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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May 03. 2024

나이를 먹으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는 말


 나이를 먹으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는 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것은 핑계일까, 아니면 세월이 가져오는 불가피한 운명일까. 나는 생물학적 노화를 제외한 것들은 모두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노화 역시도 일부분 개인의 노력으로 늦출 수 있다고도 확신한다.



 우리 사회에는 마치 미리 정해진 것 같은 삶의 규칙이 있다. 각 가정과 문화마다 입에서 입으로 암암리 전해지는 의무와도 같은 규칙이다. 누구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한 적 없지만 우리는 그 규칙을 자기도 모르게 따르며 살아간다. 사회적으로 답습한 규칙, 그것은 '가짜 의무'이며, 동시에 경계해야 할 대상 1호이다.





 확인되지 않은 '가짜 의무'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은 개개인마다 고유한 삶이 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듯 다르다.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거의 일치한다. 아주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외형과 삶이 완전히 다르다. 마찬가지로 각 개인의 삶은 천차만별이다. 각자 개성 있고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큰 흐름으로 보면 삶은 왠지 정해져 있다는 기분도 든다. 나이를 먹으면 학교를 가고, 졸업한 뒤에는 직장을 찾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마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 속 테크트리 같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한 걸음씩 진행하는 느낌이 든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공부를 잘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공부를 못하기도 한다.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소기업에 취업한다. 자영업을 하기도 한다. 이성과 결혼을 하기도 동성과 결혼을 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을 수도 있고 입양할 수도 있다. 그렇게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크게 볼 때 우리는 서로 비슷비슷하게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남들이 맞다고 하면 그걸 의심도 하지 않고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크다. 의사나 박사 등 사회적 권위를 얻은 사람의 말이라면 더 쉽게 믿어버린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말이 그렇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믿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면? 그럴 방법이 있진 않을까? 의심해 보지 않는다. 그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자기 눈으로 본 사건만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을 평균의 범주에 끼워 넣는다. 의심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평균에 맞추는 경향이 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그것이 귀찮아서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두려운 거다.



 자신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은 과정 혹은 순서로 삶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세상의 틀을 다시 바라보길 바란다. 적어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만큼은 그것들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내가 세상을 다르게 보듯 그들도 그들만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



 세상은 아무것도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순간순간에 맞춰 계속 형태를 변형하고 있다. 씨앗을 심으면서 그 씨앗이 어떤 모양의 나무로 몇 개의 잎과 열매를 맺으며 피어날지 예상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다. 그것에 두려움을 느껴선 안된다. 오히려 그것을 즐길 줄 안다면 인생은 재밌는 것들로 넘쳐나게 된다.





 삶이라는 항해 속 선장은 늘 우리 자신이다. 당연히 인생의 주인공 역시 항상 우리 자신이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정해진 삶을 강요할 수는 없다. 정해진 삶 자체가 없다. 인생에 테크트리는 없다.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가 그만둘 수도 있고, 직장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 아무것도 미리 알 수 있는 게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자기 삶에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그 힘을 단련하고 있다. 아장아장 기어다니던 아기가 스스로 일어나 걸음마를 떼는 힘은 코어에 있다. 코어 근육이 얼마나 발달하느냐에 따라 일어설 수 있는 시기가 달라진다. 그 시기가 빠르고 느리고는 중요하지 않다. 일어나기 위해서는 코어 근육이 발달해야 한다는 걸 인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



 지금 나는 내가 홀로서기를 위해 필요한 코어 근육이 글쓰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렇게 400일 가까운 시간 동안 매일 글쓰기를 실천한다. 여러분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근육은 무엇인가. 지금 다니는 직장을 오래 다니기 위한 근육이 아닌,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근육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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