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철학자가 묻는다
오래된 철학자가 내게 묻는다.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고 있는가?”
나는 되묻고 싶다. 감정을 왜 조절해야 하는가? 감정은 무의식이 생각을 통과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감정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명백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내게 거친 말을 해서 화가 났다고 해보자. 이때 화는 왜 생겼을까? 그 말 때문인가, 아니면 그 말을 한 사람에 대한 나의 평가 때문인가?
어째서 같은 말인데도 다른 사람이 하면 괜찮고 그 사람이 하면 화가 나는 걸까? 그것은 공평한가? 왜 감정은 선택적으로 분노를 드러낼까?
모든 행동에서 똑같은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우리 생각과 고정관념이 감정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감정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즉, 감정은 사고의 결과다.
최근 흥미로운 실험을 접했다. 우울증 치료제와 위약(가짜약) 사이에서 유의미한 효능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 실험은 심각한 우울증 환자가 아닌 경우, 약물의 효과가 위약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약물의 효과는 주로 ‘환자와 의사의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이 실험에서 사용된 약물은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이다. 주요 약물은 플루옥세틴, 파록세틴, 설트랄린 같은 신세대 항우울제다. FDA에 제출된 임상 시험 데이터에는 SNRI 계열의 벤라팍신도 포함되어 있다.
이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우울한 감정이 신경 전달 물질의 오작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뜻일까? 아니면 위약의 플라시보 효과만으로도 신경 전달 물질의 오작동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일까?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또한,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기에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실험 결과를 통해 생각해볼만한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감정을 조절하거나 억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과 기분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동할 수 있으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말한다.
앞서 언급한 고정관념이 감정을 형성하는 데 역할을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의 머리가 생각하고 추론한 결과가 감정을 만든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예를 들어보자. 내가 손바닥을 펼치고 서 있을 때, 누군가 웃으며 손바닥을 부딪치고 가면 나는 그것을 하이파이브라 생각해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화난 표정으로 손바닥을 부딪치고 가면 나는 그것을 폭력이라 생각해 분노를 느낄 것이다.
이 두 상황에서 ‘손바닥을 부딪친 행위’는 동일하다. 다른 것은 상대의 표정을 통해 내가 추론한 생각뿐이다.
물론 이런 예가 억지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에서 비슷한 상황을 자주 겪는다.
팀 프로젝트에서 커다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사람은 침착하게 대처하고, 다른 사람은 예민해져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같은 사건인데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유발되는 감정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그 방식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의 총합에 의해 형성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 방식은 하루아침에 변화할 수 없을까?
고정관념이란 것은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무너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떤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 그로 인해 생기는 감정도 비슷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이 사건의 진실과 완벽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림으로써 고정관념이 깨진다. 다시 말해, 사건을 자세히 관찰할 줄 알면 불필요한 감정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감정을 대하고 통제하는 방식이다. 사건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깊게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그러면 진실이 보인다. 어떻게 답을 찾고 대처해야 할지 알게 된다.
침착한 마음과 관대함, 열린 사고. 그것들은 자세히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는 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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