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는 살아가고 있었고
나는 소파에 기대어 TV를 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우리 집 풍경이었다.
바람이는 캣타워 꼭대기에서 식빵을 굽고 있었고, 나무는 창가에서 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무슨 예능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범한 저녁이었다.
딩동.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시간에 누가 오지?
택배는 보통 낮에 오는데.
기대고 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발밑에 뭔가 있었다.
작은 봉투 하나.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하얀 봉투였다.
봉투 위에는 발자국 같은 게 찍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 발바닥 모양이었다.
젤리 쿠션의 형태가 선명했다.
나는 봉투를 집어 들었다.
봉투 겉면에 글씨가 적혀 있었다.
[보내는 이: 미르]
[받는 이: 최준혁]
심장 한편이 내려앉았다.
미르?
미르가 편지를 보냈어?
나는 허겁지겁 봉투를 뜯었다.
안에는 접힌 편지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편지지를 펼쳤다.
삐뚤삐뚤한 글씨가 보였다.
고양이 발로 쓴 것처럼 어눌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이 담긴 글씨였다.
[집사에게]
나 여기 잘 있어.
다리도 안 아파. 밥도 잘 먹어.
지장보살님 무릎이 진짜 따뜻해.
근데 아빠가 보고 싶어.
울지 마. 나 행복해.
관에 적어줬잖아. 다 보고 있었어.
집사 이름, 절대 안 잊어버려.
사랑해.
- 미르 -
편지지가 눈물에 젖었다.
나는 현관 바닥에 주저앉아 편지를 끌어안았다.
"미르야... 미르야..."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사뿐사뿐.
작은 발소리.
고개를 돌렸다.
거실 쪽에서 하얀 털뭉치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바람이도 나무도 아니었다.
장모종 특유의 풍성한 털.
역삼각형의 작은 얼굴.
그리고 투명하게 빛나는 호박색 눈동자.
"미르..."
나는 벌떡 일어났다.
미르가 내 앞에 섰다.
녀석은 예전 그대로였다.
아니, 예전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털에 윤기가 흘렀고, 볼살이 통통했다.
무엇보다 뒷다리가 멀쩡했다.
마비되어 질질 끌리던 그 다리로 당당하게 서 있었다.
"돌아온 거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돌아온 거야, 미르야?"
미르가 내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익숙한 감촉이었다.
따뜻했다.
살아 있을 때의 그 온기 그대로였다.
나는 미르를 번쩍 안아 올렸다.
풍성한 털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꼬순내가 났다.
미르 특유의 그 냄새.
13년 동안 매일 맡았던 그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보고 싶었어... 너무 보고 싶었어..."
-
미르가 내 턱 밑에 머리를 비볐다.
예전에 늘 하던 것처럼.
골골 송이 들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그 진동이 온몸으로 퍼졌다.
"이제 안 가지?"
나는 미르를 꼭 안은 채 물었다.
"이제 계속 여기 있는 거지?"
미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호박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녀석이 입을 열었다.
"집사야."
목소리가 들렸다.
냐옹 소리가 아니었다.
분명한 사람의 말이었다.
맑고 투명한,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
"관에 적어줬잖아. 다 보고 있었어."
미르가 내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미르야, 어디 가?"
미르가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웃는 것 같았다.
고양이가 웃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웃고 있었다.
"바람이랑 나무 잘 챙겨. 알았지?"
미르가 현관문을 열었다.
문 너머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미르야, 가지 마!"
나는 손을 뻗었다.
미르의 꼬리 끝이 빛 속으로 사라졌다.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낯익은 천장.
내 방 천장이었다.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다.
방금 전까지 품에 안겨 있던 미르의 온기가 아직 손바닥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꼬순내가 코끝에 맴도는 것 같았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자면서 울었나 보다.
"꿈이었구나..."
허탈함이 밀려왔다.
미르가 돌아온 게 아니었다.
진짜가 아니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또 흘렀다.
미르를 다시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한 번 떠나보낸 것도 힘들었는데, 두 번째는 더 힘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그러다 문득, 꿈속에서 미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관에 적어줬잖아. 다 보고 있었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미르가 알고 있었다.
내가 관에 적은 이름을.
그리고 일부러 찾아와서 말해줬다.
울지 말라고.
자기는 행복하다고.
꿈이었지만, 꿈이 아닌 것 같았다.
미르가 정말 찾아온 것 같았다.
약속대로.
내가 관에 적었던 것처럼.
'나중에 꿈에 찾아와.'
가슴 한쪽이 따뜻해졌다.
슬픔 위로 안도가 천천히 덮여왔다.
"고마워, 미르야. 찾아와 줘서 고마워."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저 어딘가에 미르가 있다.
그리고 미르는 행복하다.
바람이가 다가와 내 손등에 머리를 비볐다.
나무가 발치에서 냐앙 하고 울었다.
"그래, 너희도 배고프지. 밥 줄게."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 하루도 살아야 했다.
미르가 부탁한 대로, 바람이와 나무를 잘 챙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