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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Jun 24. 2024

질투를 활용하는 두 가지 마인드셋


 ‘질투’는 삶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동기가 된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하지 않으면 질투라는 감정도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가 질투심을 느낀다는 건,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뜻이다. 그 바람이 간절할수록 부러움과 질투심은 깊어진다. 그 마음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누군가는 행동가가 되고 누군가는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가 된다.





 우리는 믿는 대로 행동한다. 스스로 가질 수 없다고 믿는 것은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이 그걸 가질 수도, 자격도 없다고 믿어버린다. 잠시만 멈춰서 생각해 보라. 당신 인생에서 다음 세 가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1. 수영장이 딸린 고급 주택, 2. 롤스로이스, 3.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에르메스.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당연히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나, 아니면 ‘나에겐 불가능하지’라는 말이 떠올랐는가.



 그렇다면 다음 세 가지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는가? 1. 행복한 가정과 원만한 대인 관계, 2. 여름휴가로 해외여행, 3. 가끔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외식.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당연히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나, 아니면 ‘나에겐 불가능하지’라는 말이 떠올랐는가?



 위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 현재 여러분의 인생관이다. 사실 두 질문 사이에는 어떤 격차도 없다. 둘 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둘 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어떤 상황에 처했냐에 따라 난이도가 다른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어떤 질문에는 쉽게 수긍하고, 어떤 질문에는 불가능하다고 믿어버렸을까.



 그것은 스스로 한계를 정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불쾌하고 어리석은 믿음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조종하고 있다. 작은 가능성과 열망조차 들지 않게 만든다. 자신을 주체적으로 뭔가 해낼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그저 ‘나는 그것을 진심으로 원치 않아’라고 믿고 위안 삼게 조종한다.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 한계를 정함으로써 마음이 편해지는 과정이다.





 질투를 하자. 갖고 싶다는 걸 인정하는 거다. 그리고 그걸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자. 가끔 괜찮은 레스토랑에 가는 걸로 만족하는 사람에게는 롤스로이스를 갖는 게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반면 롤스로이스를 가진 사람에게는 행복한 가정이 힘든 일일 수도 있다. 모두 처한 상황이 다르다. 자신의 삶을 미리 정해진 틀 안에 가둔 채 바라봐선 안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월급쟁이는 롤스로이스를 가질 수 없다?’ 도대체 누가 그런 규칙을 만들었단 말인가. 어떤 미래가 우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안심하고 욕망하고 질투하라.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싶다고 말하고, 끊임없이 탐하라. 그것을 갖기 위해 무얼 할 수 있는지 탐색하라. 포기하지 말고. 지레 겁부터 먹지 말고! 갖고 싶으면서 갖고 싶지 않다고 합리화하지 말자. 핑계 대지 말자. 그런 생각과 말로 얻는 것은 좌절과 수치스러움뿐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차근차근하면 된다. 현재 가진 기술이 없으면 막노동이나 배달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할 수 있다. 무엇이든 괜찮다. 작은 일부터 도전하고 그 안에서 다름을 만들면, 결국 우리는 갖고 싶은 걸 가질 수 있다.





 지금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왜 일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살기 위해 일을 한다. 무언가를 갖기 위해 일을 한다. 일차원 적으로 보면 급여가 목적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급여로 인해 우리가 갖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한 가정? 멋진 차? 맛있는 음식? 그럼으로써 얻는 결과는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것은 물건이 될 수도 있고 삶의 질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고민하며 일의 동기를 찾는 거다. 



 일하는 목적을 알지 못하면 그저 닭장 속의 알 낳는 닭이 될 뿐이다. 하지만 일하는 목적과 이유를 찾게 되면, 우리는 닭장을 벗어난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무도 우릴 닭장 안에 가둔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닭장 안에 우리를 가둔 건 우리의 고정관념이었다.



 일의 목적을 깨닫고 나면, 일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게 된다. 일을 더 잘하고 싶어지고, 일로 인해 성과를 내고 싶어진다. 그렇게 하나둘 성과가 쌓이게 되면 점점 자신감이 성장한다. 그러면 우리 뇌는 자신의 성과를 자신이 갖고자 하는 것들을 성취하는 데 연결하려 한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자동으로 고민하게 된다. 어떤 방식으로 일하면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를 탐색하게 된다. 그러 식으로 생각하는 법과 함께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질투를 이용해 감정만 소모하고, 누군가는 질투를 이용해 삶의 질을 개선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는 우리의 몫이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는 몰라서 못한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변명도 할 수 없게 됐다. 이미 알아버린 걸 모른다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제 여러분은 무엇을 하겠는가. 합리화와 변명만 늘어놓겠는가. 아니면 자신이 갖고 싶은 걸 갖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겠는가. 질투 앞에 진실해져야만 우리의 삶이 변할 수 있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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