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와 함께 공릉의 한 떡볶이집에 다녀왔다. 지난여름 아내가 공릉에서 잠시 연수를 받을 때 알게 된 집이라고 한다. 아내는 그 집 맛이 '떡볶이!'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억의 떡볶이의 그 맛과 같다며 가게 문턱을 넘어서며까지 칭찬이 이어졌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끝나고 어중간한 시간에 가게를 방문했다. 보통 그 시간 즈음의 음식점은 점심 러시를 해치우고 한숨 돌리며 여유를 갖기 마련인데, 그 집은 멀리서부터 문전성시를 이루는 게 역시 맛집다웠다.
나는 입구에 도착한 뒤, 안쪽 상황이 어떤가 하고 북적이는 사람들 틈 사이에 얼굴을 요리조리 끼워 맞추며 동태를 살폈다. 그 모습을 본 사장님으로 보이는 나이 든 여성 한 분이 드시고 갈 거면 들어오라며 자리를 마련해 줬다. 밖에 서 있는 사람은 전부 포장 주문이었나 보다.
예닐곱 정도 식탁을 구비한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나와 아내는 4명이 앉을 수 있는 가운데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메뉴를 고르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오래된 집답게 인테리어나 집기, 가구는 낡았지만, 청결함은 잃지 않은 모습이 제법 당당하게 느껴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분식을 골랐다. 나와 아내는 꽤나 신중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우리의 식사량은 많이 줄어들었고 그 탓에 한 번에 많은 음식을 맛볼 수 없게 됐다. 물론 먹어보고 싶은 음식을 모두 주문하고 남기면 그만이지만, 그것은 또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닌지라, 우리는 신중에 또 신중을 기했다. 그 모습은 마치 심판을 앞둔 법원의 법관과 같아 보였고, 혹여 누군가 그런 우리를 봤다면 비장함마저 느껴졌으리라.
'떡볶이 1인분, 순대 1인분, 튀김 3조각'
우리는 분식의 정도를 걷기로 했다. 튀김 3종을 선택해야 한다는 두 번째 미션이 남아있었지만, 그것은 '골고루 섞어서'라는 한국인의 선택 장애를 위한 맞춤 메뉴가 준비된 턱에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한쪽 벽면을 빼곡히 장식한 낙서와 메모지를 구경했다. 그것은 흡사 헌팅 트로피 같았다. 그중 한 가지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 전국 100대 떡볶이에 선정되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요란한 서체와 손 코팅이라도 한 듯 번들거리는 용지가 주는 신뢰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대체 누가 저런 순위표를 만드는지 그 출처를 찾아볼까 잠시 호기심이 일었지만, 검색창을 열어보기도 전에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와버린 통에 100대 떡볶이의 궁금증은 머릿속에서 금세 휘발되어버렸다.
떡볶이는 짙은 붉은색을 띠고 국물이 떡의 총량보다 많은 국물 떡볶이 스타일이었다. 그렇다고 이것을 전통 국물 떡볶이라고 칠 수는 없는 것이 국물의 농도가 다소 걸쭉하고 진했기 때문이다. 국물에서는 해물탕이나 전골 맛이 깊게 배어 나왔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이것이 이 집만의 특색이겠구나 생각했다.
반면에 순대나 튀김은 일반 분식집에서 나오는 것과 다르지 않거나 조금 못 미치는 느낌이었다. 특히 튀김의 바삭함이 적고 기름이 충분히 빠지지 않은 걸 보아 반죽과 온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었다.
하지만 첫 방문에 모든 것을 짐작해 볼 수는 없는 법. 아내의 지난 방문이 감격에 가까울 정도로 좋았다 하니, 이런 사소한 문제는 오늘에 한정해 발생했으리라고 긍정 회로를 돌리게 됐다. 게다가 아내는 불평 없이 음식을 먹고 있는 터라, 나의 작은 클레임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미슐랭 가이드를 만들 것도 아니고 블루리본 심사위원이 될 것도 아닌데, 무엇 하려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심사를 해 잘 먹는 사람의 기분만 나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식사를 마치고 배를 퉁퉁 치며 나오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이 맛에 돈을 버는구나 싶어 마음속 한 편이 따뜻해진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