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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May 21. 2024

조직의 잘못된 결정에 대항하는 법

600일의 도전

 

얼마 전, 한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회사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고 그로 인해 전 직원의 사기가 떨어졌다. 작은 조직임에도 회사가 갖는 힘은 막강했다. 직원들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그릇된 판단으로 다수가 불행해지는 걸 목격했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심각하게 고민해 봤다. 무엇을 보아야 할까.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사건을 통해 어떤 점을 배우고, 개선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 봤다.





 나는 통제권을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는 마음 쓰지 않음으로써 내적 평화를 얻고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일에서 관심을 끄면 몸과 마음의 힘을 아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인생이 더 맑고 깨끗해진다. 현재 하고 있는 ‘공부나 일’에서 얻는 기쁨이 배로 커진다. 



 그 원리를 알고 나면 살아 숨 쉬는 모든 시간이 즐거워진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의 주체가 바로 나라는 사실에 큰 힘을 얻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삶은 그렇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와 도전을 맞닥뜨린다 한들 두렵지 않다. 언제나 힘을 낼 수 있게 되고 또 바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누구나 자기 삶 안에서만큼은 ‘자기 일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자유로움’.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시대에서는 그게 기본 이념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또 거절할 수 있다. 물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러나 그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모든 책임을 내가 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에 대한 결정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커다란 선물이자 기회이다.





 우리는 가끔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매몰되곤 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대표적인 것을 떠올려볼까? 가장 처음 떠올릴 수 있는 통제 불가능한 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붙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우리가 관여하고 제어할 수 없는 분야다. 이미 지나간 것에 아무리 후회해 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 즉 우리가 절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세상 그 누구도 시간을 통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누구나 시간 앞에서만큼은 공평하다.



 그리고 또 다른 예는 앞서 이야기한 ‘조직에서 정한 규칙’이다. 조직 또는 나라에서 정한 법을 개인의 힘으로 바꿀 방법은 없다. 직업이 국회의원인 것이 아니라면 일반 시민으로서는 정해진 법을 거스를 수 없다. 그것을 거스르면 우리는 자산을 잃는다. 벌금형을 받거나 구속 수감되어 우리의 재산 혹은 시간을 빼앗긴다. 그런 일들은 저항할 수 없고 내가 임의로 바꿀 수 없는 일들이다. 따로 정해진 결정권자가 존재하는 일이다. 즉 통제권이 나에게 있지 않은 일이다. 



 그런 통제 불가능한 것에 매달리는 일은 시간 낭비다. 고민해 본다 한들 ‘당장’ 바꿀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내 경험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당장 떠오른 건 ‘시간’이다. 앞서 시간은 통제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왜 갑자기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하는지 궁금한가? 그 비결은 바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있다.





 나는 내가 일어나는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 잠드는 시간 역시 통제할 수 있다. 먹는 시간도, 노는 시간도 모두 나의 통제 범위 내에 있다. 할지 말지 내가 결정하고 조절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시간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시간을 되돌리거나 빨리 감는 일은 불가능하는 걸 안다. 그래서 그런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누구나 결정 할 수 있다. 또한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현재도 충분히 잘 하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출근이나 등교를 하기 위해 잠에서 깬다. 이때 언제 눈을 뜰지, 몇 분이나 준비하는 데 시간을 쓸지는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누군가는 1시간 일찍 일어나 운동이나 자기 계발을 한 뒤 출근할 것이고, 누군가는 딱 지각하지 않을 만큼만 적절히 시간을 계산해 일어날 것이다. 모두 시간을 자기 입맛에 맞게 통제하는 일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지도 통제할 수 있다. 맛있고 영양가 높은 요리를 먹을 수도 있고, 정크푸드나 술 담배 같은 것들을 섭취할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우리의 입에 억지로 먹을 것을 밀어 넣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음식만큼 우리가 통제하기 쉬운 것도 없다.



 또한 우리는 누구를 만날지도 통제할 수 있다. 어떤 사람과 어울리고 어떤 사람을 멀리할지 모두 우리가 결정하는 일이다. 약속을 잡을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다. 누구도 우리가 누굴 만날지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내가 결정하는 일이다. 



 그 밖에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자기 통제 아래 둘 수 있다. 공부를 할 건지 아니면 놀 건지, 그렇다면 그 종류와 방법은 어떤 걸 선택할 건지, 그리고 출근을 할지 말지, 출근을 한다면 자가용을 탈지 대중교통을 탈지 등 수많은 결정의 통제권을 갖고 있다.



 현재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의 리스트를 적어보라. 그러면 그 가짓수가 엄청나게 많음에 놀랄 것이다. 당신은 이전까지 세상이 자동으로 돌아가고 우리라는 존재는 그저 작은 톱니바퀴나 쯤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음을 인식하는 순간, 세상은 달리 보인다. 이전까지의 세상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앞으로 모든 것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고 또 스스로 삶을, 또는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내가 ‘나의 통제 범위에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이유’이다. 외적인 요인, 불가항력인 부분에 마음을 두지 않는 근거다. 다른 사람의 결정은 그 사람의 통제 범위에 있다. 누군가의 기분이나 결정이 내 통제 요소에 영향을 끼치게 두지 않는다. 그것들을 분리해냄으로써 내 삶을 바로 설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그렇게 내 결정권, 내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에만 온 힘과 열정을 쏟아 붓는 거다. 그럴수록 삶은 즐거워지고 더욱 활기를 띈다. 



 우리는 절대로 세상의 톱니바퀴나 부속품이 아니다. 누군가의 부를 쌓기 위한 레버리지 도구도 아니다. 우리는 독립된 존재이자 자유로운 존재이다. 우리는 우리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아가는 개척자다. 우리 자체의 힘을 믿어야 한다. 스스로 독립적인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 힘을 등에 업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 외부의 힘에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부의 힘이 단단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늘 내면을 관찰하고 스스로 인생을 통제하기로 결정하자. 그럼으로써 우리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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