. 저 말을 들은 사람이 열이라면 열 명이 다 웃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넌 아니야'라고 했다. 왜 그런 반응인지 들어보니 그들이 기억하는 내 첫인상 때문이었다. 대부분 내가 말을 먼저 걸었다고. 전혀 낯가리는 사람처럼 안 보였다고 했다. 넌 절대 낯가리는 사람 아니라고.


그렇게 비웃음을 사면서도 확신하는 이유가 있다. 첫 만남에서 열심히 뱉었던 말들, 나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다. 정말 기억 안 난다. 긴장해서 아무 말이나 뱉었기 때문이다.






낯선 이를 만나면 어색해하는 사람들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눠 볼 수 있다. 너무 어색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어버리는 사람. 아니면 나처럼 그걸 견딜 수 없어서 나서서 뭐라도 말을 해야만 하는 사람.


공간을 떠도는 어색한 침묵이 너무너무너무 싫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낼까 눈치를 보며 쭈뼛대는 상황도 괴롭다. 그게 싫다 보니까 그 공기를 메우고자 아무 말 대잔치를 열게 된다. 그러다 보면 공통 관심사 하나쯤은 얻어걸리는 거고 그렇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아이스브레이킹 타임을 갖는다. 그래서 다들 내가 낯 안 가리는 줄 알았겠지.


사교적인 성향이 전혀 없다고는 생각 안 한다. 먼저 말을 건네고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게 죽고 싶을 만큼 괴롭고 힘든 일은 아니라서. 하지만 에너지 소모하는 일이냐고 물으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으아! 무슨 말 하지! 머리를 굴려 앞에 있는 사람이 적어도 '싫어할 것 같은' 주제는 피해서 말을 던지는 게, 나에게는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게 쉬운 사람이 있긴 할까? 혹시 이 과정 과정이 즐겁거나 조금은 쉬운 이들이 사람을 맨투맨으로 상대하는 직업을 갖는 게 아닐까? 일단 나는 절대 아니다.


암튼, 그래서 한때는 친한 친구들을 만나 아무 대화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다. 내가 적어도 얘 앞에서는 침묵을 못 견디지 않는구나. 말없이 가만히 있어도 어색하다는 생각이 안 드니까 좋았다. 마음이 편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진짜 낯 안 가리는 사람들은 침묵이고 뭐고 별생각 안든다고들 했다. 봐봐 나 낯가리는 사람 맞잖아…





최근에도 어색한 그룹에서 열심히 빈 공기를 메꾸는 시간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번번이 나는 우리 고양이를 소환했다.


생각보다 연령 불문 귀여운 게 최고다.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귀여운 고양이 사진 앞에서는 모두가 무장 해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고 있으면 주니 너 없었음 어쩔뻔했어 우리 고양이에게 속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절로 하게 된다.


어떤 특정 사건을 계기로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만남도 물론 있다. 나도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특히 회사 사람들. 이들에게 시간이란 아이고 여러분들 잘 참았습니다. 여기 친분 레벨 1단계 업그레이드 해드려요! 아이템처럼 뿅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다. 모두가 노력해야만 한다.


어색한 첫 만남. 누군가는 반드시 먼저 말을 건네고 있다. 새로운 만남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나처럼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하는 사람이거나. 생각보다 후자가 많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최초의 입을 떼야 하잖아요.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말 문을 먼저 트는 일. 까놓고 보면 누구에게나 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 거절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안녕하세요 제 특기는 거절당하기입니다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거절 당했을 때 머쓱하고 쑥스러운 건 누구나 똑같을 텐데.


그래서 어떤 첫 만남이든 열심히 말을 건네는 사람에게 나도 최선을 다해 반응한다.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은 서로를 잘 알아보기에 고군분투하는 게 잘 보이기 때문이다. 제가 받아드릴게요. 당신의 드립! 하지만 낯가림이 심해 입이 얼어버리는 사람들의 고충도 분명 있겠지. 그래도 ! 그래도 ! 대답은 잘해줄 수 있잖아요 엉엉.


말을 먼저 건넸다고. 많이 한다고. 원래 그런가보다 말고 모두 함께 어색한 처음의 벽을 깨부수면 좋겠다. 태초에 우리 원래 다 모르는 사람이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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