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타벅스에서 주문한 커피는 '오늘의 커피 그란데'였다.
얼마 전 건강 검진 앱에서 알림이 왔다.
포인트가 쌓였으니 소멸되기 전에 찾아가라는 거였다.
왜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알차게 써보기로 했다.
이왕이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금액권을 사야지 하는 마음으로 스타벅스 카드를 샀다.
될 사람은 뭘 해도 된다고 했던가,
포인트를 사용하면서 자동으로 이벤트 응모가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벤트가 당첨됐다며 선물로 음료 쿠폰을 받았다.
정확히는 '스타벅스 라떼 교환권'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좋아하니까
오늘의 커피 그란데 사이즈로 가격을 맞춰서 주문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스타벅스를 자주 이용하지만, 스타벅스 커피를 그다지 애정하지는 않는다.
그냥저냥 나쁘지 않아서? 무난해서 마시는 것 같다.
스타벅스는 커피보다는 공간을 소비하는 데 더 목적이 있지 않나 싶다.
올해 유행한 티비쇼 <흑백요리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키워드는 '비빔 인간'이었다.
애드워드 셰프가 미국 이민으로 인해 정체성이 뒤섞이며 고충을 겪은 걸
그 한 단어로 정리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
'무난 인간'
나는 무난한 걸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특별하다, 특이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고 살았지만,
경험이 많아질수록 특별함은 줄어들고 무난함이 커지는 것 같다.
세월이 지나며 내가 특별하다는 마음이 점점 옅어진다.
내 삶이 누군가와 다른 건 맞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특별한가?' 싶은 생각이 마음을 물들이고 있다.
나는 스타벅스에 가면 보통 '오늘의 커피 스몰 사이즈에 샷 추가'를 주문한다.
커피에 대해 조금이나마 지식이 있으면 이 주문이 얼마나 어리석은 건지 눈치챌 수 있을 거다.
왜냐하면 '오늘의 커피'는 브루잉(필터로 내리는) 커피고,
'샷'은 에스프레소(머신으로 내리는)이기 때문이다.
이 둘을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탕과 국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하지만 나는 이 둘이 섞이는 걸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컵라면에 봉지 라면 수프를 조금 더 넣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렇게 커피를 짬뽕으로 섞어 먹어도 별로 개의치 않은 이유는
나의 커피 취향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나는 라이트 로스팅 된 살짝 산미가 느껴지는 과일향을 갖춘 커피를 좋아한다.
그런데 스타벅스는 리저브 매장에 가지 않는 이상 그런 커피를 맛볼 수 없다.
그래서 적당한 값에 적당히 고소하면서 카페인 충전까지 할 수 있는
무난한 가성비 조합을 찾아내게 된 것이다.
무난하다는 건 다른 말로 가성비를 추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가성비 인간'일까?
어쩌면, 아니 분명히 나는 가성비를 좋아한다.
나의 첫 스마트폰은 노키아의 모델이었다.
MZ 세대에게는 생소할지도 모를 그 브랜드,
한때 모바일 시장의 절대 강자로 불렸던 그 브랜드다.
과거 노키아는 압도적 점유율을 보이며, 모바일 업계 최강자로 군림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혹은 그 이전부터 사업은 기울기 시작했고,
현재는 모두가 알고 있듯 삼성과 애플이 그 왕좌를 넘겨받았다.
내가 노키아를 산 시기는 노키아가 모바일 사업이 거의 망해가던 그 즈음이다.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나려 저가 정책을 펼쳤다.
나는 비교적 카메라 성능이 좋은 모델을 고르면서
'사실 난 카메라 때문에 이 스마트폰을 샀다'라는 어쭙잖은 변명을 둘러댔다.
사실 좋은 제품에는 그런 변명이 필요 없다.
뭔가 부족하거나 아쉬운 제품을 살 때에 나 그런 군더더기 같은 말이 붙는다.
이런 말은 보통은 가성비 상품을 선택할 때 나타나는데,
'이건 OO가 아쉽지만 OO을 살 바에야 이득이다...',
'아직은 그걸 쓸 정도 수준은 아니니 이 정도 만으로도 충분해...'처럼
여유가 있었다면 분명 더 좋은 모델을 샀겠지만,
현재 형편으로는 그럴 수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애써 대체품을 살 때 나오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스벅에 가는 것은 가성비 때문이다.
실제로 좋아하는 커피가 따로 있음에도,
스타벅스 정도로도 그럭저럭 만족하며, 사실은 공간 때문에 간다고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이다.
가성비 인생, 가성비 인간.
가성비를 그만 좀 생각하고 싶다.
취향껏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가성비 스타벅스에 앉아 돈 벌 궁리를 한다.
부자가 된다는 건 어쩌면 취향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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