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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다란고양이 Jun 13. 2024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건

나도 고양이가 되어 간다는 것.

어렸을 때 동물을 길렀을 땐 그저 아빠가,
엄마가 데려온 애들을 길렀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책임감이 그렇게 있진 않았다.
의무감만 있었을 뿐.
갑자기 의문이 든다.
나를 믿고 동물들을 데려온 걸까???
어차피 데려가면 큰 아들이 키울 거니

부담 없이 데려온 건 아닌지.
조만간 물어봐야겠다.

어쨌든, 심사숙고 후에 데려온 어린 생명체는

첫날을 제외하고 깨발랄했다.
처음 보는 장소, 처음 보는 인간들,

처음 보는 물건들이 낯설었나 보다.
캐리어에서 나오지도 않고 구석에만 있는 모습도,
식빵을 구우며 자는 모습도 너무나 귀여웠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자 자기만의 세상이 되었다.
밥도 잘 먹고 오줌도 아무 데나 싸고,
똥 냄새는 기가 막히게 났다.

당분간은 내 방에서 기를 예정이어서

한 동안은 방문을 닫고 살았다.
당연히 고양이 화장실은 내 방 안에 둘 수밖에 있었다.
처음에는 친환경인 고양이 모래,
홍화씨로 된 고양이 모래를 썼는데...
미르가 똥을 싸는 순간과 동시에 냄새가

방을 화려하게 감쌌다.
어떤 날은 자다가 똥 냄새에

잠이 깨서 똥을 푼 적이 있었다.
그날 결심했다.
친환경은 저 멀리 던져버리기로.
잠결에 모래 쇼핑을 시작했다.

모래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이모가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니, 저기 산에 있는 모래 퍼 오면 될걸

뭐 이리 비싼 걸 쓰냐며.
꽤 일리 있는 이야기였지만,
난 모래를 푸러 갈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모래 유목민 생활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일단, 책상 정리가 시급했던 순간들.

11년 전 가족과 함께 살 때는

내 방에 컴퓨터가 있었다.
그 당시엔 동생이 자주 소환사의 협곡을

가기 위해 내 방에 오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내가 없으니 대체재가 필요했던 미르였나 보다.
동생이 내 방에서 피 튀기는 전쟁을 일으키는

동안에 관심을 끌었다.
바로 모니터와 키보드 사이에서

이래도 게임이 잡히냐며 말이다.
그렇게 미르는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동생이 게임 중간중간에 사진을 찍을 정도였으니.
만족스러운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내 폰에도, 동생 폰에도,
쌓여 가는 건 미르의 사진이었다.

집에 고양이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술 약속을 미루고 집에 오는 날이 늘었다.
아니면 술을 마시다가 빠르게 귀가하는 경우도 생겼다.
아기가 생기거나,
소중한 생명이 집에 있으니,
자연스레 귀소본능은 강력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갑자기 술기운에 나를 깨우던 아빠가 생각난다.
나도 가끔 자고 있는 미르를
맨 정신으로도, 술기운에 깨우기 시작했다.
내가 어릴 땐 그게 그렇게 싫었는데,
내가 그랬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고양이에 대해 알아가게,
아니, 스며들어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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