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철학자가 묻는다
오래된 철학자가 내게 묻는다.
“타인의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들으려 노력한다. 그 의견이 나온 이유와 예상되는 결과를 분석한다.
나는 대화할 때, 공감보다 먼저 그 의견이 들을 가치가 있는지 판단한다. 그렇다. 계산적이고 까다로운 방식이다. 내가 이런 방식을 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의 몸은 하나이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주의력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주의력이 제한되어 있으니 중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모든 의견에 귀 기울이고, 모두에게 주의를 기울이면 점심이 되기도 전에 주의력이 고갈될 것이다.
경청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주어진 시간과 주의력을 적절히 배분해야 하루를 보다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이야기만 선별해서 듣는다. 목표가 명확하고, 근거가 뚜렷한 이야기가 그런 경우다.
다른 사람의 뒷담화나, 목적 없이 시간만 보내는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흘린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이 비난이나 비판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비판을 들으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편도체가 활성화되고 투쟁-도피 호르몬이 분출된다. 이런 감정은 내 의견이 틀렸을 때보다는 주로 큰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더 강하게 나타난다.
얼마 전, 의욕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선배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단독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다. 조바심이 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회하고 싶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실수나 잘못은 단순히 의견이 채택되지 않는 것보다 더 크게 가슴을 요동치게 만든다. 의견이 탈락 되는 것은 개인적 실패에 불과하지만, 실수는 공동체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면, 화부터 내기보다는 그 비판이 타당한지 생각해 본다. 타당하다면 그 비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고,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파악한다.
이때 즉각 반박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의도치 않게 감정과 편견이 섞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본 뒤 반박 여부를 결정하면, 상황을 더 좋은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
비난이나 비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판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며 수치심을 느낀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비판 앞에서 수치심이나 감정의 고조를 느껴도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나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처음에는 마음이 진정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쌓이면 점차 시간이 단축될 것이다.
불편한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사실을 믿고 인내심을 가져보자. 우리는 한 감정이 평생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어렵다. 하지만 몇 번만 겪고 나면 익숙해진다. 마음을 정리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자연스레 자신감도 생긴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은 그 상황에 계속 노출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그 안으로 뛰어들자.
가끔은 단순한 것이 정답일 때가 있다. 정면 돌파하는 것, 그것이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