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는 길에 <도를 아십니까?> 일행을 만났다.
50대로 보이는 두 중년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복이 많은 얼굴을 가지셨다'라고 말하며 다가왔다.
어두운 와중에도 그걸 알아보시다니, 관찰력이 참 좋으신 분들이다.
나는 수차례 경험으로 그들의 패턴을 이미 외울 정도로 알고 있지만,
오늘은 자존감 충전을 할 겸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짜인 각본대로, 그들은 오늘도 나를 칭송했다.
내게 좋은 기운이 많고 예정된 복이 엄청나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미끼를 물 때까지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차례 낚싯대를 던졌지만 나는 걸려들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금세 인내심을 잃고 본색을 드러냈다.
'차 한 잔만 베풀어 주실 수 있나요?'
그들은 늘 베푼다는 말을 쓴다.
'차 한 잔 사주세요.'라던가
'차 한 잔 얻어마실 수 있나요?'라고 묻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늘 '음식 한 번 베풀어 주실 수 있나요'나,
'가벼운 빵이나 음료 한 잔 베풀어 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한다.
이 말은 무척 격식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우리가 평소에 자주 쓰는 말이 아니기에 그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지는 못한다.
나는 혹시 더 좋은 멘트가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해 봤다.
차라리 본격적으로 직구를 던진다면 어떨까?
'제가 해드리고 싶은 좋은 말이 많아요. 혹시 차 한잔 사주실 수 있나요?'
음, 이것도 좀 아닌 것 같다.
사람을 끌어당길만한 더 좋은 전략이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깊이 생각해 보기로 다짐하며 고민을 마쳤다.
'제가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
나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만난 것이 인연이라고,
다시 안 올 기회라고 꼭 말씀을 들어보고 가시라고 말했다.
나는 이제 우리가 헤어질 시간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나의 자존감은 충분히 채워졌고, 거리는 너무 추웠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집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은 오랜 경험에서 얻은 직감으로 나의 마음이 떠났음을 알아차렸다.
끝까지 나를 붙잡기 위해 그들은 누구보다 간절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늘 대전에서 올라왔어요. 아마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인 것 같아요. 이런 인연은 쉽지 않아요. 꼭 시간을 내주세요.'
재치 있는 기출 변형을 받은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서로 기분 좋게 해어질 수 있을까?
눈을 감고 깊게 고민하는 나의 입술 위에 두 사람의 시선이 모였다.
'선생님은 참 아름다운 눈을 가지셨네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왼쪽에 있던 수행자님이 놀란 토끼 눈으로 변했다.
사람은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꺼내면 당황한다.
자신의 하던 말을 잊고 갈피를 잃는다.
이것은 최면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 우리가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늘의 뜻이 우리를 만나게 해주길 기다려 보시지요.'
'다음에 만나면 꼭 차를 한 잔 베풀어 주실 건가요?'
'물론이죠. 추운데 고생이 참 많으십니다. 이만, 다음에 봅시다.'
'네 그럼 조심히 가세요.'
강한 것과 강한 것이 만나면 부딪힌다.
그러나 강한 것과 엄청나게 강력한 것이 만나면 강한 것은 자취를 감춘다.
이것이 내가 그들과 대화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보통 <도를 아십니까?>를 만나면 싫다고 됐다고 밀어내 버린다.
그러면 그들은 끈질기게 달라붙고, 그러는 동안에 내 감정이 소모된다.
심지어 죄송하다고 말하며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다.
동의 없이 다가온 건 그들인데, 왜 내 감정이 상해야 할까.
그런 고민으로 나는 서로 웃으며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어떤 날은 천 년 넘게 산 사람처럼 행세를 했고
어떤 날은 어릴 적 친구를 만난 것처럼 굴기도 했다.
다음에는 어떤 전략을 펼쳐볼까.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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