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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다란고양이 Aug 05. 2023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던 고객들

고객에 대한 열정과 냉정

말년 휴가 기간에 면접을 보고 합격을 하게 되면서 나는 전역자임과 동시에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춘삼월에 나는 사회에 한 걸음 내딛게 되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세상을 향한 나의 걸음걸이도 당당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따뜻하진 않았고 고객을 향한 나의 걸음걸이가 위태위태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던 것 같다.


 까까머리 전역자는 전역 이후 자유를 즐기거나 나태할 틈도 없이 바로 고객센터 교육생이 되었다.

 만약 나를 나태 지옥에 보낸다면 나태 지옥을 관장하는 초강 대왕에게 민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객센터에서 일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요했다.

 회사에 대한 소개와 회사에서 취급하는 제품들과 서비스, 그리고 응대 매뉴얼 등이 약 5일간의 교육으로 진행이 된다.

 첫날부터 사흘간은 제품과 회사, 응대 스크립트를 배우게 되는데 막상 실무에 들어가게 되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 정신이 바사삭 거리는 게 정석인 것 같다.

 거의 4일 차 5일 차는 선배의 콜을 듣고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거나 내가 콜을 받으면서 선배의 코칭이 이루어지곤 하는 시스템이다.


스마트폰보다는 폴더나 풀 터치폰이 주류던 시절이었다.

풀 터치폰 초창기여서 그런지 습기만 있으면 휴대폰이 터치가 되지 않아 사용이 되지 않는다는 문의가 많을 때였다.

고온 다습한 한국의 날씨에 맞게 외부에 있을 때엔 습기로 인해 터치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최신폰을 고가에 구매했을 때엔 충분히 좋아했지만,

터치가 되지 않아  불편함을 느껴 AS 센터에 방문했을 때엔 엄청난 마법이 일어난다.

AS 센터의 쾌적한 환경으로 인해 고객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터치 오작동을 일으키는 원인인 습기가 사라져 휴대폰 작동이 원활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기사가 점검을 해도 증상이 발현되지 않아 그냥 허탈하게 AS 센터를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성격이 있는 사람들은 AS 센터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면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객센터는 코로나 시기 전부터 비대면에 익숙한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이었던 것 같다.

 그런 일들이 2, 3회 누적이 되다 보면 고객의 분노 게이지가 극에 달하게 된다.

그렇게 분노에 달하게 되고 잘 발효된 고객이 고객센터에 인입이 된다면 사달이 난다.


인입과 동시에 온갖 욕들과 폭언이 시작되곤 하는데 10년 전 그 당시엔 고객센터 감정노동자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시절이어서 고객이 끊을 때까지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면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던 사람들이나 여린 사람들은 울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퇴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나는 온갖 욕이나 폭언에 흔들림이 없었는데 입사하고 나서 처음 목소리가 흔들렸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가족은 건들지 말라는 말은 괜히 생긴 말이 아닌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고객 때문이었는데 입사 이래 처음으로 나도 고객이란 이름이 진상으로 보이는 경험하게 되었던 날이었다.

나도 이 진상에게 시원하게 욕을 하고 이 회사를 뜰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순간이었다.


그나마 그러한 진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버틸 수 있던 건 내가 다녔던 센터의 팀장 덕분이었던 것 같다.

팀원들이 콜이 길어지면 감청을 하곤 했다.

감청을 하면서 사태가 좋지 않음을 감지했는지,

아니면 신입이 정신이 나갈 것을 걱정했는지,

내 뒤에 있던 팀장이 전화 먼저 끊으라는 액션을 취해 한 템포 쉬어갈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팀장이 직접 통화를 걸게 되어 그 콜을 마무리를 지었고 나는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갈 수 있었다.


마냥 앉아서 일해서 편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은 고객센터 직원이 되면서 많이 바뀌게 되었다.

무엇이든 그 자리에서 경험해 봐야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초보 상담사의 애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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