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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있을 때는 누구나 잘한다

by 오제이


전례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지는 요즘, 동료들 간에 마주치는 횟수가 더 늘고 평소보다 훨씬 많은 말이 오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말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발생하기 마련. 이럴 때일수록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고 있다.


불현듯 과거 사회 초년생 때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너 내가 하라는 거 했어? 가서 그거나 먼저 해"

"너 이거 전에 쓴 거 그대로 갖다 썼네? 설마 이대로 놔둘 거 아니지?"

"지금 니가 여기 낄 때야? 너 시간 많아? 오늘 내로 완성할 수 있어?"


내가 속한 영업 2팀의 팀장이 신입 사원에게 던진 말들이다.


지시할 일이 있으면 그대로 핵심만 말해주면 좋을 텐데, 이렇게 비꼬아서 이야기하니 듣는 사람 입장에선 기분이 묘할 수밖에 없다. 욕을 하거나 질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그 안에는 불편한 감정을 담아 이야기한다면 거의 욕을 먹은 것과 다름없겠다.


이런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은데, 실제 당사자는 어떤 기분이었을지 모르겠다. 이 일이 있은 후 자신의 실수를 뒤늦게 눈치챈 팀장은 '사실 내 본심은 그게 아니었어, 알지?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이야기야. 내가 말투가 원래 좀 그래...'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번 구겨진 마음은 그런 말 한마디로 펴지지 않는 법. 게다가 이건 사과가 아니라 변명이지 않은가.


그런데 진짜 황당한 일은 그 일이 있은 직후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팀원에게 무례한 말을 퍼붓던 사람이, 영업 1팀에서 업무 지원을 온 사람에게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예의를 갖춰 말하는 게 아닌가. 차라리 모두에게 그런 태도였다면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혹은 '저 사람은 지금 기분이 안 좋구나..' 생각하고 말 텐데, 자기 팀원에게만 그러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사실 고백하자면 나도 이런 태도나 말투를 가지고 있던 적이 있었다. 단지 배경이 회사에서 집으로, 당사자는 후배 직원에서 가족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청년 시절 나는 부모님께 꽤나 무례했다. 상대를 무시하는 말투와 제스처를 썼고, 실제로도 속으로 무시하기도 했다. 그래놓고 밖에 나가서는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사람인 척,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현인인 척, 보이는 모습을 관리하기 바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어서 막대했던 거라고 말한다면 누가 이해할 수 있겠냐만, 당시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이렇게 말해도 엄마니까 괜찮아.' 철없음으로 대충 눈감아줄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한심한 생각이었다. 그 무례와 오만을 스스로 깨닫기까지는 나에겐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은 바쁘거나 힘들면 본 모습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 말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어떤 이유로 나온 말인지는 알 것 같다. 평소라면 흐트러진 내면을 사회적 인격으로 꽁꽁 숨기듯 틀어막고 있었겠지만, 힘들면 그럴 여력이 없어지니까. 그제야 자신의 진짜 인격이 나오게 될 테다.


그래서 평소에 내면의 자신을 관찰하고 잘 가꾸라고들 하는 것 아닐까. 언제 어디서 마음속 숨겨둔 진짜 인격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미리 예쁘게 만들어두라는 뜻일 것이다. 언젠가 어떤 운동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


"체력이 있을 때는 누구나 잘하지만, 진짜 차이는 힘들 때 나온다"


내가 만들어낼 차이는 무엇일까.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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