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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Dec 24. 2024

문득 베네치아행



문득 베네치아로 떠나고 싶어졌다.

베네치아에서 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물론 괜히 드는 생각이다.


풍경이 그립고 향기가 그립다.

그래봐야, 거기에 머문 건 채 일주일도 안되는데.,

무엇을 얼마나 잘 알고 또 그립기에 그토록 가고 싶어지는 걸까.



10년 전 베네치아에 방문했을 때,

나는 그곳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저 배낭여행을 하며 곧장 로마에 가기 아쉬워 잠깐 들른 곳일 뿐이었다.

'부유한 수상 도시' 내가 베네치아에 아는 것은 그게 거의 전부였다.


기차에 내리는 순간부터 새로운 세계에 온 느낌이 들었다.

대중교통으로 보트를 이용하는 데서부터 가슴이 출렁였다.

'여긴 뭔가 느낌이 다른데?'

설명하기 어려운 작은 흥분이 일었다.

유럽 북쪽에서 맞았던 차가운 바람과는 조금 다른,

사람 냄새가 섞인듯한 미묘한 바다 바람이 뺨을 스쳤다.


유럽의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는 모두 E 성향인 것 같다.

가족보다 반갑게 맞아주는 매니저 누나의 안내를 받아 숙소에 짐을 풀었다.

역대 게스트하우스 가운데 가장 호화로운 주택이었다.

넓고 높은 층고에 잘 정리된 깨끗한 침구류.

정교하게 조각된 장식이 수놓아져 있는 화려한 프레임

그리고 그 위에 놓인 하얀 침대는 분명 이케아에서 온 게 아니리라,

가구에 문외한 나조차도 단 번에 눈치챌만한 멋진 가구로 꾸며진 방이었다.


방 구경을 마치고 룸메이트와 통성명을 나눴다.

나보다 먼저 와있던 건 총 두 사람.

그 둘은 친형제라고 했다.

'형제끼리도 여행이 가능하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키와 덩치가 상당했지만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렸다.

초면인데도 나이 차가 난다고 깍듯이 대하는 걸 보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어 순식간에 경계를 풀었다.


둘 중 한 명이 꽤 사교적인 성격이었는데,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그건 아마 동생 쪽이었던 것 같다.

'형은 부라노 섬 언제 갈 계획이에요? 우리 같이 가요'

만난 지 10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행을 제안받았다.

'부라노 섬? 좋아요. 가요. 근데 그게 뭐예요?'

'에? 아이유 뮤비 안 봤어요? 그 알록달록 예쁜 곳 있잖아요. 거기 촬영지가 부라노 섬이에요. 배편은 언제 있고... '

동생에게 이것저것 정보를 받았지만 나는 미리 열어보진 알았다.

그럴 여유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첫 경험, 첫 느낌.

모든 첫 번째 인상은 오래간다.

현대 사회의 넘치는 정보 속에서 처음 보는 장면은 보통 맨눈이 아닌 스마트폰을 통해 접하게 된다.

부라노 섬은 그렇지 않길 바랐다.

'저기가 거기잖아'라는 말없이, 그저 담담히 눈과 마음에 풍경을 담고 싶었다.

오히려 그래서, 나는 더 온전히 그곳의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미리 누군가의 시선으로 먼저 봤다면,

그 프레임에 갇혀 나만의 아름다운 시선을 발견할 수 없었을 테니.


인생의 다른 면도 마찬가지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사업에 성공하는 방법, 취업하는 방법, 연애하고 결혼하는 방법.

인터넷에는 그 길을 앞서 간 많은 사람이 자신의 길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그 길이 안전한 길이고, 그 길이 성공을 향한 최단 거리일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단지 그 열매만을 얻기 위함은 아니지 않는가?


첫 느낌의 설렘, 그리고 실패에서 성공으로 서서히 보완해가는 과정,

그 안에서 흘릴 구슬땀과 노력에 담긴 매콤 새콤함도 맛봐야

삶이라는 식탁이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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