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매일 봐야 하는 사람 가운데, 정말 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그 장소에 가는 것이 끔찍하고, 그곳에 함께 있는 내내 힘든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반대로 뒤집을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소름 끼치게 싫었던 사람과 죽고 못 사는 절친한 친구가 되는 버튼 말이다. 여러분은 그런 버튼이 있다면 당장 누를 수 있겠는가?
〈필링 그레이트〉의 저자이자 정신의학자 데이비드 번스는 강연에서 청중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대답은‘아니오. 버튼을 누르지 않겠어요!’였다.
우리가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는 논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 머리가 만든 편견과 오해, 그리고 약간의 본능이 그런 감정을 부추긴다. 그래서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의 행동은 사소한 것조차 불쾌하게 느껴진다. 호감 있는 사람이 하면 기분 좋은 행동도, 싫어하는 사람이 하면 몸서리를 친다. 그 사람이 싫은 이유는 단지 그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렇듯 많은 경우, 우리가 싫어하는 상대는 죄가 없다.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있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더 이상 상대를 바꾸려 애쓸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 마음과 관점만 바꾸면 세상을 다르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관점과 편견을 하루 아침에 인식하고 바꾸기란 어려운 일이다. ‘좋아! 오늘부터 다른 마음을 먹겠어!’라고 다짐한다고 어제까지 싫었던 사람이 오늘부터 갑자기 좋아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싫어하는 누군가와의 갈등을 줄이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없애고 싶다면, 그 마음이 들기 시작한 순간부터가 변화의 기점이 된다. 억지로 모든 관계를 개선할 필요는 없다. 하나부터 조금씩 개선하면 된다.
나는 여러분이 먼저 마음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에 집중해 보길 추천한다. ‘왜 저 사람이 싫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정말로 싫은 게 맞을까?’,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이 아니어도 싫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거듭하다 보면 사실이 또렷해진다. 때로는 그 사람의 나쁜 습관이나 언행, 태도가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고, 반대로 별다른 이유 없이 주위 평판이나 소문, 혹은 그 사람의 안타까운 배경이 원인이었음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처음부터 관계가 완전히 뒤집히길 기대하지는 않는 게 좋다. 그보다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다른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마음의 평온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긍정과 타인 존중이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공감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것은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런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평온한 상태가 되는 것에 가깝다.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진정한 행복이란 불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사물과 인간 관계에 대해 올바르게 보는 눈과 힘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감동할 줄 아는 힘. 그것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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