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취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몰입할 만한 마땅한 취미가 없어 방황했던 어제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당신에게는 독서가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표면적으로는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지만,
사실 내게 독서는 취미보다는 생존이고 삶이다.
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주로 실용적인 분야나 학문 등 정보 습득을 위한 책만 읽는다.
내가 읽는 책은 대부분 나의 직업과 관련되어 있기에
그것을 취미로 가볍게 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 하나.
소설을 읽는 것은 몰입할 만한 취미일까?
내가 생각하는 몰입할 만한 취미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하고 난 뒤에도 씁쓸한 맛이 남지 않는 취미이다.
나는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 또는 술자리 대화 같은
다소 시간 소모적인 일종의 유희라고 생각한다.
이 말에 아내는 예상 가능한 변론을 펼쳤다.
‘소설은 드라마와 달리 상상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그렇다면 소설은 상상을 활용하는 유희 아니인가’
‘드라마나 영화는 시청각을 활용하는 유희이며, 술자리 대화는 술과 담화를 활용하는 유희인데, 소설은 이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자 아내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한다.
‘소설은 생각할 시간이 있다’
거기에 나는 이런 답을 한다.
‘과연 읽는 시간에 비례해 얼마나 많이 사고하며, 그것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그러니 아내는 ‘취미가 굳이 생산적일 필요가 있나. 너무 성장에 강박을 갖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그 주장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유희로 소모되는 취미가 아닌
몰입할 만한 마땅한 가치가 있는 취미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취미를 이용해 삶을 조금 더 풍성하고 다채롭고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유희처럼 한 번 맛보고 지나갈 취미가 아니라,
평생 즐기고 탐할 수 있는, 정신을 몰두할 가치가 있는 취미를 원한다.
그러나 나는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한 가지 깨닫게 됐다.
‘생각할 시간을 갖고,
그것을 정리해 기록으로 남긴다면,
많은 것들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겠구나’
가치를 느낄 수 없다고 믿었던 것에서도
그것에 대해 사고하고 글로 씀으로써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고하는 취미> 오늘 얻은 것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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